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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의 성의1 (Holy Shroud)
작성자정베드로 쪽지 캡슐 작성일2002-02-28 조회수1,931 추천수9 반대(0) 신고

< 화면을 크게해서 봐주세요!! >

 

 

위는 ’성의’에 나타난 예수님의 얼굴 부분만을 확대 현상한 것입니다.

왼쪽이 실물 형상이고 오른쪽은 사진으로 찍었을 때 사진필름(네가티브)에 나타난
예수님의 거룩하신 얼굴입니다.

 

 

성의의 전체 면을 사진에 담은 실물 모습입니다.(즉, 성의를 우리 육안으로 봤을 때)

 

 

성의를 사진으로 찍었을 때 네가티브 필름 상에 나타난 무덤에 묻히신 당시의 주님의 전체 모습이십니다.

(성의의 정면의 이미지; 뒷면은 따로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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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길어서 1, 2, 3 편으로 나누어서 연재하겠습니다.

 

아래의 글과 앞으로 올릴 두개의 글들은(성의 1, 2, 3) ’The DNA of GOD?"

(Dr. Leoncio-A. GARZA-VALDES), 와 "Report on the SHROUD of TURIN"(Dr. John H. HELLER)

의 두 책, 그리고 기타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번역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수난과 고통을 당하시고 또 돌아가셨는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 과학의 눈으로 재조명한 내용입니다.

 

주님의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과 고통을 묵상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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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성시를 감쌌던 수의에 관하여>

 

많은 분들이 한 번쯤은 보셨을 이 사진은 교황님 이하 저희 가톨릭 신자들이

부활하시기 전까지 주님의 거룩한 시신을 덮었던 성의라고 믿고 있는 수의의 전체 사진과

그 성의의 얼굴 부분에 대한 네가티브(필름을 현상액에 담궜다 꺼냈을 때의 보여지는 모습)  

사진을 포함한 것입니다.

 

길이 4.36m 폭 1.1m의 아마로 된 이 수의가 사진술의 발명으로 1898년 이태리 사람

’Secundo PIA’에 의해 처음으로 사진이 찍힌 이래,

그 뒤로 수 만 번의 사진이 찍혔고 수 천 가지의 과학적인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 졌으나

어떻게 이러한 이미지가 천에 새겨질 수 있었는지는 현대과학으로 밝혀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볼 수는 있으나 아무도 설명을 하지 못하는 이미지입니다.

오직 우리의 믿음만이 이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은 비오 11세 교황님의 말씀입니다.

(1936년 9월 7일 ’Osservatore Romano’ 에 실렸던 말씀)

 

"튜린의 성의는 아직도 신비에 쌓여있다. 그러나 그 어떤 인간의 손으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러한 사실은 이제 밝혀졌다라고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불가사의하다" 고 말했다. 이 성의는 아직도 많은 의문점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히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거룩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가장 확실한(실증적으로) 방법으로 입증이 되었으므로,

굳이 어떤 신앙적인 발상이나 그리스도교적 믿음과 관련 짓지 않고서라도,  

그것은 인간의 작품이 아님이 확실하다."

 

’아마’로 만들어진 이 천에는 손과 발에 못이 박혀 십자가형을 당한 한 사람(남자)의

전신이 천에 새겨져 있고 옆구리 상처, 이마의 찔린 상처, 채찍질에 의한 상처 등 모든 것이

신약의 주님의 수난에 나오는 내용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한글 성서에는 ’고운베’로 영문판 성서에는 ’린넨’(아마)로 번역되어 있음)

 

이 수의를 연구했던 세계적으로 권위가 있는 법의학자인 ’로버트 버클린’과

의학박사 ’죠셉 감베시아’(병리학)는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이미지가 만들어졌는지는 개의치 않겠다…..

이것들은 해부학적으로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가 있다.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분석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병리학과 생리학은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그것은 150년 전에는 알려지지 않은

의학적 지식을 나타낸다.

이 사람은 키 5피트 11인치 몸무게가 약 178파운드정도 되는 ’코카서스’족의 남자이다.

