| 제목 |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송영진 신부님_2월 22일 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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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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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2-22 | 조회수30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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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새 아담
[말씀]
■ 제1독서(창세 2,7-9; 3,1-7)
인류의 탄생을 악의 결과로 보았던 고대근동의 창조 이야기와 달리, 성경은 하느님은 당신 모습대로 인간을 창조하시며 친교를 나누기를 원하시는 분, 인간에게 충만한 삶을 선사하신 분으로 소개합니다. 그러나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과의 친교를 포기하고 자신의 힘으로 살기를 원한 나머지 그분의 계명을 저버리고 자신들의 잣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큰 잘못[원죄]을 범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한 것입니다.
■ 제2독서(로마 5,12-19)
유다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기만 하면 하느님께서 구원을 보장해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이러한 구원관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합니다. 하느님을 기계적으로 행동하시는 분으로 해석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구원은 인간의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희생시키심으로써 아무런 대가 없이 베푸시는 은총의 선물이기에, 우리는 이 선물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와 함께 이를 구체적인 행위, 무엇보다도 사랑 실천을 통해서 드러낼 각오를 앞세워야 할 것입니다.
■ 복음(마태 4,1-11)
매우 상징적인 이야기를 통하여 복음저자 마태오는 그리스도와 사탄을 대립관계에 있는 존재로 묘사합니다. 사탄은 하느님의 말씀을 조직적으로 왜곡하여 오로지 인간을 위한, 인간 편한 대로의 말씀으로 변형시키고자 하나, 성령으로 충만하신 그리스도는 이러한 악의적 시도를 단호히 거부하십니다. 민중 선동이나 지나치게 인간적인 힘 행사 또는 믿음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기적 등은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벗어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리스도는 순수하고 참된 사랑의 길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일에 관심을 쏟으실 뿐입니다.
[새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음을 말씀과 행적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이르는 고통과 죽음으로 드러내 보이신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마련된 은총의 사순시기입니다. 구약의 사람들이 약속의 땅에 다다르기 위해서 내적 외적으로 무수한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것처럼 봉사하는 삶, 사랑하는 삶으로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느님과의 만남이라는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실패와 좌절을 마다하지 않는 긴 시간의 여정이 필요합니다. 사순시기 40일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떠한 삶이면 이 사순시기를 은총의 시기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선, 사탄의 유혹 앞에서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모습을 그대로 본받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필요 이상의 빵, 곧 물질로부터 해방되고 이웃과 나눔으로써 자유의 몸임을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지나치게 인간적인 성취감에 도취한 나머지 하느님이 아니라 사탄에게 굽실거리는 비굴함은 떨쳐버려야 하겠습니다. 또한 신앙인으로 살면서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고통에 굴복하여 하느님의 존재와 능력에 의심을 품는, 어떤 고통이라도 극복할 힘과 용기를 주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시험하는 못난 모습은 털어버려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귀하게 허락된 은총의 이 사순시기, 나누는 삶으로 세속의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몸임을 드높이고, 그것이 내 마음 안에서 비롯된 것이든 밖에서 유입된 것이든 굴하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께 매여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순시기,
자비하신 하느님만이 부족한 나를 치유해 주시고 내가 겪고 있는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수 있는 분임을 고백하며,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당당하게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가운데 ‘새 아담’의 모습을 되찾아 확립하는 사순시기, 그 첫 주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마태 4,1-11: 예수께서는 40일을 단식하시고 유혹을 받으셨다.
1. 사순절: 구세사의 광야로의 초대
재의 수요일로 시작된 사순절은 하느님의 구원계획 안에서 “새로운 창조”를 향한 영적 순례의 시간이다. 교리서는 사순절을 이렇게 규정한다. “사순 시기는 신자들이 세례나 회개의 성사를 통하여 하느님께로 돌아가고,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더욱 깊이 묵상하며 참여하는 시기이다.”(540 참조)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하느님을 만날 준비를 위한 정화와 시련의 상징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며 하느님 백성으로 정화되었고(신명 8,2-4), 모세는 40주야를 산 위에서 머물며 율법을 받았으며(탈출 34,28), 엘리야는 40일 동안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1열왕 19,8). 사순절은 침묵과 비움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다. 이 여정은 “우리의 과월절 양이신 그리스도”(1코린 5,7)를 향해 나아가는 순례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나기 위한 준비다.
