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중앙일보에서 퍼왔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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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동규 | 작성일2001-12-30 | 조회수1,919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제 목 일본에 여왕이 나올수 없게 된 사연
지금 일본 언론들에서는 ’여성 천황’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왕세자 나루히토 부부가 결혼 8년만에 첫 자녀를 출산했는데 딸이었거든요. 그런데 영국,네덜란드,덴마크등 입헌군주제 국가인 유럽 각국들과는 달리 일본에선 여성은 제도적으로 왕이 될 수 없습니다. 현행 ’황실전범’ 에서는 "황위는 황통에 속하는 남계(男系)의 남자가 이를 계승한다"라고 명문화돼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황실전범’을 개정해서라도 여왕이 탄생할 수 있게 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아사히 신문의 여론조사로는 응답자의 83%가 ’황실 전범’을 개정, 여왕을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고대 일본에서는 여왕,일본의 용어로는 ’여제’가 있었습니다. 신화시대까지 포함해서 현재의 일본 아키히토 왕은 125대째인데, 그 가운데 8명의 여왕이 있었습니다.(중복이 있었는지 재임횟수는 10회였다고 합니다.) 여왕의 탄생을 원천적으로 금지한 현행 왕실전범은 사실은 1백40년전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겨우 네사람의 왕에만 적용된 것이므로 그 역사는 아주 일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같은 규정이 만들어지게 된 내막이 재미있어 잠깐 소개할까 합니다.
이야기는 18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당시는 도쿠가와 막부의 말기였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질지 모르나 당시 일본은 이른바 무사 정권,즉 도쿠가와 가문이 대대로 ’쇼군’(장군)이 돼서 전국을 통치하는 시대였고 그들이 왕으로 모신 ’텐노’(천황)는 실질적 권력은 전혀 없었습니다.) 막부통치가 힘을 잃어가면서 개혁파 사무라이들 사이에 텐노를 중심으로 나라를 개혁해야한다는 ’존왕양이’ 운동이 힘을 얻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때 텐노였던 고메이(孝明) 왕이 후손이 없는 상태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이때 가장 가까운 혈육은 여동생 가즈노미야(和宮) 공주였는데, 하필이면 당시까지의 전통을 깨고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이었던 이에모치(家茂)와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그것은 텐노 가문과 쇼군 가문이 하나가 돼야 된다는 이른바 ’공무합체’운동의 결과였습니다.)
자,이때 만약 가즈노미야가 여왕이 됐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졌을까요? 남편인 이에모치와의 사이에 태어난 자손이 다음 텐노가 될 것이므로, 왕실의 대가 영원히 도쿠가와 가문으로 넘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도쿠가와 막부를 타도하려 했던 당시의 개혁파 사무라이들은 이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겁니다.그래서 그들은 그때까지 없던 ’황실전범’ 규정을 만들어 넣어 여성은 텐노가 될 수 없게 한 겁니다. 그래서 왕통은 메이지 텐노,다이쇼 텐노,쇼와 텐노를 거쳐 지금의 헤이세이,즉 아키히토 왕에까지 이르게 된 겁니다.
어쨋든 일본 왕실에선 최근 36년간 아들이 태어나지 않고 계속 딸만 태어나고 있습니다.현재의 왕세자가 끝내 아들을 낳지 못하면 다음 왕은 그의 남동생이 됩니다.그런데 이 남동생도 현재 딸만 둘입니다.그렇게 되면 현재로선 세번째 왕위계승 순위는 왕세자의 삼촌,즉 현 아키히토 왕의 남동생이 맡습니다. 그런데 이분도 아들이 없습니다. 나머지 왕위계승 순위에 있는 왕족들은 모두 나이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1백년 이내에 왕실의 대가 끊길지 모른다는 걱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여왕제를 인정하자는 논의가 정말로 본격화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번에 출산한 마사코 왕세자비가 현재 곧 38세가 되는데 어쨋든 아직은 남자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좀 더 두고 볼 겁니다. 그래서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만 하는 운명에 있는 마사코 왕세자비를 동정하는 여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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