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잊을 수 없는 눈빛들
작성자이봉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5-06 조회수683 추천수2 반대(0) 신고

 

몇 년 전, 겨울이었습니다. 바람은 씽씽 불고 길은 꽁꽁 얼어 붙어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들도 조심스레 발길을 옮기는데,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바쁜

걸음으로  다가와 버스를 타려고 서 계셨습니다.

 

버스는 기디려 주지 않고 떠났습니다. 그럴 때 마다 차도에 덩그마니 서 계신

할머니를 부축해서 인도로 올라오시게 했습니다. 순간 뭔가 손에 쥔 쪽지를

내게 보이셨습니다. 서울의 어느 아파트의 동 호수가 적혀 있는 주소였습니다.

 

큰 아들네 주소라고 하셨습니다. 이 아들 집을 혼자 찾아 나섰다가 버스를 잘못

타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시켜 전화를 했더니 집에 사람이 없어 그냥 돌아오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곧 해가 질 것을 생각하니 그대로 버스를 탈 수가 없었습니다. 전화로 할머니

댁의 위치를 확인하고 택시를 잡으려고 했으나 그 시간에 택시를 잡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몹시 추웠습니다. 또 몇 대의 택시가 지나갔습니다. 스웨터 주머니에 손을 넣고

떨고 계신 노인을 바라보니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지 않을 리 없습니다.

불현 듯 사람이 태어나 산다는 자체에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참을

더 기다리다 간신히 합승을 했습니다. 그제서야 차 안의 온기에 말문이 열리시는

지 할머니께서 말문을 여셨습니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작은 아들은 살림 현편이 어려워 아들과 며느리가 함께 일찍

일을 나간다고 하셨습니다. 손녀들이 학교에 가면 혼자 있기가 무료해 큰 아들

집에 전화를 하면 바빠서 그런 지 할머니를 모시러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불현 듯 큰 아들이 보고싶어 길을 나섰다가 이렇게 남의 신세만 지었다고

하시면서 많이 미안해 하셨습니다.

 

마음씨 좋게 생긴 택시기사가 할머니의 말씀을 잘 받아주면서 다음부터는 길을

혼자 나서지 말라고 당부 합니다. 택시 요금을 내려니 한사코 사양합니다. 자신도

좋은 일에 동참하고 싶다며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자동차 문을 닫는 순간 마주친 운전기사의 눈빛은 참 선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세상이 훈훈해짐을 느끼며 바람막이에 할머니를 세워놓고 손녀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얼마 후 중학생과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할머니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손녀들을 보신 할머니의 눈에서는  금방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할머니의 양팔을 끼고 나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던 할머니의 손녀들, 목멘

소리로 복 많이 받으라고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시던 할머니의 눈빛이 아직도

아픔으로 남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누구나 주어진 인생의 몫을 다하고 살았다 하더라도, 늙고 병들면 순응해야 하는

인간 소외의 숙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이

외로운 처지를 감당해야 하나를 그 노인을 만난 뒤로  간간히 생각하곤 합니다.

 

 

추신

어버이 날이 가까워오니,

아주 오래 전에 문예지에 실었던 글이 생각 나 정리 해서 옮겨 보았습니다.

다음에, 다음에 하다 부모님 떠나신 후에 남는 것은 후회뿐이었습니다.

어떤 부모나 부모님들이 바라는 것은 자식들의 행복이며, 자신들이 느낄 수

행복은,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자식들의 작은 마음 씀씀이 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