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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원수는 외나무다리
작성자박용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3-08-14 조회수701 추천수1 반대(0) 신고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

 

 리델 신부는 오랜 동안 머물고 있던 국실 공소의 안전을 위해 진밭 공소로 옮겨가고 있었다. 신부가 공주 나루에서 탄 배가 출발하려는데 경포들이 배를 붙집는다. 조그만 배 안에서 양인을 쫓는 경포와 쫓겨다니는 신부가 한 배에 탄 것이다. 경포들은 배론에서 신 신부와 박 신부를 붙잡은 이야기를 하다가 신부의 상복 이야기가 나오자, 상복을 입은 리델 신부를 노려본다. 배가 선착장에 닿으려고 할 때 앞 언덕에서 고삐가 풀려 도망가는 소가 언덕을 넘어가자 소를 붙잡으려고 언덕을 뛰어 넘어가는 농부를 본 교우 김영철이 소리친다. "천주학쟁이다. 경포를 보고 도망간다." 하고 소리쳤다. 경포대장은 꿩을 본 매처럼 그를 쫓아가는 사이에 교우들은 다른 길로 사라진다. (윤의병신부지음「은화」하권 156-167)

 

파릇파릇 비단처럼 고운 새싹이 트는 버드나무 아래 나루 배가 뜨느라고 삐 끄덕거린다. 사공이 삿대질을 하여 배가 서너 칸이나 언덕에서 떨어졌을 때

“여보, 배 좀 천천히 가요. 우리도 탑시다.”

웬 사람이 모래 언덕을 넘어서 손짓을 하며 부른다. 연달아 4, 5인이 따라 넘어선다.

“원, 조금만 일찍 오지 않고. 여태 기다렸다가 떠나자니깐…."

사공은 중얼거리면서도 배를 다시 대었다. 그 손님들이 다 오른 다음 사공이 배를 떼려 하니까

“잠깐만 기다리쇼. 저기 한 분이 또 오고 있으니.”

하고, 그중 한사람이 턱으로 언덕을 가리킨다. 방갓 쓴 상제 한사람이 휘적휘적 넘어오고 있다.

“어 참! 상주님 걸음 느리기도 하시군!”

사공은 삿대를 놓고 먼 산을 바라본다. 이 상제는 공주 국실 공소에서 지금까지 숨어 있던 리델 이 신부였다. 박해의 군란 풍파는 날로 더욱 사나워지므로 마음대로 자리를 옮길 수도 없어, 이 동네에 숨어 있으면서 장 주교와 다른 여러 신부들이 붙잡혀 위주치명 하였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신덕의 정신으로 생각한다면 주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것은 더할 수 없는 큰 영광인지라 부럽기도 하지만, 인정으로 생각한다면 부모 친척과 고국을 이별하고 만리 타향에 같이 나왔다가 그들이 먼저 잔인한 형벌 중 살해당하여 영구히 떠났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가슴을 찌른다. 자기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다.

다음에는, 조선 성교회가 점차로 자유롭게 될 희망이 있다고 믿어,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던 중 뜻밖에 박해는 혹심하여 주교 신부들을 섬멸하는 중이니, 이대로 나간다면 목자가 없는 환란을 또 당하는 조선 천주교회의 앞길이 암담하다. 목자를 잃은 양들이 사나운 이리 떼에 쫓겨 산야를 헤매는 참상이 눈물을 자아낸다. 어디서는 어떤 교우가 잡혀갔느니 참살을 당하였느니 하는 소문이 연달아 들린다. 그럴 때마다 공소 교우들의 얼굴은 빛을 잃는다. 그렇다고 신부는 어떤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한다.

“만사를 천주 성의에 맡기고 굳은 신념과 용맹한 마음을 주시기를 자주 기구하십시오!”

이런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군란이 멎을 희망이 전연 없고, 도리어 점점 치열하여 가는 판국이니 어떻게 무사하게 되겠지 하는 따위의 빈말로써 그들을 속이기보다는, 치명 준비를 시키는 것이 가장 옳다고 생각한다.