이 사람의 상처 부위는 다음과 같다.

머리에서 시작하여....

 

둔부와 정수리, 그리고 이마에 걸쳐 수 많은 찔린 상처에서 피가 흘러 내렸다.

이 남자는 얼굴을 맞았는데 한 쪽 뺨이 부어 올라 있으며  

눈의 색깔은 의심의 여지없이 검은색이다.

코 끝이 벗겨져 있는데 이것은 넘어지면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

뼈로부터 코의 연골조직이 이탈한 것으로 나타난다.

왼쪽 팔목에 상처가 있는데 오른쪽 손이 왼손에 의해 덮여져 있다.

이것은 십자가 형의 전형적인 상처 부위이다.

손바닥을 관통하는 못을 박은 십자가형을 나타낸 고대 예술이나 전설적 미술묘사는 잘못된 것이다.

손의 구조는 살아 있는 사람의 무게를 지탱하기에는 너무 약하며

특히 크기에 있어서 그러하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손바닥에 못이 박혀 십자가 형을 당한 사람들은

손바닥의 뼈와 근육 인대가 찢어지면서 십자가로부터 떨어졌을 것이다.

 

그의 양 팔로부터 많은 피가 흘러내렸다.

곳곳에 피가 유출된 원래의 상처로부터 각도를 이루어 피가 흘러내렸는데

이것은 중력에 기인한다.

이러한 각도는 십자가형을 당하는 동안에 사형수의 몸이 취할 수 있는 오직

두 가지의 자세로부터 생기는 각도이다.

 

몸의 앞면과 등에 채찍으로 맞은 자국으로 보이는 상처들이 있다.

역사가들은 로마인들이 ’Flagrum’ 이라고 불리는 채찍을 사용했음을 지적했다.

이 채찍에는 2개 혹은 3개의 가죽 끈이 달려 있었는데 그 끈의 맨 끝에는 작은

아령과 같은 금속이나 뼈로 된 조각들이 달려 있었다.

이것은 살을 후벼 파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로마인의 채찍에 달려 있는 가죽 끈과 금속 조각으로부터 입은 상처는

몸의 전면과 등쪽의 채찍으로 맞은 상처부위와 정확히 일치한다.

희생자는 2명의 남자에 의해 양쪽에서 채찍질을 당하였는데

2명의 남자 중 한 사람은 다른 한 명보다 키가 컸으며

그것은 채찍의 각도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양 어깨가 벗겨져 있고 부어 있는데

이것은 사형수가 죽기 직전의 수 시간 전에  

자신의 어깨 위에 무엇인가 무겁고 거친 것을 날랐음을 말해준다.

 

오른쪽 옆구리는 길고 가는 모양의 것이 위쪽 방향으로 들어와서 횡경막을 뚫고

폐와 심장을 찌르며 흉부를 관통하였다. 이것은 사형수가 죽은 뒤에 일어난 일이다.

왜냐하면  적혈 세포와 혈청의 분리성분이 상처 부위로부터 유출 되었기 때문이다.

후에 시체가 평행으로 뉘어지고 천으로 얼굴이 덮인 뒤에 갈비뼈의 상처 부위로부터

피가 흘러나왔고 이 피가 등허리 부분을 적시었다. 양쪽 다리가 부러진 흔적은 없다.

한쪽 무릎이 벗겨졌는데 넘어질 때 생기는 상처와 같은 것이다

(이것은 코가 벗겨진 상처와 같은 유형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못이 양쪽 발을 뚫고 들어갔으며

양쪽 발의 상처로부터 천 위로 피가 유출되었다.

 

채찍질을 당한 남자가 십자가형을 당하여 십자가형의

전형적인 사인인 심폐기능의 정지로 죽었다는 것은 명확하다… >

 

이러한 사실에 대해 역시 ’수의’ 연구가인 의학박사 HELLER 씨는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 ... BARBET 씨는(수의에 관한 의학적 연구 결과를 발표하여 튜린의 수의가 예수님의 수의가

틀림없음을 증명한 의사의 이름) 일차 대전 때 야전군의관으로 참전했던 외과의사이다.

