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행렬의 진상
문 바오로 회장과 페롱 권 신부는 천안에 가난한 교우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니 피곤하였다. 그러나 낮에 포졸들이 끌고 가는 여 교우 다섯 명을 문 회장이 구출하고 포졸들을 나무에 묶어놓았던 일이 문제가 되었다. 포졸들은 동료들이 당한 분풀이로 밤에 천안을 엄중하게 수색하는 바람에 문 회장은 권 신부와 같이 가난한 장례행렬을 꾸며 가지고 천안을 무사히 빠져나간다. (윤의병신부지음「은화」하권 103-104)
페롱 권 신부와 문 바오로 회장은 천안읍에 당도하였다. 해가 서산에 넘어갈 때, 객주 집은 너무 번거로우므로 전부터 알고 있었던 교우 집 하나를 찾아가 저녁을 시켜 먹었다. 주인 내외와 젖먹이 하나가 있는 가난하기 짝이 없는 집이므로, 주인이 사양하는 것을 제지하고 신부는 밥값을 후하게 치러 주었다. 그리고 문 바오로가 밖의 동정을 살피러 나갔다가 돌아오더니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거리마다 포졸들의 검색이 엄중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밤을 지낼 계제는 못된다. 그 집은 방 한 칸밖에 없는 데다가 궤짝, 옹기 같은 세간이 반이나 차지하고 있어 세 사람이 앉아 있기도 거북한 것은 둘째 문제요, 아까 포졸들이 주막거리를 향하고 올라가다가 문 회장이 상수리나무에 붙들어맨 제 동료들을 발견하고 그 사연을 들었다면 쏜살처럼 읍내로 되돌아 왔을 것이요, 그에 따라 포졸들은 읍내를 완전히 포위하고 이 잡듯 가가 호호 뒤져볼 것이다. 문 바오로 회장에게 매맞은 놈들은 물론이요, 길에서 따돌린 놈들까지 문 바오로의 얼굴을 알고 있을 것이 아닌가!
신부는 수심 어린 눈으로 문 바오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부 자신은 별도리가 없고, 문 바오로가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데, 그 문 바오로가 난처한 기색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가슴이 무거워질 뿐이다.
"아까 그렇게 황당한 짓을 아니했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급박하게 되지 않았을 것을……."
신부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쓰디쓴 입맛만 다시고 있다. 이윽고 문 바오로가 벌떡 일어나더니 의관을 훌훌 벗어 놓고 사립짝 옆에 있는 지게를 지고 나간다. 조금 있으니, 그는 어디서 관(棺)을 한 개 사서지고 들어왔다. 집에 있던 이들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그는 관을 열어서 자기 의관을 모두 거기 넣고 다시 닫은 다음 신부를 향하여
“어서 바삐 떠납시다. 그러나 너무 염려하실 것은 없습니다. 제 뒤로 바싹 따라 서십시오." 하고 주인에게 지게 값까지 치러 주면서
“혹시 이웃 사람들이 묻거든 면례(緬禮)하러 가는 손님들이 잠깐 들렀다구 하시구려.”하고 귓속말로 수군거리고 나서 관을 지고 사립짝 밖에 나섰다. 상제복을 입은 페롱 신부는 허리를 굽히고 그 뒤를 따른다. 누가 보든지 가난한 집 장례이다. 상여도 쓰지 못하고 지게로 나가는 송장은 차마 대낮에 나가지 못하고 남의 눈을 피해 어둠침침할 때 나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외면하고 지나간다. 길에 늘어섰던 포졸들도
“어 참! 오늘 재수 없네!”하고 한마디씩 지껄이면서 몇 걸음씩 물러선다. 양인과 천주학꾼을 잡으려고 나서서 오고 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힐문하느라고 길거리를 떠들썩하게 하는 위인들이 진짜 양인과 천주학꾼이 지날 때는 이처럼 길을 열어주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그들은 몇 번 아슬아슬한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읍내 밖으로 나섰다. 포졸 세 놈이 교우 다섯 명을 묶어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읍내로 들어간다. 그 옆을 지나가는 문 회장은 손에 잡은 작대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한 시오리 거리를 가다가 큰길을 버리고 산골길로 접어들었다. 산허리에 올라 조용한 곳에 두 사람이 앉아 안도의 한숨이 무의식중에 새어 나온다. 이따금 솔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와 여기저기서 꾸르륵거리는 산새 소리나 들릴 뿐, 충충한 산골짜기는 무거운 적막 속에 잠겨있다.
두 사람은 정신을 수습하고 각각 저녁기도를 드리면서 이번 여정에 여러 번 아슬아슬한 위험을 면케 해주신 은공을 사례하였다. 바오로는 벌떡 일어나 관을 열고 의관을 꺼내 입고서, 사태북지에다 빈 관을 장사지내고, 지게는 산비탈에 내려 굴리고 나서 작대기만 잡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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