날이 지날수록 신부도 입맛을 잃고 잠도 오지 않는다. 모든 신부들이 이런 경우를 당하면 꼭 같은 생각을 한다. 리델 이 신부 역시

‘나 아니면 이 동네 교우들이 무사할 것을, 나하나 때문에 참변을 당하지 않을까! 교우들도 은연중 이것을 걱정하면서 내가 떠나 주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어떤 것이 바른 판단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남아있는 신부를 모조리 잡으려고 서울포교(京補)가 시골까지 쫙 퍼졌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들어온다.

이 신부가 국실 공소에 오랫동안 있었으므로 먼 곳의 교우들이 출입도 많아, 혹시 부근 외교인들이 수상히 보지나 않았는지 염려되고, 또 공소를 다녀간 교우들이 상당히 많아서 그들 중 누가 붙잡혀 형벌에 못 이겨 신부가 있는 이곳을 대거나, 또는‘유다스’가 있다면 독 안에 든 취처럼 잡힐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이 국실 공소도 쑥밭이 될 것은 물론이다.

동네 유지 교우들과 의논한 결과 그들은 자기들이 당할 수 있는 참변보다도, 이런 때일수록 몇 분 남지 않은 신부들을 안전한 곳에 피신시켜 조선 천주교의 명맥을 연장시켜 나가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여 이 동네를 뜨시도록 의견이 일치되었다.

그래서 며칠 전 첫 새벽에 이 공소에서 마지막 미사 성제를 거행하였다. 숨소리도 죽이고 비장한 얼굴로 미사 참례하는 교우들이 영성체할 때에는 마치 노자 성체나 영하는 듯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많았다.

짐꾼이 미사 짐을 우선 공주 진밭(新永里)공소로 갔다 두고 돌아온 그 이튿날 신부는 길을 떠났다. 이왕이면 경포들이 이곳에 들어와 무슨 냄새를 맡기 전에 일찍 뜨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제 신부님! 세상에서는 마지막입니다!”

하며 눈물을 씻는 공소 교우들을 하직하고 길을 떠났다. 남 교우 몇 명이 신부를 따라 나섰다. 이렇게 금강 나루터에 이르러 막 떠나려는 배를 경포가 붙잡은 것이다. 상제복을 입은 리델 신부가 배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 시원한 듯 후유 하고 한숨을 지었다. 머리 위에는 축 늘어진 버들가지가 훈훈한 봄바람을 맞아 춤을 춘다. 맞은편 모래밭에는 아지랑이가 아물아물 타오른다.

“자, 이제 떠납시다.”

한 교우가 먼 산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공을 보고 재촉한다.

“아참, 제일 늦게 오신 분들이 바쁘긴 제일 바쁜 모양이구려!”

사공은 이렇게 말하면서 손님들을 한번 둘러보고 삿대를 잡고 배를 움직인다.

“아-참 날이 좋기도 하군!”

사공이 삿대를 뱃전에 얹어 놓고 노를 저으면서 혼자 중얼거린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졸음을 재촉하는 따스한 봄볕이 내려 쪼일 뿐이다. 배가 대여섯 칸 거리를 갔을 때 뒤에서

“여보, 사공! 얼른 배를 이리 대시오!”

하는 쟁쟁한 목소리가 들린다. 일동이 무심코 돌아다보니 모래 언덕에서 포졸 여섯 명이 의기양양한 기세로 내려오고 있다.

“허 참! 이러다가 오늘 하루종일 이 나루 못 건너겠군!”

사공은 노젓기를 그치면서 입맛만 쩍쩍 다신다. 교우들은 은근히 가슴이 내려앉는다. 자기들이 조금만 더 일찍 왔던지, 그렇지 않으면 조금 늦게 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어쩌면 하필 이런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나게 된단 말인가. 불길한 예감이 가슴을 때린다.

“여보, 사공! 얼른 우릴 건네다 주고 가면 어떻겠소?”

교우 중 한사람이 사공을 재촉해 본다.

