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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예리고 성 허물기
작성자강세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1-08-17 조회수2,185 추천수12 반대(0) 신고

저는 가톨릭에 몸 담은 지 꽤 오래 되었습니다. 제가 세례를 받을 당시에만 하더라도 소위 교리문답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첫째 물음이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사는가?"였고, 그 답은 "사람이 천주를 알고 천주를 흠숭하기 위해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문답을 이해하려고 책도 많이 읽고, 여러 가지 신심 활동도 참가하였으나 제 것으로 만드는 데는 실패하였습니다.

성가대 활동을 하게 됨에 따라 많은 성가를 정성스럽게 불렀으나 그 노래 말이나 가락이 매우 예술적으로 아름답다고 느꼈을 뿐, 성가의 내용이 하느님을 찬미하는 데에 다소 과장되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제 일상 생활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고 지내 왔습니다. 그렇게 거의 30년 동안 신앙 생활을 하다 보니, 제 마음은 무딜 대로 무디어 지고, 굳을 대로 굳어 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놀라운 일들이 연거푸 일어났습니다. 본당 신부님께서 복음화 학교의 정치우 안드레아 형제님에게 사순 특강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로 견진 대상자와 본당의 각종 간부직을 담당하는 분들에게 복음화 학교 1단계 교육을 받도록 조치하셨습니다. 저는 견진은 이미 오래 전에 받았고, 간부도 아니었는데 첫 강의가 있던 날 괜히 성당에서 얼쩡거리다가 얼떨결에 등록을 하고 강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복음화 학교 1단계 교육 내용은 저희 집사람이 몇 년 전에 받은 적이 있어서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새로운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도 무엇이든지 시작하면 열심히 하고 보는 제 성격상 꾸준히 강의도 듣고 생활도 바꾸어 보려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생활을 바꾸려는 제 노력은 어느 단계에서 한계에 부딪치고 별로 변한 것도 없이 한 주, 또 한 주가 흘러 갔습니다.

1단계가 거의 끝날 무렵, 갑자기 꾸르실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침묵 중에 제 자신을 자세히 돌아 보며 꾸준히 저의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주님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평소에 저는 죄를 피하고, 선을 행하고자 노력하지만 이 세상과 이웃은 죄로 물들어 있다고 단정하고 있었는데, 한 순간 모든 것이 뒤집혔습니다. 뿔 나팔과 고함 소리에 예리고 성이 무너지듯 제 자존심과 아집이 사라지고, 이 세상이 달라 보였습니다. 하느님이 지으신 이 세상과 이웃이 그렇게 아름답고 거룩한데, 저는 죄악 투성이였습니다. 그런 죄인을 회개 시키려고 최근 몇 달 동안 주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저를 애타게 부르신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품에 돌아온 탕자처럼 저는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자신이 변한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전혀 이해되지 않았던 교리문답 첫째 질문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사는가?"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죄로 더럽혀진 저 하나를 살리기 위해 주님께서 이렇게 일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주님을 찬미하며 따르지 않고 다른 길을 가겠습니까?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주님 뜻대로 쓰십시오."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답고 착하시며 힘 있는 주님을 찬미하기에는 어떤 성가로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저의 생활도 다른 사람들이 보면 광신이라고 할 정도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주님을 만나 바뀐 제 모습과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려 애쓰고, 성서도 열심히 읽으며, 거의 매일 평일 미사에 참석하는가 하면, 전에는 생각도 하지 않던 성체 조배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매일처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금 신기한 사건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번이나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미리 설명할 것이 있습니다.

저희 본당에는 지속적인 성체 조배회가 있습니다. 이 회의 회원들은 당번제로 한 시간씩 따로 마련된 성체 조배실에서 성체 조배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성체 조배실을 비우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저녁 미사가 있는 날이었는데, 미사 전에 성체 조배를 하려고 한 시간쯤 일찍 가려 마음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자꾸 성당에 일찍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사 시작 두 시간 전에 성당에 도착하여 성체 조배실에 갔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성체 조배 회원은 아니었지만 규칙을 알고 있는 터라 울며 겨자 먹기(?)로 거의 두 시간을 성체 앞에서 묵상도 하고 성가도 부르며 앉아 있다가 나왔습니다. 나와서 곰곰이 생각하니 "혹시 주님이 성체 조배실이 빌 것을 미리 아시고 나를 부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또 며칠 전에도 거의 같은 일이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갑자기 성당에 가고 싶어져서 일단 성당에 나와 보았습니다. 역시 그날도 성체 조배실이 비었으니 성체 조배를 하려면 지금 하라고 한 형제 분이 제게 이르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과 사귄 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 주님께서는 저를 기억하시고 만나자고 부르신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저는 요즈음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삽니다. 가사는 잘 몰라도 아무때나 성가를 흥얼거리게 되고, 아무때나 저절로 묵상을 하게 되는 버릇이 들었습니다. 주님이 저와 함께 산책하고, 저와 함께 책을 읽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저를 무엇에 쓰시려고 이렇게 변화시켰는지 아직은 모르지만 저는 이제 완전한 자유인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은 많은 형제 자매님들, 특히 형제님들도 마음속의 튼튼한 예리고 성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서 뿔 나팔 소리 한 번에 무너지도록 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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