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이겨야 합니다
작성자이봉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2-28 조회수762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5. 2. 20.

 

간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누군 지는 모릅니다. 방에 몰래 숨어 들어와 구석에 숨어 있었습니다. 소스라쳐

놀라 나가달라고 해도 갈 데가 없다고 했습니다. 산달이 가까운 여인이었는데 신고를 한다고 수화기를 들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잠이 깼습니다. 나름대로 해몽을 해보았습니다. 오늘 저에게 기도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한 영혼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씨가 추웠습니다. 체감온도가 족히 20도는 넘는 듯 했습니다. 감기기운도 있어 주일미사도 저녁미사로

미루다 정오를 넘겼는데, 그런데 그 꿈이 생각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았습니다. 기도대상이 나타났을 때

기도를 미루는 것은 자칭 적막 하우스라 부르는 이 가정 수도원에서는 작고 미묘한 정서적 불안을 초래합

니다. 주님 뜻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민한 탓이라고 도리

질을 해도 번번이 지는 건 저입니다.

 

가끔 이런 체험을 하고는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를 생각하곤 합니다. 얄밉게도 저도 그런 류형의 신자인 것

같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마리아를 칭찬하셨지만 어쨌든 얄미운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착각이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오늘날의 평신도 상은 마리아와 마르타가 적당히 조화를 이룬 모습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굴곡 없이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 같기도 합니다.

 

성지 미사를 드리려고 옷을 입으면 어지러웠습니다. 세차게 부는 바람 때문에 저녁에 본당 미사에 가자고

옷을 벗으면 괜찮았습니다. 그래도 그런 영혼을 위해서는 순교자들이 피를 흘렸던 성지미사가 기도가 더 잘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투를 벗었다 입었다 몇 번을 그렇게 자신과 싸웠습니다. 아니 사탄과 싸웠

습니다. 드디어 건강은 주님께 맡기자고 다짐을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살을 에이는 듯한 강바람을 막고 서서 촛불봉헌을 하며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꿈속의 영혼을 생각했습니다.

세계평화와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서도 두 개의 초에 불을 당겼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미사지향은 중점적

으로 그 영혼에 두기로 했습니다.

 

미사가 더 없이 거룩하게 느껴졌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말씀의 전례, 성찬의 전례의 말마디가 가슴속을

적셨습니다. 미사가 끝났습니다. 성당 밖을 나오니 쏴한 바람 속으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네가

이겼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였습니다. 미사를 미루게 해서 기도를 막으려던 사탄이 지고 만 것입니다.

 

밤 11시 15분에 그 여인이 누군 지 짐작이 갔습니다. 잠자리에 들려니 며칠 째 소식이 없는 S형님이 궁금했

습니다. 늦게 시인이 되고, 동창회장을 맡고, 사회활동이 분주한 그녀입니다. 평범하게 살다 늦게 명예를

얻으니 자연히 신앙생활은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일찍 세상을 떠나는 사위의 장례미사가 끝난 후, 성모동굴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시던 그녀의 아버지 모습을

잊지 못하던 나는, 그분이 돌아가신 후에 아주 오랫동안 그 영혼을 위해 기도를 했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끈을 하늘에서 놓고 계시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걸었습니다. 형님은 그 밤에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외로운 줄

어떻게 알고 전화를 했느냐 물었습니다. 그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긴 처음이니 놀랐던 것 같습니다.

내 목소리를 들으니 설움이 복받치는 듯 울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짝사랑이 힘들다고 했습니다. 며느리에게 아무리 잘해보려고 노력을 해도 너무 냉정하다고 했습니다.

그 서운함을 삭히기가 힘들어 혼자 술을 마시며 고민하고 있는 중인데 아무래도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삼십대 후반에 혼자되어 아이들을 그렇게 훌륭하게 키웠는데 돌아온 건 장마

철에 논에 둥둥 떠다니는 속이 텅 빈 우렁이 어미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나름의 분별로는 꿈에 나타난

여인은 이 형님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해놓고 실컷 웃겼습니다. 최근에 듣고 읽은 유모어를 웃음의 강도가 높은 것을

골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형님은 얘기를 들으면서 웃기 시작하더니 설움도 조금씩 가시는 듯 했습니다.

이때다 싶어 이런 위로의 말을 덧붙였습니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웃음까지 잃어버리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근심걱정 사서 하지말고 살려

면 웃자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살다보면 철나기 마련이고, 변화해야 되는 건 우리들이라고 했습니다. 주님

께서 말씀하시길, 오늘 걱정은 오늘로 족하다고 하셨거늘, 인간이 어리석어 천년 만년 살 듯이 걱정을 미리

당겨하며 스스로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고, 그 야심한 밤에 말에 힘을 주었습니다.    
 
형님은 맞아, 맞아!! 하며 내 말에 맞장구를 치더니 이 시간에 어떻게 전화 할 생각을 했느냐고 묻습니다. 꿈

얘기는 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니꼴라오 아버지께서 딸이 울고 있으니까 친구 되어주라고 나를 재촉하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도, 기도의 체험은 죽은 사람들의 영혼과 산 사람들의 영혼이 이렇게 통공을 하며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착한 딸이 맘이 여리니까 그녀의 아버지는 천국에 가 계셔도 그렇게 형님을 계속 돌보시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도구로 저를 써주신 것이라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순종 뒤에 일을 이루시는 그분이시므로 우리는 깨끗한 마음으로 기뻐하며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서로 잘 자라는 인사 속에 주님이 주신 평화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와 늘 함께 호흡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깊은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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