“대단히 바쁜 모양이구려! 그럼 왜 일찍 오시지 못하였소. 그랬더라면 벌써 배는 저 건너 대었을 것을.”

사공은 대꾸를 하면서 머리를 긁적거린다.

“그럼, 또 저길 갔다와야 하오?”

맨 먼저 배에 올랐던 손님 하나가 원망스러운 듯 사공을 쳐다본다.

“거참! 미안하지만 어느 영이라고 거절하겠소."

사공은 노를 저어 뱃머리를 돌린다. 방갓 쓰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던 이 신부는 아직도 무슨 일인지 모른다. 이 부근에 사는 어떤 양반이 나루를 건너려는 줄로만 알고있다.

“보아하니, 공주 포졸들은 아닌데 아마 경포들인 모양이군…."

사공이 혼자말로 중얼거린다.

“아마 천주학쟁이 잡으러 서울서 포졸들이 내려온다더니 그 친구들인 게지……;”

하고, 승객 한사람이 대꾸하면서, 버드나무 밀에 선 포졸들을 바라본다. 교우들의 시선도 포졸들에게 쏠렸다. 이제는 날고기고 할 재주는 없다. 그들이 뒤를 밟아 일부러 이렇게 쫓아온 것 같다. 아까 배를 어서 대라는 독촉이 심상치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으리라. 방갓 속의 큰 눈을 끔벅거리는 이 신부도 이제야 사태가 심상치 않을 뿐 아니라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음을 직감한다. 지나가는 행인들까지 모두 붙들어 힐문하고 몸을 뒤지는 판에 포졸들을 배 안에서 만났으니 그들의 손을 무사히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주여! 네 뜻대로 되어지리다! 이미 내 생명은 네 손에 맡긴지 오래 되었나이다!’

이 신부는 심장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드렸다. 먼저 잡혀 치명한 주교 신부들이 형벌 받고 칼을 받는 끔찍한 형상이 눈에 어른거린다.

자기는 천주의 안배에 맡기어 불쌍한 조선 교우들을 위하여 생명까지 희생하기로 이미 결심한 바이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가슴이 뛰는 것을 억제할 길이 없다. 타고난 인성은 언제든지 그대로 있는 것이다.

한편 어떻게 하면 자기 하나만 잡히고 같이 따라온 교우들은 무사히 돌아가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여하간 침착성을 잃지 말고 일이 벌어지는 형세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배가 언덕에 닿았다.

서 있던 손님들은 움찔하였다. 정신 놓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신부는 팔을 들어 허공을 두어 번 젓고서야 쓰러지기를 겨우 면하였다.

“아따! 저 상제님은 무엇이 좋아서 저렇게 춤을 추시는 게여!”

맞은편 뱃전에 앉아 있던 텁석부리 영감 하나는 남의 속도 모르고 재미있다는 듯 껄껄대고 웃는다. 포졸들이 우르르 몰려 오른다. 제각각 의기양양하여 떠들어댄다.

“자! 여기가 말로만 듣던 공주에 있는 금강이로구나!”

“거 천렵이나 한 번 했으면 좋겠군……."

술이 얼큰하여 이렇게 떠드는 그들의 얼굴에는 무슨 계획성이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교우들은 약간 안심이 되었다. 일을 당할 때 당할지라도 끝까지 태연자약하게 버티어 보는 것이 군란 때 교우들의 처세술 중 하나이다.

“거 보아 하니 공주 포졸들은 아니시구려?”

교우 중 반백이 훨씬 넘은 베드로 김 첨지가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될 수 있는 대로 포졸들의 관심이 저기 서있는 상제님에게 쏠리지 않도록 다른 데로 끌어보자는 것이었다.

“그건 노형이 어떻게 알아요?”

옆에 섰던 포졸이 쏘아보며 묻는다. 옷 주제도 보잘것없는 산골 뜨기 아니냐고 넘보는 모양이다.

“허! 이래봐도 우리 아들놈이 공주 감영에 관노로 있어 웬만한 포졸들은 다 안면이 있지요.”