2. 광야의 유혹: “너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예수님께서는 요르단에서 세례를 받으신 직후, 성령께서 그분을 광야로 이끄시어 사탄에게 유혹을 받게 하신다. 이것은 단순한 시련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시험이었다. 사탄은 두 번이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3.6절)이라고 말하며,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세속적 방식으로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즉, 돌을 빵으로 바꾸고, 스스로를 과시하며, 세상 권세를 차지하라는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정치적 해방과 권력을 가져올 세속적 메시아를 기대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고통받는 종의 길(이사 52–53장), 곧 십자가의 길을 택하신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장면을 이렇게 묵상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유혹을 받으셨다. 그분이 이기셨기에 우리도 그분 안에서 이길 수 있다.”(Sermo 2 de Tempore, 2) 그리스도의 유혹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모든 신자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겪게 되는 내적 싸움의 모형임을 드러낸다.
3. 하느님의 말씀으로 승리하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유혹에 세 번 모두 하느님의 말씀으로 응답하신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명 8,3)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신명 6,16) “주 너의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신명 6,13)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통해 인간적 유혹의 모든 차원을 넘어선다. 그분의 결정은 하느님의 구원계획(salutis consilium) 안에 철저히 근거해 있다. 교리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예수께서는 아담의 유혹을 거슬러 이기셨으며, 자신의 완전한 순종으로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셨다.”(538항) “그분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이기도 하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대표로서 사탄을 이기셨고, 이로써 우리도 그분의 순종 안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되었다.”(539항)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강조한다.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사탄을 물리치셨다. 그러니 너도 네 광야에서, 말씀으로 그를 물리쳐라.”(Homiliae in Matthaeum, 13,2) 말씀은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하느님의 현존과 생명 자체이다. 따라서 “말씀으로 산다.”(4절)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완전히 내어 맡기는 순종의 신앙을 의미한다.
4. 두 아담: 불순종과 순종의 대조
창세기의 원죄 이야기에서 사탄은 인간에게 “너희가 하느님처럼 될 것이다.”(창세 3,5)라고 속이며, 그 결과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죄를 짓게 한다. 바오로 사도는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대조시킨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인이 될 것입니다.”(로마 5,19) 그리스도께서는 “새 아담”으로서 인류를 다시 하느님의 자녀로 회복하셨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말한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류가 죽음에 빠졌듯이, 마리아의 순종과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생명이 회복되었다.”(Adversus Haereses, III,22,4) 예수님의 순종은 단순한 도덕적 복종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완전한 응답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절정에 달한 구속적 순종이다.
5. 오늘 우리의 광야
그리스도인의 삶은 매일의 광야를 걷는 여정이다. 우리도 물질적 안락, 명예, 자아확립의 유혹 속에서 “돌을 빵으로 바꾸는” 시도를 반복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이기셨고, 우리에게도 그분의 승리를 나누어 주신다. 성 바실리오는 이렇게 말한다. “금식은 음식보다 마음을 절제하는 것이다. 진정한 금식은 악에서 떠나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채워지는 것이다.”(Homilia de Jejunio, 1) 사순절은 금식과 회개의 외적 표징을 넘어, 하느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내면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다.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순종의 길은,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자유를 되찾는 길이기도 하다.
