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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군난중에 헤어진 부부
작성자박용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3-07-12 조회수683 추천수0 반대(0) 신고

군난중에 헤어진 부부

 

 포졸들이 앞집을 덮쳐 교우를 잡아가는 것을 보고 비리버는 아무 것도 모르고 부엌에서 밥상을 준비하는 데레사에게 포졸들이 덮치고 있으니 빨리 나를 따르라고 하니까 아내는 따라 나셨다. 그런데 뒤따라오는 아내를 확인하고 산에 올라가서 보니 그는 아내가 아니라 마을 사람이었다. (윤의병신부지음「은화」하권 15-20)

 

육모방망이를 손에 든 포졸 몇 명이 건너편 집으로 들어서며 그 집주인을 느닷없이 려치는 소리가 들리고 또 저 아래편에서는 다른 포졸패가 올라오는 모습이 울타리 사이로 확실하게 보였다.

비리버는 황급히 자기 집으로 달려가 보니 데레사가 무심코 부엌에서 저녁상을 준비하고 있었으므로 부엌을 통하여 뒤꼍으로 빠지면서

"포졸이 동네에 들어왔으니 얼른 몸만 빠져 나를 따르오.”

라고 독촉을 하면서 울타리를 뚫고 나섰다.

데레사가 그 길로 자기를 따라 나서는 것을 보았고, 뒤에 따라오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바로 뒷산으로 치달아 도망칠까 하다가 아내가 너무 힘들까 해서 산등성이를 엇비슷하게 기어올랐다. 아내는 삼십여 보 떨어져서 자기를 따르는 모양이 나무 사이로 희끗희끗 보였다. 얼마동안 이렇게 달아나다가 조용한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던 걸음을 멈추고 기다렸다. 그런데 자기 뒤를 따라온 여자는 데레사가 아니고 이웃집 여 교우였다. 조금 떨어져서 그의 장부 박 서방도 따라왔다.

“우리 내자는 어디쯤 따라오는가요?”

하고 비리버가 물어 보니 그들은 뜻밖이라는 듯 데레사를 본 일이 없고, 자기들은 데레사가 앞에 먼저 가는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비리버는 앞길이 막막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이 간다. 자기가 부엌을 지나 울타리를 뚫고 나설 때까지는 분명히 데레사가 자기 뒤를 따랐다. 이제 생각하니 데레사가 그때 아들 바오로를 둥에 업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 아내가 자기를 따라오다가 바오로를 업고 가려고 다시 집으로 뛰어들어간 동안에 이웃집 내외가 자기 뒤를 따라 온 것을 자기는 데레사가 따라오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러면 아내는 어찌 되었을까 생각하니, 십중팔구 다시 집으로 들어가 방에 있는 바오로를 업고 나오다가 포졸에게 잡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리버는 데레사가 포졸에게 결박당하여 갖은 고생을 당할 것을 생각하니 치가 떨린다.

두 주먹을 꼭 쥐고 마지막 등성이에 올라가 동네를 바라보니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비리버는 이제 포졸도 겁날 것 없다고 딱 버티고 있자니까 저편에서

“아, 이거 성철이 아닌가!”

하고 말문을 여는데 가만히 보니 한동네 사는 김군서라는 교우다.

“아, 군서인가. 자네는 왜 도망가지 않고 여기서 벙벙 돌고 있나?”

“말 말게. 나 혼자만 살아 무엇한담!”

“자네도, 그럼 처자를 잃은 모양일세 그려.”

“나는 나무를 한 짐 해 가지고 오니까 복돌이가 그러는데 동네에 포졸이 들어와 천주학쟁이들을 잡아가니 당신도 천주학 하거든 동네로 들어가지 말고 얼른 도망가라고 했어.”

“그래서…….”

“그렇다고 잘 알지도 못하고 그놈 보는데서 도망 갈 수야 있나? 그래, 시치미를 떼고 별 소리를 다한다고 그놈에게 핀잔을 주고 그대로 나뭇짐을 지고 동네로 들어서다 쇠명이네 집 모퉁이를 돌자니까 아닌게 아니라 사람 패는 소리가 들리고 온 동네가 떠들썩한걸 보니 사실이거든.”

“그럼, 자네 처자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직 모르겠네 그려.”

“그래서 곧장 우리 집으로 쫓아가 볼까 하다가 생각하니 그게 쓸데없는 일이거든. 그때쯤 되었으면 벌써 잡혔든지 어디로 도망했을 테니 들어가면 무엇해. 그래서 거기다 나뭇짐을 내려놓고 작대기를 들고, 나도 산으로 한참 돌아다니다가 철석이를 만나 소식을 들어 보니 우리 집 사람도 잡혀갔다네."

비리버는 그의 손을 잡고 좀더 높은 데로 올라가 솔포기 뒤에 앉아서 사방을 둘러보며 자기의 경우를 이야기하였다. 자초지종을 듣던 군서는

“그러면 십중팔구 잡히셨지. 포졸들이 자네 뒤를 그대로 쫓아왔을 텐데 달아나다가 다시 들어가서 바오로를 업고 나설 때는 그놈들이 벌써 자네 집 마당으로 들어섰을 테니까……."

“그러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자네는 자네 혼자 살고 싶은가?”