하고 대꾸한 다음 저편 뱃전에 앉아 있는 그 텁석부리 영감이

“아무래도 서울 양반이 다르지. 거참 요새는 재미있겠구려!”

하고 껄껄 웃는다.

“암, 재미있지. 그까짓 농사는 지어 무엇해 이렇게 다니기만 하면 술에 고기가 지천으로 생기는데…….”

서울 양반이라고 추켜올리는 바람에 어깨가 으쓱하여 득의만면하다.

“아니, 그 좋은 서울 두고서 왜 이렇게 시골로 오시는 게요?”

김 첨지가 의아한 듯 이렇게 묻는다.

“아, 시골 포졸들이 어디 천주학쟁이들을 잡을 줄 아나.”

하고 다른 포졸이 대답하는 것을

“홍! 아, 공주 포졸들이 천주학쟁이들을 얼마나 많이 잡아냈는데 공연히 시골 포졸이라고 깔보지 마시오."

김 첨지가 불만을 표시하였다.

“아니, 우리가 그냥 천주학쟁이 잡으러 나선 줄 아는 게로군. 나라의 명을 받고 양인 잡으러 나섰어 양인! 우리가 충주 제천에 가서 양인을 두 놈이나 이 손으로 묶어 냈거든!”

포졸들은 전승 장군이나 된 듯 의기충천하다. 방갓 속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새겨듣던 이 신부는 바로 이 포졸들이 제천에서 양인을 둘이나 잡았다는 말에 그만 가슴이 어는 듯하다!

“양인, 양인 하는 말은 들었지만 그놈의 것 대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원."

텁석부리 영감은 호기심이 동하는 모양이다. 교우들은 포졸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끌려고 도모했지만, 진짜 양인을 옆에다 두고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양인의 이야기가 나왔는지 불안하기는 하나, 그렇다고 부자연한 태도를 보일 수는 없다.

그래서 바지저고리 바람에 산골 뜨기 냄새 풍기는 요셉 박길보가 말참견을 하였다.

“아, 그걸 모르시오? 두 사람을 가지고 양인이라고 하던데요.”

하고 자신 있게 말한다. 포졸들은 박장대소한다 맨처음 배에 올라 길이 늦어진다고 불평한 기색을 보이고 있던 손님도 이맛살이 풀어지면서

“허, 참! 무식해도 분수가 있지. 아 그래 저 나리들이 사람 둘씩 있는 것을 잡아들이려고 시골로 쏘다니는 줄 아나!”

하고 껄껄 웃는다.

“아, 이 친구! 양국 사람을 양인이라고 하는 게여."

포졸 하나가 박길보 어깨를 툭 치면서 설명한다. 자기들의 공로를 모르는 인간이 하나라도 있는 것이 안타까운 모양이다.

“양국이면, 저 영남 땅이 아닌가요?”

박길보는 의아스럽다는 듯 큰 눈을 둥글리며 이렇게 내놓는 말에

“어 참! 이 충청도엔 별말이 다 있군!”

하고 포졸들은 또 박장대소를 한다.

“여보게! 양국은 여기서 수만리 되는 오랑캐들만 사는 나라일세. 거기서 나은 사람을 양인이라고 하는 게여.”

텁석부리 영감이 박길보에게 동정하는 듯, 이렇게 자기 지식을 자랑할 겸 내놓는다.

“저 사람은 본시 반편 비슷한 걸."

베드로 김 첨지가 이렇게 말을 막으면서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려볼 생각을 하는 판에,

“그래 참, 그 양인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텁석부리 영감은 제 궁금증을 풀려고 포졸들에게 묻는 것이었다.

“양인의 눈은 몇 십리 쑥 들어가고, 코는 산마루처럼 우뚝 섰지…….”

포졸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하는 말에

“어이구머니! 그럼 그걸 무서워 어떻게 잡으셨나요!”

박길보가 감탄한다.

“양인을 둘이나 잡았으면, 하나는 마누라입디까?”텁석부리 영감이 또 묻는다.