그러므로 그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자신들의 전 생애를 통하여 볼 수 있는 상처들 보다도

더 많은 상처를 보았을 것이며 그 상처들이 붕대에 어떠한 흔적들을 남기는지 셀수 없이

보아왔을 것이다. 닥터 BARBET는 르네상스로부터 현대의 미술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보았던 모든 유럽의 예술 작품들 중에서 치료용의 천(붕대 등) 위에 상처와 출혈부위를

정확한 묘사한 어떤 그림도 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반대로 튜린의 수의는 모든 부분에

있어 정확하다. 성의에 관한 자신들의 연구를 출판한 법의학자들도 닥터BARBET의

이 의견에 동의했다. 내가 BARBET의 책을 읽었을 때 나는 그의 십자가형에 대한

소름 끼치는 긴 의학적 묘사가 주는 공포로 충격을 받았다… >

 

저명한 ’성의’ 연구가인 의학박사 GARZA-VALDES도

자신의 저서인 ’The DNA of GOD’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 당신이 튜린의 수의에 새겨져 있는 정면의 이미지를 본다면, 당신은 왼손이 오른손을

덮은 상태로 치골 위에 엇갈려 놓여져 있는, 서있는 자세의 한 남자를 보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그의 입은 닫혀있고 중앙에서 갈라진 긴 머리가 얼굴의 좌우로

어깨까지 늘어진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콧수염과 두 개로 갈라진 턱수염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의의 남자 얼굴에는 여러 군 데의 부어 오른 부위가 있다.

오른쪽 뺨의 커다란 상처는 코의 연골 조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코의 연골조직은 부러지거나 경미하게 탈골 된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 눈 밑에 또 다른 타박상이 있다.

양쪽 광대뼈는 맞아서 부어 있으며 양 콧구멍에서 피가 흘러내린 자국이 있는데

왼쪽 콧구멍은 부은 상태로 일그러져 있다. 피가 왼쪽 뺨 아래로 흘러 내렸다.

오른쪽 광대뼈가 부어 올라 부분적으로 눈을 가렸다.

짧은 콧수염에는 다수의 응혈이 붙어있다…. >

 

 

< 채찍질에 대하여 > (의학박사 GARZA-VALDES 의 책에서 계속 이어짐)

 

< ... 정면과 등(back)의 몸의 양쪽에는 길이가 약 3센티정도 되는 다수의 찢겨진 상처가

있다. 이 상처는 로마인들이 사용한 채찍인 Flagrum 에 의해 생긴 상처로 말해져 왔다.

수의의 남자는 옷을 입고 있지 않다.

 

엉덩이와 다리 부분의 상처들은 몸의 나머지 다른 부위의 상처들과 모양과 깊이가 동일하다.

채찍질을 당할 때의 예수님의 자세에 대해서는 의견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이들은 두 팔로

짧은 기둥을 잡고 뉘어져 있는 상태였다고 하며 또 다른 이들은 예수님이 긴 수직의

나무기둥에 묶여있었다고 믿는다. 매 번의 채찍질은 피부를 찢고 몸에 출혈을 일으키고

있다. 예수님께 사용된 채찍은 세 갈래의 가늘고 딱딱한 끈이며 각 끈의 끝에는 아령과

같은 모양의 작은 구슬이 달려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채찍질에 의한 상처들은 몸에 남겨진

작은 대각선의 상처들에서 나타난다. 왜냐하면 채찍의 각도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나는데

우리는 두 명의 집행인들이 그리스도를 채찍질한 것으로 믿는다. 채찍을 든 각 집행인들은

아마도 예수님의 양편에 각각 다른 쪽에(앞면과 뒷면) 서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약 1m 정도 떨어져 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어진다.

 

상처부위의 수는 약 120개 이며 나자렛 예수의 몸은 머리에서부터 발 끝까지 피로 뒤덮여있다… >

 

 

< 가시관에 대해 >

 

<< .. 수위의 남자는 가시로 만든 관을 쓰고 있다.