6. 결론: 순종 안에서 완성되는 구원
오늘 복음은 단지 유혹의 이야기로 머무르지 않는다. 이것은 인간 구원의 전 모형이다. 예수님의 광야 체험은 세례로 받은 우리의 소명을 되새기게 한다. 그리스도께서 유혹을 이기신 것처럼, 우리도 그분의 말씀에 의지할 때 사탄의 속삭임을 이길 수 있다. 교리서는 이를 이렇게 정리한다. “예수의 순종은 우리의 불순종을 대신하는 것이며, 그분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길을 발견한다.”(615)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기셨다. 그분의 승리는 곧 우리의 희망이다. 사순절의 여정 안에서 우리도 그분과 함께 “하느님의 아들답게” 살아가도록 초대받고 있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이기셨듯이 저희도 세상의 유혹에서 당신 말씀에 굳건히 서게 하소서. 순종으로 구원을 이루신 당신의 사랑을 본받아 사순의 여정 안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부활을 기다리게 하소서. 아멘.”
이병우 신부님_"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마태4,1)
'우리의 모범이신 예수님!'
오늘 복음(마태4,1-11)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본격적인 공생활 시작에 앞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대피정을 하십니다. 이때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악마에게 '세 번의 유혹'을 받으셨는데, 모두 성경 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첫 번째 유혹은 사십 일 동안 단식하신 뒤 매우 시장하신 예수님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마태5,3)라는 유혹입니다. 이 유혹을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명8,3)는 성경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두 번째 유혹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당신의 천사들이 손으로 받쳐 주리라.)"(마태5,6)라는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유혹을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신명6,16)는 성경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세 번째 유혹은 악마가 예수님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마태4,8)라는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유혹을 "사탄아, 물러가라."고 말씀하시면서,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신명6,13)는 성경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예수님께서 악마에게 받으신 세 번의 유혹은 우리가 일상에서 받는 유혹들입니다. 돈과 권력과 명예라는 세상 가치 앞에서 쉽게 받는, 쉽게 넘어가는 유혹들입니다. 이 유혹들을 우리도 예수님처럼 성경말씀으로 물리칩시다! 성경말씀에 깨어 있을 때,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악마의 유혹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유혹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죄'입니다.
깨어 있도록 합시다!
송영진 신부님_<타협의 여지가 없는 단호함으로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분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셨다. 그런데 유혹자가
그분께 다가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데리고 거룩한 도성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마태 4,1-11).”
1)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할 때, 그것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 텐데, 복음서 저자들은 그 일을 어떻게 알고
복음서에 기록했을까?
예수님께서 직접 그 일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경험담’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주시려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나는 이런 일을 겪었다.”가 아니라, “너희는 유혹을 받을
때 이렇게 대처하여라.” 라는 가르침.>
유혹을 물리치는 첫 번째 방법은 ‘기도’이고(마르 9,29),
그 다음은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타협의 여지가 없는 단호함’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탄의 유혹’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 유혹을 물리칠 때 하신 ‘말씀’입니다.
2)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라는 말씀은,
요한복음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요한 6,27).”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누구에게나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긴
하지만, ‘일용할 양식’이 신앙생활의 목적인 것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리는 유혹과 올가미와 어리석고 해로운 갖가지 욕망에
떨어집니다.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1티모 6,7-10).”
<이 말에 대해서,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공동체가 나서야 합니다.>
3)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하신 말씀에 연결됩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
아마도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수난 예고 말씀을
들었을 때,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니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반박했던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니까’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면’과
‘같은 말’입니다.>
어떻든 베드로 사도의 말은, 예수님께 ‘사탄의 유혹’이
되었는데, 사실 베드로 사도 자신에게도
‘사탄의 유혹’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아주 엄하게 꾸짖으신 것은,
그를 사탄의 유혹에서 지켜 주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4)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라는
말씀은, ‘빵의 기적’ 후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던 일에(요한 6,15)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적의 빵’을 먹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한 것은, 예수님이 임금이 되시면
날마다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일은 예수님을 믿고 섬긴 일이 아니라,
‘빵’을 섬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속의 부귀영화만을 원한 것과
다르지 않고, 사실상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일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유혹한 일이기도 합니다.
<신앙인들은 ‘이리 떼 가운데에 있는 양들’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마태 10,16),
온갖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 또한 모든 신앙인이 참고 견뎌야 할
고난과 시련에 포함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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