“양인이 마누라 있다는 말은 못 듣고, 둘 다 남자인데 놈들 참 잘생겼습디다. 하나는 키가 훌쩍 크고 나이는 한 50가까이 되어 보이는데, 눈은 고리 눈이고, 우리나라 말도 잘하고, 목소리도 우렁차고, 또 하나는 더 젊었는데 키가 호리호리하고 얼굴이 백옥 같고 수염도 참 잘났거든…….”

포졸이 의기양양한 태도로 자랑을 하면서 두리번거리다가 먼 곳만 바라보며 묵묵히 옆으로 서있는 이 신부의 수염이 방갓 밑으로 바람에 날리는 것을 쳐다본다.

“아니, 그럼 그게 바로 백사 아니요? 약에 쓴다는 백사…….”

박길보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 앞으로 다가섰다.

“이것도 대체 밥 먹고사는 인간인가?”

하고 포졸이 귀찮다는 듯 눈을 흘긴다.

“대체 그 양인들이 무엇 하려고 우리나라에 왔답디까?”

김 첨지가 다가서며 질문을 던졌다. 포졸이 대답도 하기 전에

“물어 볼 것 무엇 있어. 저의 나라에는 먹을 것이 없으니까. 굶어 죽지 않을 곳을 찾아 나온 게지. 참 우리나라 팔도강산이야 좀 좋은 가!”

텁석부리 영감이 건너편 산을 바라보면서 제 지식을 자랑한다.

“놈들이 나와서 극악무도한 천주학을 가르치거든. 죽은 부모에게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천주학 말이야.”

포졸 두목이 약간 긴장한 얼굴로 설명한다.

“아, 참 듣자니, 그 양인들이 아이들 눈알을 빼다가 약을 만들어 판다는 말도 들었는데, 참말 그런가?”

어기적 어기적 노를 젓는 사공도 이렇게 한몫 거든다.

“그런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린 그런지 안 그런지 알 수 없고, 여하간 천주학꾼이라면 조선 놈이든 양인이든 다 잡아 바치라는 것이 나라의 명령이거든.”

“조선 놈은 잡기 어렵다 치더라도, 양국 놈은 그처럼 얼굴이 희고 눈이 쑥 들어갔고 코가 높다면 단번에 표가 나서 잡기 쉽지 않겠소!”

텁석부리 영감이 질문을 한다.

“양인이 있다 한들 우리네처럼 길에 다니겠소. 어디 깊이 파묻혀 있겠지."

김 첨지가 이렇게 설명한다.

“암, 그렇지!”

포졸 두목이 말을 받아 계속한다.

“놈들이 제천 배론 그 산골에 박혀 있어 무던히 오래 견디어 냈거든. 참, 우리나 하니까 그걸 찾아내었지…….”

여기서 말을 끊고 득의만면한 얼굴로 일동을 죽 둘러보더니

“그리고, 이것도 참! 제천 가서 알았지만, 놈들이 길에 다닐 때는 방갓을 쓰고 포선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거든. 그러니 좀체 알 수가 있나, 저 방갓 쓴 상제처럼……."

말을 딱 끊고 방갓을 노려본다. 일동의 시선도 방갓 위로 함빡 쏠린다. 이 신부는 포졸 두목이 금방 포승으로 방갓을 후려치는 듯하다. 이때

“아! 저 어떤 놈이냐?”

돌연 앞에서 소리지른다. 그는 배 앞전에 앉아서 건너편만 바라보던 김명철이다. 일동은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니, 웬 농군 한사람이 도망질하여 맞은편 언덕을 넘었다.

“포졸을 보고서 도망친다. 저놈 천주학쟁이다!”

명철은 또 소리를 지른다. 고개를 번쩍 들고 쳐다보는 포졸 두목의 눈은 꿩을 본 매 눈처럼 빛난다.

 

“어, 참! 오늘 아무 일없이 넘긴 것은 첫째 천주의 안배요, 둘째 너희들의 기발한 수단으로 무사히 넘겼다”

이 신부는 안도하는 얼굴로 좌 중을 둘러보며 교우들의 수고를 치하하는 것이다. 말하는 대로 희미한 등잔불 빛이 토벽에 던져진 이 신부의 수염 그림자가 흔들거린다. 여기는‘진밭’이라는 교우촌 이 안드레아의 집이다. 이 신부의 일행이 날 저물기를 기다려 이 집에 들어와 간단히 저녁 요기를 한 다음, 한방에 모여 앉은 것이다.