밀라노의 법의학자인 의학박사 Judica CORDIGLIA 는 이러한 극도의 잔인한 방법에 의해

생긴 상처를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기술하였다.

 

< .. 특이한 핏방울 자국이 이마와 관자놀이가 위치한 부분의 머리둘레 전체에 걸쳐

나타난다. 핏자국은 두피(머리가죽)의 상처에서 온 것이다. 핏자국의 분포를 보면

관(가시관)의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우리는 이 상처가 날카로운 가시가 있거나 못이 박혀있는 관이나

두건모양의 물체에 의해 생긴 것이며 그것이 머리 전체를 긁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

 

의학박사 RODANTE 는 상처부위를 상세히 묘사하면서 각 가시들이 두피의 혈관을

터트리면서 두피를 손상시켰음에 틀림없다고 지적하였다. 하나의 혈관이 동시에 두개의

가시에 의해 손상되었다는 것도 가능한 추정이다. 이마와 양 관자놀이 부분에 날카롭고

뾰족한 물체에 의해 혈관이 터진 자국이 적어도 13개나 나타난다. 후두부에 나타난 피의

응고도 이와 같은 연유에서 이다.

 

머리 숱이 많은 부분의 숨겨진 핏자국은 구별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수많은 혈관 파열이 이마 위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대략

20개의 가시가 관자놀이 부위를 찔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마에서 소량의 피가 흘러 응고 되었는데

이것은 그리스 알파벳의 ’엡실론’(다섯번째 알파벳- 3자의 반대모양)과 같은 모양의 응혈을 형성하였다.

이것은 수위의 진실성을 확인하는 표시라고 알려져 왔다.

 

또 다른 중요한 이마의 출혈에 대하여 의학박사 GIUSEPPE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 … 이 상처들을 분석하면서 오른쪽 관자놀이에 걸쳐 머리카락이 시작하는 부분에서

두 군데의 소량의 출혈이 있었는데 하나는 각도를 이루어 머리카락의 길이를 따라 어깨까지 흘러내렸다.

다른 하나는 수직으로 이마 아래로 눈썹 가장자리 까지 흘러내렸다.

가시는 분명하게 관자놀이 부위를 지나는 동맥의 이마부분에 뻗은 지맥을 손상시켰다.

목덜미에는 약 12군데의 상처가 나타나는데 목의 양쪽(앞과 뒤)으로 피를 흘린 흔적이 있다.

 

채찍질을 당하고 가시관을 쓴 뒤에 예수님은 십자가형의 죽음으로 내몰렸다.

이 죄수는 감옥에서 사형집행 장소까지 어깨로 십자가를 날랐다.

수의의 뒷면에 나타난 이미지는 오른쪽 견갑골 부위의 상처를 보여주는데

그 상처는 어깨의 맨 위 쪽 부분까지 이어지고 있다.

왼쪽 견갑골의 다른 상처는 더 심하게 다친 상처를 보여준다.

갈바리아 혹은 골고타, 즉 예루살렘시의 외곽으로 향하는 고통스런 길에서

예수님은 세 번이나 넘어지는 고통을 겪으시고 이것은 무릎과 얼굴에 심한 상처를 입히게 되었다… >

 

의학박사 Judica CORDIGLIA 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 … 무릎은 특별히 관심을 끈다.

오른쪽 무릎은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의 여러 개의 찰과상이 나타나 있다.

무릎 조금 위쪽의 바깥 방향에 두 개의 둥근 푹 파인 상처가 있는데 하나는 또 다른 상처보다

위쪽에 있으며 두개의 상처가 지름이 약 2cm 정도 된다. 왼 쪽 무릎 역시 상처가 났는데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의 찰과상으로 나타난다. 왼쪽 무릎은 오른쪽 무릎만큼 심하게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왼 쪽 무릎은 상처의 방향과 위치로 보아 넘어진 장소에 대한 다소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 곳은 각기 다른 크기의 돌로 덮인 고르지 않은 땅이다… >

 

예수님은 넘어지실 때 마다 돌에 심하게 얼굴을 다치셨음이 틀림이 없다.

