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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머니의 기도...[2] 9월의 마지막 달
작성자이재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1-04-04 조회수2,039 추천수2 반대(0) 신고

[9월의 마지막 달]

 

나는 아이를 잘 안다.

경상도 지아비를 닮아서, 여자 앞에서 말주변도 없고, 무뚝뚝한 것이

연애하기는 애시당초 글러 먹었다.

 

중매로 자리를 만든 것이 벌써 몇 번이었나?

번번히 돌아와서는 "제탓에 아가씨가 돌아갔습니다." 아이가 말한다.

아이 아버지는 한술 더 뜬다.

"그러니까, 복장이 그게 뭐냐? 좀 반듯하게 잘 차려입고, 매너있게 행동하고..."

"아버님, 알겠습니다. 다음번에는 잘 하겠습니다."

아이는 짤막한 대답을 뒤로 하고, 옷을 휙휙 벗는다.

 

나는 아이의 모습에서 다른 것을 느낀다.

마치 무거운 굴레를 벗는 듯 자유로워 하는 것이, 애당초 맞선이 마음에 없는 게 분명하다.

아직도 때가 아닌지, 도대체가 결혼에는 생각이 없다.

’벌써 나이는 30대 중반에 들어섰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빨리 짝지어 주어야 지들이 어떻게 툭탁거리며 살던지 한시름 놓겠는데.

휴우... 내 가슴만 답답하다.’

 

지난 7월, 집을 마련하고 아이에게 물었다.

"너, 결혼은 안 할꺼냐?"

"어머님, 아직은... 제가 할 일이 좀..."

"뭐가 그리 중요하냐? 일단 결혼을 하고, 둘이서 함께, 할 일 하면 되지 않냐?

그리고, 집 마련 했는데, 들어가야 할 것 아니냐?"

"어머님, 그러면 우선 혼자 생활 좀 해 볼까요?"

"너 혼자 있으면 밥이나 제대로 해먹겠냐?"

"아침은 여기와서 먹고, 점심, 저녁은 회사에서 먹으면 되요."

 

아이는 7월 말에 짐을 싸고 분가했다.

’그래, 분가하고 싶은 거야. 식사나 잘 챙겨 먹으면 좋을텐데...’

나는 묵주를 손에 쥐고, 성모님 앞에 앉았다.

아이를 위해 바치는 묵주의 기도가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다.

 

분가한 아이는 아침마다 집에 와서 식사를 하고, 아버지와 함께 출근한다.

이것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의 이런 생활은 2주를 넘지 못했다.

이젠 아주, 출근시간 직전에 집에 온다.

"너, 밥은 먹었냐?"

"예, 먹었어요."

"뭐 먹었냐?"

"엊저녁 사둔 빵과 우유를 먹었어요."

"빼먹지말고 잘 챙겨 먹어라."

 

아이는 아버지를 모시고 출근했다.

나는 아이가 아침을 굶은 줄 알았지만, 모른척 했다.

요즘 들어 아이는 부쩍 말라 보인다.

’쯪쯔, 회사에서 식사나 제대로 하는지...’

나는 간단히 설겆이와 청소를 마치고, 성모님 앞에 앉는다.

 

아이는 토요일이면 집에서 자고 간다.

나는 아이와 같이 식사를 하고, 함께 TV를 보는 것이 재밌다.

"어머님, 김경영이라고, 학교 동창인데요, 수원에 혼자사는 집이 8월말이면 전세 계약이 끝난데요."

"그런데?"

"친구는 10월말에 결혼날짜를 잡았는데, 두달정도 저와 함께 있으려구요. 괜찮죠?"

"모여다니며, 술먹고, 집에서 난리법석을 떨려구?"

"아니에요. 걔는 장로교회에 다니는데, 술도 담배도 안하고, 다른것도 배울점이 참 많아요."

"그래. 뜻대로 해라."

아이는 이제 토요일에도 집에 오질 않는다. ’살도 좀 찌고 건강하면 좋으련만...’

 

추석이 되었다.

아이도 연휴동안 집에 와 있다.

아이 아버지는 등산을 가고, 집에 아이와 둘이 있는데,

심경에 변화가 생겼는지, 갑자기 중매자리를 알아 달라고 한다.

"네가 웬 일이냐?"

"어머님, 저도 결혼해야겠습니다."

드디어, 아이가 결심을 했다. ’얼마나 아이에게 듣고싶은 말이었나?’

나는 바로 성당에서 알고 있던 아주머니 몇 분에게 전화를 했다.

 

"가멜라 형님, 전에 외조카가 중매자리 알아본다고 하셨죠? 아직도 성사가 안 되었나요?"

"응, 그런데 어디 좋은 자리라도 있나?"

"예, 형님, 내아들 어떻습니까? 선을 안보겠다더니, 이제 결혼할 마음이 생겼나봐요."

"잘 되었네. 그 아이라면 내가 좀 알지. 전에 봉사활동 다닐때 봤는데, 어찌나 열심이던지..."

"그러면, 날을 한번 잡지요."

"조카가 전라도 광주에 있는데, 가끔 서울에 오거든. 내가 때를 맞춰 연락을 함세."

"잘 되었네요. 형님."

 

드디어, 9월 30일.

아이는 단정히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한다.

향수를 뿌린 듯, 아이 옷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매너 있게, 눈은 상대를 정중히 쳐다보고, 말은 부드럽게 하고, 유머있는 말도 하고."

뒤늦게 아이 아버지가 한참을 충고한다.

"아버님, 염려마세요."

아이는 현관문을 열었다.

 

세시간이나 지났을까? 아이가 돌아왔다.

"얘기 잘 되었냐?" 아이 아버지가 말하셨다.

"예, 아버님 말씀대로, 상대의 눈을 잘 마주치고, 매너있게 유머있게 얘기를 했어요."

"그것 봐라. 내 말대로 하면 다 되지, 어흠, 올해는 국수를 좀 차려볼까?"

"당신도 참, 이제 한번 만났는데, 더 두고 봐야 알지요."

"어머님, 제가 성사되도록 잘하겠습니다."

"그래, 방에 가서 쉬어라."

"아니에요. 친구 혼자 있을텐데, 제집으로 가겠습니다."

 

아이가 갔다.

아이는 얼굴이 밝았었지만, 왠지 억지 표정을 지은 듯하다.

나는 아이를 잘 안다.

아이는 결혼을 해야겠다는 강박의지로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아이를 자유롭게만 두면, 다시는 결혼얘기가 나올 것 같지도 않다.

’그래. 다 그런거지. 안되면 강제로라도 밀어부치자.’

 

"재경이 아빠, 웬만하면 집안끼리 나서서 서둘러 보내는 게 좋겠어요."

"음. 내 생각도 그래. 올해 치우자구."

오늘 아이가 만난 사람은 어떤 처녀일까?

얼굴 다듬고 하는 것보다, 참하고 내조 잘할 아가씨면 좋겠는데...

’아, 올해는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나는 묵주기도를 바치려다, 무료해 하는 아이 아버지를 보고, 오랜만에 화투장을 들었다.

그렇게 마지막 달이 기울어 갔다.

 

[3]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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