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선 부서진 것들을 사용하십니다.(II)
천주교는 죽음을 통하여 살고, 버림을 통하여 얻고, 부서짐을 통하여
알곡되고, 깨어짐을 통하여 쓰임받고, 포기함을 통하여 소유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습니다.
하루만 죽어서도 안됩니다.
한번만 죽어서도 안됩니다.
한번만 깨어져서는 안됩니다.
한번만 부서져서도 안됩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 때문에, 주님을 위하여, 주님과 함께 죽고,
부서지고, 깨어져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 힘들고 고단한 이유는
우리의 고백이 '나는 날마다 사노라'이기 때문이 아닐런지요
왜, 불쑥 불쑥 혈기가 나나요?
왜,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미움이 일어 나나요?
왜, 주체할 수 없는 원망과 짜증으로 시달리나요?
왜, 견딜 수 없는 답답함과 절망감으로 우울해 지는가요?
덜 죽어서 그렇습니다.
덜 깨어져서 그렇습니다.
덜 부서져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습니다.
부서지게 하심은 쓰시기 위함이며, 깨어지게 하심은 성숙하게
함이며, 죽으라 하심은 살리시기 위함이며, 비참하고 초라하게
하심은 그만큼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고목에서 꽃이 피고, 반석에서 샘물 터짐이 더 귀하고 아름답듯,
우리의 부서짐과 깨어짐을 통하여 성숙해지고 쓰임받을 때
더 없는 감동과 기쁨이 두배겠지요
어떤 때는 하느님도 '너무하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그만 좀 부수고 때리셔도 되지 않느냐고?' 저항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하심'의 때는 하느님이 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특별대우' 하시고 특별하게 사랑하신다' 하시면서
좀좀 발가벗겨 광화문 네거리에 서 있게 하십니다.
그렇게 비참하고 초라하게 하심은
똑바로 살게 하심입니다.
똑바로 걷게 하심입니다.
똑바로 보게 하심입니다.
똑바로 믿게 하심입니다.
오늘 새벽 그 사랑에 목메이고 눈물겨워 그분 가슴에 살포시 얼굴을
묻고 고백합니다.
'이전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를 견책하시고 아들로 여기시는 자에게
매를 드신다. 무슨 견책이든지 그 당장에는 즐겁기보다는 오히려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책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은
마침내 평화의 열매를 맺어 올바르게 살아가게 됩니다."
(히브리서 12,6,11)
최악의 상황속에서도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하여
최고의 하느님을 만나십시오.
- 글 提供 - 김 루시아 수녀님 2004,7,9
♪ 구산성지 매일 오후 2시 영성강의(月 휴강)
♪ http://www.gusansungji.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