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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6-02-23 조회수229 추천수7 반대(0)

사순 시기는 단순히 개인의 죄를 돌아보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인지를 다시 선택하는 시간입니다. 무엇으로 세상을 지키려 하는지, 무엇에 기대어 공동체를 세우려 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차분히 성찰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 선택 앞에 우리를 세웁니다. 요즘 세계의 흐름을 바라보면 힘의 정치가 다시 전면에 등장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관세를 통해 경제를 지키겠다고 말하고, 이민자 단속과 추방을 통해 질서를 회복하겠다고 말하며, 베네수엘라와 그린란드 문제에서는 군사력과 힘의 우위를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영역의 정책처럼 보이지만, 이 선택들에는 공통된 언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강하고, 우리가 결정하며, 우리는 양보하지 않는다는 언어입니다.

 

이 언어는 많은 이들에게 안도감을 주지만, 동시에 깊은 질문을 남깁니다. 관세는 외부를 차단함으로써 내부를 보호하겠다는 선택입니다. 그러나 그 비용은 결국 시민들의 물가와 생활비 부담으로 되돌아옵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 가계의 숨통을 조이고, 일상의 여유를 줄입니다. 이민자 단속과 추방은 질서를 회복하겠다는 명분을 가집니다. 그러나 그 질서 아래에서 가족이 갈라지고, 아이들이 부모의 부재 속에서 불안한 밤을 보내는 현실도 함께 존재합니다. 군사력의 과시는 국가의 힘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동시에 세계를 더 큰 긴장과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힘은 즉각적인 효과를 주지만, 그 대가는 조용히 삶의 자리로 스며듭니다.

 

성경은 이런 선택을 낯설게 보지 않습니다. 탈출기의 이집트 역시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군대가 있었고, 국경이 있었고, 질서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그 질서는 히브리 노예들의 고통 위에 세워진 질서였습니다. 파라오는 질서를 말했지만, 그 질서는 약자의 신음 위에 유지되는 질서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질서를 존중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신음을 들었다.” 하느님은 언제나 국가의 안정이나 제국의 안전보다 먼저, 억눌린 이들의 고통을 보시고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창세기의 바벨탑 이야기도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인간은 죄를 지어서 탑을 쌓은 것이 아니라, 두려워서 탑을 쌓았습니다. 흩어질까 봐, 약해질까 봐, 이름 없이 사라질까 봐 사람들은 탑을 쌓아 안전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더 높이 쌓으면 더 안전해질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돌봄 없는 안전은 사람을 하나로 묶어 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언어를 갈라놓고, 관계를 끊어 놓고, 공동체를 무너뜨렸습니다. 바벨탑은 인간의 불안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국경을 높이고, 관세를 올리고, 군사력을 과시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묻습니다. 그 선택 아래에서 누가 울고 있는지, 그 안정 아래에서 누가 숨을 쉬지 못하고 있는지를 보라고 말합니다. 성경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구조보다 사람을 향해 있습니다. 제도가 아니라 얼굴을 보라고, 숫자가 아니라 신음을 들으라고 말합니다. 사순은 바벨탑을 더 높이 쌓는 시간이 아닙니다. 사순은 탈출기의 길을 다시 걷는 시간입니다. 힘으로 세상을 지키려는 유혹을 내려놓고, 돌봄으로 사람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는 시간입니다. 빠른 해결책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선택을 다시 배우는 시간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두려움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길을 걸을 것인지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려워하지 마라.’입니다. 풍랑에 배가 흔들릴 때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함께 계셨음에도 모두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풍랑을 잠재우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실 때입니다. 제자들은 유령인 줄 알고 모두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예수님을 따라서 물 위를 걷다가 두려움에 물에 빠지는 베드로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렇습니다. 두려움과 걱정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과 걱정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볼 수 없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늘의 새도 먹이시고, 들의 꽃도 입히신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느님의 뜻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다 채워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독서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오늘 화답송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두려움과 걱정을 떨쳐버리고 하느님께 의탁하는 사람에게 위기는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사순의 길은 쉽지 않습니다. 힘의 언어는 즉각적인 안정을 약속하지만, 돌봄의 길은 인내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증언합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언제나 힘의 논리가 아니라, 돌봄의 선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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