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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머니의 기도...[5] 어머니의 기도
작성자이재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1-04-05 조회수1,832 추천수2 반대(0) 신고

[어머니의 기도]

 

 

"암입니다."

사진을 든 의사선생님의 무거운 저음이 내 귓전을 울린다.

"무슨 말이세요? 조금전까지만해도 궤양이라고..." 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예, 아깐 환자가 함께 있어서... 환자가 충격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진상으로는 위암이 초기를 넘었습니다. 오늘 입원해야 합니다."

의사선생님의 단호한 말에 나는 가슴이 무너졌다.

 

아이 아버지와 돌아서는데, 출입문 앞에서 차마 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마음을 진정시켜야 한다.

아이를 데리고, 진료 순서를 기다릴 때만 해도, 우리가족은 매우 희망적이었다.

청진기 앞에 웃옷을 걷어부친 아이의 가슴뼈가 유난히 말라 보였지만,

궤양이란 진단에, 나는 다행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입원계획을 잡아야 하니까, 환자는 잠깐 나가 계세요."

"궤양인데, 입원을 하나? 약으로 치료할 줄 알았는데..."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갈 때도,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었다.

 

나는 아이 아버지의 손을 꼭잡은 채, 마음을 진정시켰다.

아이는 대기석에 앉아, 진료 대기중인 한 꼬마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님, 언제 입원하기로 했어요?"

"응, 지금 당장 입원하래."

"당장요? 안되요. 차도 여기에 있고..."

"좀 시키는대로 해라. 안그래도, 입원환자들이 줄을 서고 기다리는데,

오늘 놓치면 병실에 자리가 없을 수도 있어."

언성을 높이는 아이 아버지의 눈이 충혈되었다.

 

"어머님, 주일 보내고 나서, 월요일에 입원하겠습니다.

하루이틀 차이로 제 몸에 큰 이상이야 있겠습니까?"

아이 아버지와 나는 아이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나는 아이를 잘안다. 아이는 아버지를 닮아 무척 고집이 세다.

백명이 틀리다고 해도, 제가 옳다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다.

 

결국 입퇴원계에 가서, 11월 13일로 입원 예약을 마치고, 병원을 나왔다.

"아버님, 그럼 저녁에 뵙겠습니다."

아이는 아버지를 회사에 모셔드리고, 나와 함께 집으로 왔다.

아이는 평소처럼 옷을 갈아 입고, TV앞에 앉는다. 바둑을 보고 있다.

나는 묵주를 들고, 성모님 앞에 앉았다.

눈물이 날것 같아, 다시 일어섰다.

"엄마는 기도를 할테니, 냉장고에 과일이라도 좀 내어 먹어라."

"예, 어머님."

아이의 대답을 뒤로, 나는 안방문을 꼭 닫은 채, 다시 성모님 앞에 앉았다.

 

성호를 긋고, 사도신경을 시작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으로 인하여...’

고개를 깊이 숙이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아, 진정하자. 진정하자.’

아무리 다짐을 해도 하염없는 눈물은 그칠줄을 모른다.

십여분을 더 울었다.

’자, 진정하자. 사도신경을 외자.’

다시 마음을 가다듬지만, 40년이 넘게 외던 기도문이 하나도 생각나질 않는다.

그렇게 묵주를 들고, 울음을 삼키며 한참을 앉아있었다.

 

’몇 시나 되었을까?’ 아직 아이 아버지가 오려면 2시간은 남은 듯하다.

방문을 열고 거실을 보니, 아이는 아직도 바둑을 보는 지 TV에 집중하고,

탁자위에 귤껍질이 서너개 널려 있다.

"좀 더 먹지 그러냐?"

"배부른데요. 나중에 아버님 오시면 같이 식사하러 가야죠?"

"그래. 이따가 추어탕 먹으러 가자."

 

화장실에 가서 찬물에 얼굴을 닦았다. 정신이 번쩍 났다.

마음이 진정되고, 좀 차분해졌다.

다시 안방으로 들어오는데, 아이가 말한다.

"어머님, 드라마 보실꺼예요?"

"아니다. 너, 바둑이나 마저 보거라."

나는 드라마를 좋아하지만, 아이와 마주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다시 안방으로 왔다.

 

묵주를 들고, 성모님 앞에 앉는다.

기도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지. 그래 아이 생각을 하지말자.’

나는 애써가며, 지향을 바꾸었다.

’우리 쁘레시디움 회원들이 건강하길 빌자.’

기도는 순조로웠다.

성모님께서 내 입술을 이끌어 주셨다.

나는 점점 내가 외는 성모송으로 빨려들어 갔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몸이 공중에 떠 있는 듯, 깃털처럼 가볍더니, 어느새 하늘을 날고 있다.

저 아래로 내 아이가 보인다.

혼자 웅크리고 앉아 있다.

아이를 좀더 자세히 보려고, 고개를 땅으로 숙였다.

 

아이가 점점 선명해진다.

아이는 부러진 나뭇가지로 땅에 글을 쓰고 있다.

’무슨 글일까?’

나는 하늘에 발을 딛고, 아이 머리 뒤로 한뼘 정도 얼굴을 갖다댔다.

아이의 글을 봤다.

’아파요. 아파요. 아파요. 아파요.’

 

가슴이 찡해 오는데,

갑자기 등으로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스쳤다.

돌아보았다.

저멀리 발끝으로 빛나는 십자가가 보인다.

십자가가 또렷이 말한다.

 

"여인아, 나를 원망조차 않다니,

네 믿음이 기특하구나.

아무 걱정말아라.

네 아이는 세상에서 할 일이 더 있다.

때가 되면, 내가 손수 너희들을 거두리라."

 

 

[6]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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