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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영근 신부님_* 오늘의 말씀(5.31) ;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09:27 조회수41 추천수1 반대(0) 신고

* 제1독서 : 탈출 34, 4ㄱㄷ-6. 8-9

* 제2독서 : 2코린 13, 11-13

* 복음 : 요한 3, 16-18

* <오늘의 강론>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가슴 떨리는 신비입니다. 알아듣기에는 어려워도 참으로 벅찬 사랑의 신비입니다. 너무 깊어 헤아려지지 않아도, 오히려 다 헤아려지지 않기에 더 깊이 매료당합니다. 다 이해되지는 않아도, 그 사랑은 충분히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는 이 신비의 내용을 알아듣는 데는 한계가 있다손 치더라도, 중요한 것은 이 신비를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듣는 일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라는 이 용어가 생겨난 역사적 배경은 3세기~5세기입니다. 이때, 교회에는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인식하는 하느님이 ‘실제 하느님과 다르고’ 또 ‘성령과 하느님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바로 이런 주장들 앞에서 신앙인들은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삼위일체”란 이 용어를 통하여 신앙인들이 고백하고자 했던 것은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알아듣는 하느님은 실제의 하느님이고, 또 신앙인들 안에 숨결로 일하시는 성령도 실제 하느님이라는 것을 믿는 일이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오늘 <제2독서>에서,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전에 이미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길 빕니다.”(2코린 13,13)

이는 사랑의 하느님과 은총의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의 성령께서는 같은 하느님이심을 말해줍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삼위일체”에 대한 의미를 잘 드러내줍니다. 곧 ‘어떻게 하느님의 사랑이 세상 가운데 나타났는지’를 드러내주며,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는지’를 말해줍니다. 따라서 이 신비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에 대한 축복을 깨우쳐줍니다.

<제1독서>에서, 모세는 말합니다.

“주님께서 구름에 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와 함께 그곳에 서시어,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다.”(탈출 34,5)

“주님,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주시기를 바랍니다.”(탈출 34,9)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다.”(2코린 13,11).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길 빕니다.”(2코린 13,13)

<복음>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네 인간들과 함께 사시기를 원하셔서 당신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 아들 예수님을 인간의 동행자로 삼으시고 벗이 되어 “함께 있게” 하시고 당신의 생명으로 이끌게 하십니다.

이를 오늘 <복음>에서는 이렇게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신 하느님의 ‘참 사랑’입니다. 곧 아들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하는 사랑입니다. 이 ‘참 사랑’을 단적으로 표현해 본다면, “함께 있음”이며, “함께 한다”는 것의 복음적 의미는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함께 있음”이 사랑입니다. 이 “함께 있음”이 곧 ‘삼위일체 하느님의 본성입니다. 따로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아니하고,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입니다.

서로 사귐으로 친교를 이루며, 상호 교제하고 상호 교환하며, 상호 내재(내주)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내어주어 타자 안에서 일치를 이루고, 자신 안에서 타자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대와 연대의 관계 맺음이요, 우애와 형제애로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일입니다. 사랑으로 서로 함께 있고, 서로 속해 있고, 서로의 것이 되는 참으로 아름다운 결합의 일치요, 축복이요 은총입니다.

사실,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얼마나 밀접하게 관계 맺고 계시는 지를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께서 인류 역사 안에서 얼마나 다양하고, 얼마나 은혜롭고, 그리고 얼마나 깊게 일하시는 지를 드러내주는 신비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하느님께서 “삼위일체”이시라는 의미는 “하느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살아계시고 활동하시며, 지금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함께 하시는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언제나 우리와 동행 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참으로 하느님은 삼위로 함께 계시기에 사랑이십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이렇게 함께 있음”이 바로 축복이요 은총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여기 이 수도가정에서, 이 성당에서 “함께” 만나 한 분이신 주님을 찬미하는 일, 이토록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함께 서로 사랑하는 일, 이토록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그것은 하느님 사랑 안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는 거룩한 일. 그 거룩한 삼위일체의 신성 안으로 쏙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은 이토록,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자신을 바로잡으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 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2코린 13,11). 아멘.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요한 3,16)

주님!

당신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손에 못이 박히고 가슴이 창에 찔리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면서도

죽기까지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당신 사랑의 멍에를 지고 거부되고 배척받을지라도

죽기까지 사랑하기를 멈추지 말게 하소서.

이해받지 못하고 부당한 처사를 받을지라도

사랑으로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사랑으로 눈감을 줄을 알고, 낮아져 밟힐 줄을 알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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