“그러기에 나도 다시 돌아가서 곧장 동네로 뛰어 갈까 하고 생각하는 판에."

“안돼, 지금 거기는 여러 놈들이 있을 테니까……. 이제 저놈들 한패는 동네에 처져 있고 한패는 잡은 사람들을 끌고 내려갈 테니까 그때 어떻게 손을 써보세. 이렇게 의논만 하다가는 죽도 밥도 안되겠네. 그래도 자네를 만났으니 다행일세. 자 나를 따라서게."

하고 군서가 성큼 일어섰다. 비리버도 그 뒤를 따라 서니 마음이 한결 든든하다. 군서가 산비탈로 내려가다가 팔뚝만한 참나무 가지를 잡아채어 분질렀다.

“빌어먹을 것 있는 기운 이런 때 안 쓰면 언제 쓴단 말이냐!”

그는 몽둥이 두 개를 손쉽게 만들어 비리버에게 하나 주고 자기도 하나 들었다. 두 청년은 아무 말 없이 산비탈을 내리달려 평지에 내려와 동네에서 두 마장 되는 산모퉁이에서 우뚝 섰다. 서로 무슨 귀엣말을 주고받더니 길 양편으로 갈라서서 덤불 뒤에 몸을 감추었다. 사방은 고요하고 두 청년의 가슴은 극도로 긴장되었다.

얼마를 지난 후 동네 쪽으로부터 인기척이 들려온다. 담뱃불도 반짝거린다. 가까이 오는 것을 보니 포졸들이 분명하다. 남자 하나와 여자 몇 명을 끌고 가는 것이다. 그 뒤로 좀 떨어져 짐꾼 두 명이 따라온다. 동네에서 노략질한 물건을 가져가는 것이다.

군서와 비리버는 각각 저 여인들 중에 자기 아내가 묶여서 가고있다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몸에 피가 꿇어 오른다. 포졸들의 일행이 점점 가까이 와 덤불사이를 막 지날 때 돌연 군서가 벽력같은 소리로

“이 도적놈들, 여기 있다!”

하고 외치며 비호처럼 달려들어 포졸 몇 놈을 후려갈겼다. 참나무 몽둥이에 얻어맞은 그들은

“에쿠!”

하고 비명을 지르며 자빠지고 그 다음 놈이 군서에게 덤벼들 때 뒤에서

“이놈들 내 칼 받아라!”

하는 고함 소리와 함께 비리버의 몽둥이가 그들의 어깨를 후려쳤다. 이 불의의 습격을 당한 포졸들은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다가 달아나는 놈에, 엉덩방아를 찧는 놈에, 머리를 움켜쥐고 데굴데굴 구르는 놈에 수라장이 되었다.

비리버는 날래게 교우들의 결박을 풀어주고 그들을 인솔하여 산 위로 치달았다. 군서는 뒷일을 막느라고 아직 몽둥이를 휘두르며 엄포 하다가 비리버가 멀리 달아난 다음에 자기도 그 뒤를 따랐다.

포졸들이 정신을 수습하여 보니 청년 두 놈에게 당했으니 분하기 짝이 없다. 달아났던 자들이 하나씩 둘씩 돌아와 다시 그들을 추격하자고 의논했다. 몽둥이로 얻어맞은 자들은 만사가 귀찮다는 듯이 엄살만 떨고 있다.

비리버와 군서는 산 아래가 조용하다가 차차 웅성거리는 소리가 크게 나므로 혹시 포졸들이 다시 추격하여 올라오는가 하여 농짝 만한 돌덩이를 굴리면서 달아난다.

“우지끈 뚝딱."

불똥을 튀기며 기세 좋게 내리구르는 돌덩이는 다시 추격하자는 포졸들의 공론을 깨뜨려 버렸다.

“여보게, 저놈들 쫓아가다가는 우리가 먼저 죽겠네!”

“어이구! 이놈들아. 우리 원수 안 갚고 그만둘 테냐?”

몽둥이로 대가리를 얻어맞은 자가 이렇게 부르짖는다.

“이놈아, 목숨이 아직 붙어 있는 걸 다행으로 알아라. 사실 그놈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

이렇게 그들은 뒤통수를 치고 돌아서 버렸다. 비리버 일행은 산꼭대기까지 올라가 숨을 돌리려고 한자리에 모였다. 크나큰 모험을 치러 가면서 빼내 온 사람들이 누구인지 서로 살펴보았다.

그러나 자기 아내도 그 중에 있으리라고 믿었던 희망은 여지없이 깨어진 비리버는 그만 그 자리에 푹 주저앉았다. 그들 역시 데레사에 대한 소식은 천연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서 두 차례나 남녀 교우들이 잡혀갔으니 혹 그 중에 끼어있는지 모른다고 한다.

군서는 자기 아내를 만나 만족해할수록 비리버의 가슴은 허전하고 쓸쓸하다. 군서 내외가 주고받는 이야기가 비리버의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머리 속에는 오직 데레사 생각으로 꽉 차 있을 뿐이다. 그는 손으로 턱을 고이고 앉아서 이따금 한숨을 내쉬며 곰곰이 생각하더니 홀연히 벌떡 일어서며

“이제 나는 나대로 데레사를 찾아 나서겠네."

하며 그들에게 작별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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