“국실 교우들이 신부님을 모시고 따라 나선 것이 참 다행이었습니다.”

공소 집주인 이 안드레아도 국실 교우들의 충성과 지혜를 이렇게 치하한다. 아까 낮에 금강 나루를 마치 살얼음을 밟고 건너는 듯한 그 아슬아슬한 위험을 회상하고서 하는 말이다.

“모두 천주의 안배죠. 그런데 이야기가 하필 양인 문제로 들어가, 포졸 두목이 신부님의 수염을 노려보기도 하고 방갓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할 때, 겉으론 딴청을 피우며 안색을 변치 않으려고 얘를 썼습니다만 참 등줄기에는 진땀이 흘렀습니다."

하고 베드로 김 첨지가 그때의 심정을 실토한다.

“나는 정말 그때 아주 잡힐 줄로 알고 있었다."

이 신부는 아직도 기특한 듯 교우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저 요셉 박길보의 멍텅구리 놀음에 시간이 많이 갔습니다."

김 첨지는 박길보의 공을 치하한다.

“여하간 저 김명철이 아니었다면, 일은 나고야 말았을 겁니다. 그때는 달리 할 도리가 없었으니까요. 포졸 두목이 조금만 더 지체했다면 신부의 방갓을 벗겼을 겁니다.”

요셉 박길보는 이렇게 김명철의 공로가 크다고 주장하면서, 그때 광경이 눈앞에 떠오르는 듯 긴장하기까지 한다. 김명철은 아까 배 앞전에 앉아 이야기에는 참견하지 않고 먼 산만 바라보다가.

“아! 저 어떤 놈이냐?”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던 그 청년이다. 이 청년 역시 국실에 사는 교우로서, 본명은‘도마’이다. 본시 완력이 세고 씨름도 잘하여, 안성 백중 장날이면 다섯 번이나 황소를 끌어 온 기골도 장대한 청년이었다.

군란 풍파가 심하여 고향을 떠나 이리저리 떠돌다가 국실 공소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오는 중이었다. 이번 이 신부가 국실을 떠나 이‘진밭’으로 자리를 옮길 때에도 다른 누구보다도 자기가 모시고 가겠다고 주장하였다. 아까 포졸들이 배에 올라 서학이니 양인이니 하고 이야기가 벌어지고, 다른 교우들은 그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끌려고 할 때도, 명철이만은 시무룩하게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든 여유를 두어야 한다. 만약 교우들의 계책이 궁하여지면, 어떤 수단을 써서든 자기가 나서 보겠다는 의향이었다.

배는 맞는 편 언덕에 거의 다 왔는데 포졸 두목은 이 신부의 방갓 위로 함빡 쏠리고 있던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배가 건너편에 닿을 때 마침 어떤 소가 달아나고 그 주인은 소를 붙들려고 뛰어가는 것이 눈에 뜨였다. 소가 언덕을 넘기를 기다렸다가

“아! 저 어떤 놈이냐?”

하고 명철이 버럭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이야기판에 정신을 팔고 있던 그들이 바라볼 때는 소는 보이지 않고, 소 임자만 급히 언덕을 뛰어넘는 것이 보였다.

“저놈 천주학쟁이다! 포졸을 보고서 도망친다.”

연거푸 명철이 외치는 바람에 포졸들은 정신이 펄쩍 났던 것이다. 포줄 두목은 어서 배를 언덕에 대라고 사공을 독촉했다. 배가 닿자 포졸들은 우르르 거기로 달려갔다.

신부 일행은 배에서 내려 서로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갈 길이 바쁜 듯 작은 길로 접어들어 숲 속으로 사라졌던 것이다. 사람들이 무서워 으슥한 곳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어 이 동네 안드레아 집에 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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