그것에 의해 커다란 상처가 생겼다.

발의 살갗이 벗겨지고 발에 묻은 진흙은 그가 사형 장소까지 맨발로 걸어갔음을 말해주고 있다.

수의의 뒷면의 이미지는 오른발과 왼발의 뒤꿈치와 중앙부분에 나타난 상처의 완전한 흔적을 보여준다... >

 

닥터 BARBET은 양쪽 발에 못이 박힐 때 못이 하나만 사용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CORDIGLIA 박사는 하나는 오른 쪽 발에 또 하나는 왼쪽 발에, 모두 두개의 못이 사용되어졌다고 믿는다.

 

로마인들은 예수님이 일찍 숨을 거두셨으므로 일반적으로 하는 것과는 달리

예수님의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고 내가 기술했던 것과 같이 오른쪽 옆구리에 창을 찔러넣었다.

등허리까지 계속되는 오른쪽 흉부의 갈비뼈의 커다란 핏자국은 이 상처에서 유출된 피로 인한 것이며

이러한 출혈은 시신이 무덤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혹은 시신이 무덤에 안치된 뒤에 일어난 일이다...>>

 

다음은 1978년 성의의 조사 연구팀의 사진을 담당하였던 정통파에 속하는(Orthodoxe)

유대인인 Barrie. M.Schwortz가 처음으로 연구에 뛰어든지 20 여년이 지난 뒤에 회고한 말을 옮깁니다.

 

< … 튜린의 수의 연구팀의 공식적인 기록사진가로서 나는 철저한 과학적인 검사를 완수하기 위해 조직된

첫번째 검사팀의 일원이 되는 특전을 받았다. 1978년 10월 8일부터 10월 14일 사이에

우리 팀은 튜린의 수의와 120시간을 보냈다. 프로젝트 참여의 초기단계에서

나는 누군가가 "정통유대인에 속하는 사람이 왜 이러한 그리스도교에 관한 일에 관여하는가?" 라고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 때에도 이미 나는 이 수의가 그리스도교의 유물 중 가장 중요한 것일 거라고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마음 속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나는 이 팀의 일원이 되어야만 하는가? 라고 스스로 물었다.

 

그러나 나의 절친한 친구이자 연구팀 멤버이며 ’NASA’ 연구소에서 일을 하고있는 Don Lynn 은 나에게

문제의 그 수의의 남자도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을 빠르게 상기시켜주었다.

그는 나에게 "튜린으로 가라! 가서 가능한 최선을 다해서 작업에 참여하라" 라고 재촉하였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왜, 무엇을 위하여?"라고 자문하였다.

 

어느날 그 친구는 나에게 내가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친구의 권유를 받아들인 것에 대해 결코 후회해 본적이 없다.

지금 20년이 지난 뒤에 나의 목적은 매우 명확하게 되었다.

수의 프로젝트의 기록 사진가로서 나는 내가 시작한 것을 완성해야 할 의무감을 느꼈고

내가 찍은 2700여 장의 관련 사진과 연구가 진행된 4년 동안에 수집한

다른 자료들을 유용하게 만들어야 할 의무감을 느꼈다.

그리고 비로소 나는 결국 내 자신의 언어와 관점으로부터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유대인이나,

나는 튜린의 수의가 십자가형을 당한 뒤에 인간 예수를 감쌌던 천임을 믿는다.

이것은 나의 종교적 진술은 아니지만 전 세계의 진지한 수의의 연구 조사자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특별한 위치에 근거한 진술이며, 또한 매스컴에 의해 명백히 밝혀진 과학적 통계에 근거한 진술이다.

 

내가 아직도 튜린의 수의에 연관이 되어있는 유일한 이유는 편견 없는 공정한 사실들이,

계속해서 나에게 그것의 진실성을 확신시켜 주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모든 편견 없는 사실에 다가갔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스컴에 의존해야 했으며

매스컴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이야기를 선정적으로 보도하거나, "미스터리를 풀었다"고

하는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로부터 2분짜리 방송거리로 전락되어지기 때문이다…>

 

=> 다음에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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