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이런 유쾌한 자매
작성자이봉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30 조회수922 추천수3 반대(0) 신고

 

성가대하랴, 그림그리랴, 미사전례 하랴, 도무지 시간이 날 것 같지 않은 그녀가

김장을 해서 가져온다고 했습니다. 봉사하느라 바쁜 그녀를 생각하면 내가 김장

해서 나눠야 하는데, 미안해서 몇 번 사양를 했지만 막무가내입니다. 내일 아침

 들릴테니 집에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틑 날, 비는 추적주적 내리는데 차를 몰고  몇 번씩 길을 물어가며 산 밑에

있는 우리 집을 찾아왔습니다. 병원에 예약을 해놔서 검사를 해애된다며 물 한

마지지 않으니 더욱 미안했습니다.

 

오랜 만에 만나니 할 이야기도 많은 것 같았습니다. 이야기 하는 사이에도 계속 

전화 벨 소리가 울렸습니다. 본당 성가대에 문제가 있어 고민하는 아내를 옆에서

지켜 본 남편이, 당신은 전  단장이니까 그 일에 너무 깊게 개입하지 말라는 간곡

충고의 전화도 있었습니다.

 

이제 골치가 아퍼 이 일 저 일 다 접고 한가지 일에만 열중해야 겠다며, 내년에

대학원에 가서 그림공부를 더 해야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녀는

민화용머리에다 천사 얼굴을 그려넣어 선생한테 꾸중도 많이 들었다는데

지금은 기어이 성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간 뒤, 시골에 가서 친척끼리 모여 담아왔다는 상자의 김치를 풀어

보았습니다. 익은 냄새가 물씬 풍겼습니다. 그런데 김치냄새가 영 시원치

않았습니다. 족히 배추 몇 통은 돨 것같은 풀이 죽은 김치를 통에 옮기다보니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한 잎을 떼어보니 배추 줄기가 흐물흐물, 다른 김치도

살펴보니  마찬가지였습니다. 도저히 찌개조차 할 수 없는 김치가 되어 버렸

습니다.

 

나는 버릴 수 밖에 없는 그 많은 김치를 멍하니 바라보다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배추 포기에서 빨리 가야하는 게 미안한지 " 오늘 스케줄 좀 봐

형님" 하고 보여주던 몇 시에는 어디. 몇 시에는 무슨 바자회 봉사 등, 할 일이

빼곡히 적혀있던 메모지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그렇게 바쁜 스케줄

때문에 날씨도 푸근한데 분명 베란다에다 며칠 김치를 방치해두지 않았었나

싶어서습니다. 게다가 이런 김치를 수녀님께도 나눠드렸다니...

  
 
국물을 꾹꾹짜서 김치를 음식물쓰레기 수거통에 넣으면서도 계속 웃음이 나왔

습니다. 이 웃음은 하느님의 일을 하느라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니는 그녀가,

게으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형님이라고 따르며 사랑을 베풀려고 했으니...

문득 죄인에게는 아무 것도 베풀지 말라는 성서구절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수녀님은...? 아마 수녀님은 김치를 해 온 날 가져다 드렸을 것입니다.

 

설령 재료에 문제가 있었다 할지라도, 저는 그녀 때문에 많이 웃었고, 김치를

버려야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오랜만에 많이 유쾌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러 바삐 뛰어다니는 사람들은 실수를 해도 실수가 실수로 여겨지지 않고, 메마른 세상에 뿌려지는 사랑의 향기라고 생각을 하니 이 일로 기쁨이 더욱

충만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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