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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머니의 기도...[4] 삶을 마감하는 날
작성자이재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1-04-05 조회수1,653 추천수1 반대(0) 신고

[삶을 마감하는 날]

 

 

오늘은 내시경 촬영일이다.

어제 저녁식사 후,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배고픔보다는 공복에 창자를 찌르는 아픔이 온몸에 감돈다.

나는 회사에 차를 두고, 아버님과 함께 바로 성가병원으로 향했다.

"별일 없을거야. 옛날에는 못 먹어서, 위가 병들었지만, 이제는 다르지 않냐?"

"예, 아버님, 저도 그냥 건강진단이라고 생각해요."

"암, 그래야지."

아버님이 쓸쓸하게 웃으신다.

 

열흘 전, 본가에 은정이 왔을 때, 부모님은 매우 즐거워하셨다.

평소에 잘 모르는 사람과는 말씀이 없으신 아버님께서도,

그날만큼은 유난히 많은 말씀을 하셨다.

가족이며, 직업이며, 부모님은 뭘 하시는지, 아버님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즐거워 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오랜만에 부모님께 기쁨을 드린 것 같아, 나도 스스로 대견해 했었다.

 

이젠 서로 방문을 마치고, 상견례만 남은 상태다.

내시경 촬영 전, 은정에게 전화를 했다.

"응, 괜찮아. 나중에 결과를 알려줄께. 그냥 건강진단이야."

"조심하세요."

큰일이라도 생긴 듯, 걱정하는 은정이 귀엽다.

 

내시경 촬영실에 가서, 이동침대에 누웠다. 긴장된다.

간호사가 주사를 놓고, 이동침대를 컴퓨터 앞으로 옮겨 갔다.

"이렇게 하세요."

간호사는 일일이 촬영자세를 잡아준다.

옆으로 누워서 허벅지와 가슴이 90도, 다시 무릎을 90도 굽히고, 두 무릎사이에 양손을 끼웠다.

’이것이 어머님 태 안에 있을 때의 자세일까?’

한번도 취하지 않았던 자세였는데, 매우 친숙한 느낌이다.

편안하다.

 

의사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전에 찍은 적이 있나요?"

"아니요."

"몇 살이에요?"

"67년생 양띠."

"가족이 있어요?"

"아버님 쥐띠, 어머님 뱀띠, 남동생 하나 닭ㄸ..."

 

눈을 떴다.

’다 찍었나? 몇시간이나 지난거야?’ 일어나 앉는데, 머리가 쑤셔 온다.

간호사가 아버님과 들어왔다.

아직 어지러워서 아버님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사진을 검토하시고 있는 의사선생님 앞에 아버님과 함께 앉았다.

 

나는 어지러운 머릴 흔들어가며, 책상위의 사진에 시선을 집중했다.

"어떻습니까?" 아버님이 물었다.

"정밀 검토 결과는 11월 10일에 나옵니다. 제 소견으로는 위궤양 같군요."

나는 고개를 들어, 의사선생님의 눈을 마주쳤다.

의사선생님이 아버님께로 눈을 피한다.

 

’그래. 저건, 위암이다.’

사진은 옛날에 병문안 다닐 때, 내과 병동의 벽을 장식하던 위암사진과 흡사했다.

더구나, 의사선생님이 마주친 시선을 바로 피하지 않았던가?

아버님과 함께 병원을 나섰다.

"그봐라. 별일 아니지 않니? 위궤양이야 지천에 널린 병 아니냐? 약먹으면 된다."

"내일모래, 검사 결과를 봐야지 확실히 알죠."

 

어지러움이 가시고, 사물이 또렷해졌지만, 회사로 들어가기 싫었다.

"아버님, 아직 어지러운데, 싸우나에서 좀 자다가 갈께요."

"그래. 퇴근시간 전까지는 돌아오너라."

"예, 아버님."

부천역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냥 여기저기 다니고 싶다.

사람들 구경하면서, 시장으로, 큰길가로 무작정 걸었다.

사람들이 마냥 행복해 보인다.

매연을 내뿜는 버스도 귀여워 보이고,

길가에서 도라지를 파느라고 손님과 실랑이 하는 할머니도 운치있어 보인다.

제과점 앞을 지나다가, 대입 앞둔 조카 생각이 나서 ’합격엿’을 한 바구니 샀다.

햄버그, 짜장면, 떡볶이며, 당분간 못 먹을 것 같은 음식들을 왕창 먹었다.

 

퇴근시간을 맞춰 아버님 모시고, 본가로 갔다.

어머님과 식탁에 마주 앉았다.

"그래, 내시경은 잘 찍었냐? 뭐라고 하더냐?"

"위궤양이래." 아버님이 대답하셨다.

"그런 줄 알았다. 그렇게 세끼 꼬박 챙기라고 해도, 제때에 식사를 안하더니만, 쯔쯧..."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빨리 식습관을 고쳐라. 한끼 굶으면 배가 고프니, 다음 끼니에

과식하는 것은 뻔하쟎냐? 불규칙한 식사가 위병의 원인이야. 술, 담배도 줄이고..."

"알겠습니다."

 

조용히 식사만 했다.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다.

위암이라는 심증을 말씀드릴 수는 더욱 없다.

오늘, 혼자 다닌 동안에는 오히려 담담했는데, 부모님을 마주하면, 슬픔이 밀려온다.

더 있다가는 눈물을 떨굴 것 같아,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일어선다.

"어머님, 그만 집에 가겠습니다."

"왜, 좀 더 있지 않고."

"예. 정리할 게 좀 있어서요. 아버님,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거라."

 

친구 경영이 10월말에 이사를 하고, 불이 다 끄진 집에 혼자 들려니, 무척 쓸쓸하다.

이것저것 정리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종이들, 각종 청구서, 우편물, 홍보물들...

’좀 가볍게 살 것을, 왜 이렇게 복잡하고 지저분한 거야.’

한장씩 훑어보며 정리하다, 몽땅 집어서 쓰레기통에 쑤셔넣었다.

 

세탁기를 돌리고, 화장실이며, 베란다며, 청소도 말끔히 마쳤다.

 

’내일은 회사일을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남은 시간들은 가족과 지내자.’

집에 전등을 모두 끄자,

다시 바람이 창문 틈을 비집어 들며 간간이 귀에 익은 소리를 낸다.

 

 

[5]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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