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이영근 신부님_* 오늘의 말씀(3/22) : 사순 제5주일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6-03-22 조회수49 추천수5 반대(0) 신고

 

* 제1독서 : 에제 37, 12ㄹ-14

* 제2독서 : 로마 8, 8-11

* 복음 : 요한 11, 1-45

사순 제5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성지주일을 앞두고, 마치 부활을 연주하는 ‘전주곡’과 같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무덤에서 끌어내시고, <복음>에서는 죽은 라자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시며, 당신이 주님이심을 밝힙니다.

<화답송>에서는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음을, <복음 환호송>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찬미하며, <제2독서>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영을 통하여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생명의 주님이심을 선포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부활의 전주곡’을 들으면서, 사순시기가 생명으로 가는 길, 곧 부활로 가는 길임을 봅니다. 그리고 그 막바지에 이르러,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쓰라림보다는 감미로움이 서광처럼 비쳐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걷는 이 길에 사랑이 또한 걸어갑니다. 이 길을 걷는 여행은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생각의 이동’(아나톨 프랑스)이요, 참된 생명에로의 이동이요, 사랑에로의 이동입니다.

오늘 우리는 ‘라자로의 소생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는 이와 함께 울어주는 봄바람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둠의 동굴에 갇혀있는 이를 불러내는 봄 햇살 같은 이야기입니다. 주저앉아 웅크리고 죽어 있는 이를, 빛으로 불러내는 봄비 같은 생명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라자로의 소생이라기보다, 죽음 앞에서 드러나는 예수님의 정체입니다. 곧 죽은 라자로를 살리는 당신이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당신은 스스로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한 11,25)

그렇습니다. <요한복음>의 머리말에서,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라고 장엄하게 예고된 그 “생명”입니다. 곧 빛이신 생명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어 하신 일은 바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죽음의 어둠 속에 생명의 빛을 비추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생명이시요, 빛이신 까닭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생명이신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생명의 길로 부르십니다. 참 생명에로 이동입니다. 그 길은 ‘앎’에서 ‘믿음’에로의 이동입니다. ‘당신이 생명이요 부활임에 대한 믿음’으로 초대입니다.

<본문>에서 마르타는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요한 11,22)

마르타는 “알고 있다.”고 고백할 뿐, “믿는다.”고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요한 11,23)라고 말씀하셔도 여전히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요한11,24)라고, “안다.”고만 고백합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을 떠올려봅니다.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1코린 8,2)

마르타는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은 예수님을 마주하고 있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부활과 생명을 믿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믿음”을 촉구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아는 것’을 넘어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믿을 때라야, 그 믿는 이에게 부활과 생명이 부여된다는 말씀입니다. 부활과 생명은 먼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사건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부활은 믿음 안에서 현재의 사건이 됩니다. 그렇게 ‘믿음’은 오늘도 우리의 일상과 현재를 변화시킵니다.

그러기에, 부활은 “지금 여기”에서 믿어야 하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죽음 이후에야 얻을 수 있는 생명이 아니라, 현세와 현세를 넘어서 얻을 수 있는 풍만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르타는 “너는 이것을 믿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여전히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되어 있는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 11,27)

마르타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믿었지만, “부활이요 생명”임에 대해서는 믿음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동굴 무덤의 돌을 치우라고 했을 때도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요한 11,39)하고 여전히 믿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거듭 강조하시어 나무라듯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요한 11,40)

이는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앎’에서 ‘믿음’으로의 이동하라는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선사하시며, 불신과 어둠의 묻혀있는 저희의 무덤을 열어주십니다.

그리고 저희를 당신 생명의 빛으로 부르십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43)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6)

주님!

제 생명이 죽고, 당신 생명이 피어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 안에 살아계신 당신 생명을 보게 하소서!

제가 사라지고 당신이 드러나게 하소서!

당신의 생명을 살게 하소서!

제가 믿음으로 당신의 영광을 보리이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