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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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미사성제에 현존 : 위로자이신 성령 (Paraclete)
작성자송규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5-10-07 조회수1,117 추천수2 반대(0) 신고
봉헌 -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 떼이야르 드 샤르뎅 신부
만든이 : s.사도요한
  날짜 : 2005.
    봉헌 -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 떼이야르 드 샤르뎅 신부 주님, 이번에는 앤 Aisne 숲 속이 아니라 아시아의 대초원 안에 들어와 있지만, 또다시 저는 빵도 포도주도 제단도 없이 이렇게 서서, 그 모든 상징들을 뛰어넘어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순수 실재를 향해 저 자신을 들어올리려 합니다. 당신의 사제로서, 저는 온 땅덩이를 제단으로 삼고, 그 위에 온 땅덩이를 제단으로 삼고, 그 위에 세상의 온갖 노동과 수고를 당신께 봉헌하겠습니다. 저쪽 지평선에서는 이제 막 솟아오른 태양이 동쪽 하늘 끝자락을 비추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불이 찬란한 빛을 내며 떠오르면, 그 아래 살아 있는 땅의 표면은 다시 한번 잠에서 깨어나 몸을 떨며 또다시 그 두려운 노동을 시작합니다. 오 하느님, 저는 새로운 노력이 이루어 낼 소출들을 저의 이 성반聖盤에 담겠습니다. 또 오늘 하루 이 땅이 산출해 낼 열매들에서 짜낼 액즙을 이 성작 聖爵에 담겠습니다. 이제 곧 지구 곳곳으로부터 올라와 <영>靈을 향해 모아질 온갖 힘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는 영혼의 깊은 속, 그것이 저의 성반이며 성작입니다. 새날을 맞이하라고 지금 빛이 흔들어 깨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들과 신비로이 하나가 되게 하소서. 주님, 저는 지금 저를 먹여 길러 주고 또 저의 삶을 풍요롭게 하도록 당신께서 저에게 주신 사람들 하나하나를 보며 사랑합니다. 그 다음으로, 저는 또 다른 가족을 떠올리며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합니다. 그들은 마음, 학문 연구, 사상 등의 동질성을 통해, 너무나 다른 요인들을 묶어 하나의 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가족이 울타인 듯 저를 서서히 에워싸 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 좀더 막연하고 일반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누구도 제외시키지 않고 모두를 감싸 안으면서- 일일이 그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살아 있는 인류 전체를 저의 눈앞에 세웁니다. 제가 알지 못하지만 저의 가까이에서 저을 도와 주는 사람들, 오는 사람들과 가는 사람들, 누구보다다 사무실, 실험실, 공장에서 일하면서, 진리에 대한 꿈을 가지고, 혹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지상 현실의 진보를 정말로 믿는 사람들, 그래서 오늘도 빛을 향해 열정적 탐색을 계속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가지런하거나 혼란스럽거나 간에, 쉬지 않고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이 거대한 군중 앞에서 저는 떨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특별한 요동도 없이 나아가는 이 거대한 물결 앞에서는 믿음이 굳은 사람이라 해도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저의 온 존재가 바로 이런 깊이에서 올라오는 속삭임에 공명하는 것입니다. 이 하루 동안 더욱 커질 모든 것들, 이 하루 동안 더욱 작아질 모든 것들, 오늘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들까지도 주님, 이 모든 것을 한껏 저의 품속에 끌어 모으려 하는 것은, 그것들을 당신께 봉헌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저의 봉헌물이고, 당신께서 바라시는 단 하나의 봉헌물 입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자기네가 수확한 것 가운데 맏물을, 또 가축들 중에서도 제일 좋은 것을 당신의 성전에 봉헌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참으로 원하시는 봉헌물, 신비롭게도 당신께서 배고픔을 달래고 목마름을 해소하시기 위해 날마다 필요로 하시는 봉헌물은 이 세상의 성장, 우주 만물의 진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걸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그 성장뿐입니다. 주님, 새날의 첫 새벽에 당신께서 만드신 창조계 전체가, 당신의 이끄심에 따라 움직이며 모든 것을 다 올려 봉헌하는 이 거대한 제병祭餠을 받으소서. 저희의 노동인 이 빵이 그 자체로서는 너무나 보잘것없는 부스러기일 뿐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의 고통인 이 술 역시 다음 순간에 사라질 하찮은 것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볼품 없는 물질 덩어리 그 깊이에 당신께서는 거룩함을 향한 어떤 억누룰 수 없는 갈망을 숨겨 두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느낌으로 감지합니다. 그리하여 믿는 이나 믿지 않는 이나 저희는 모두 외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저희를 <하나>가 되게 해 주소서." 제가 비록 당신의 성인들처럼 영적 열망을 지니지도 그분들 같이 드높은 순결에 이르지도 못했지만, 당신께서는 저에게 칙칙한 물질 덩어리 속에서 꿈틀대는 모든 것들을 향해 억누를 길 없는 애정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천국의 자녀이기보다는, 비교 할 수 없이 더, 땅의 아들임을 의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늘 아침 제 어머니의 희망과 비참을 가슴에 품고 마음속으로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렵니다. 거기서 저는 - 당신께서 제게 주셨다고 확신하는 사제품의 힘을 빌어 - 떠오르는 태양 아래 인간 육체의 세계에서 이제 곧 태어날 것과 죽어 갈 것을 위에 <불>을 끌어내리겠습니다.
    저희에게 이토록 소중한 교육과정을 마련해 주신 저희 본당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함께 하신 모든 분들께 이 벅찬 기쁨을 함께 하고저 글을 올립니다. - 김광식 프란치스꼬 하비에르 신부님, 이 준호 미카엘 신부님, 오 혁 요한 보스코 신부님, 정휘델리스 수녀님, 황도미틸라 수녀님, 강마리엘 수녀님 주님의 사랑안에- 감사&사랑 오금동 성당 宋사도요한 - 소개의 글 - 떼이야르 신부가 학문적 탐사를 위해 오르도스 사막 한가운데에 가 있어서 미사를 드릴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그 마음속에 이 묵상이 떠올랐다. 그날은 떼이야르 신부에게 특별히 소중한 의미가 있는 "주님 거룩한 변모 축일"이었던 것같다. 그때 그는 성체적聖體的 현존이 우주 전역에까지 가 닿는다는 사실을 두고 묵상하였다. 물론 그는 엄밀한 의미의 성변화聖變化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현존과 말씀의 우주적 현존을 혼동하지 않았다. 성체 신비에 대한 그의 믿음은 열정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아주 정확하고 확고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 믿음은 대단히 강하고 실제적이었기 때문에, 성체적 현존에 당연히 따르는 결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성체적 현존의 "연장"延長과 확장으로 서 우주적 현존은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당시 성행했던 개인주의가 흔히 이 점에 관한 가톨릭 전통의 가르침 전체를 가리우던 상황 속에서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를 썼던 바로 그 해에-그는 이렇게 썼다. "그리스도께서 성사적聖事的으로 당신의 신자들 하나 하나에게 내려오실 때, 그분은 단순히 그 개인하고만 속삭이시려는 것이 아니다. [...] 그분이 사제를 통하여 "이는 내 몸이다" Hoc est corpus meum 하고 말씀하실 때, 이 말씀은 그것이 일차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빵 조각 너머에까지 나아간다. 이 말씀으로 인하여<신비체> 전체가 태어나는 것이다. 사제의 행위는 성변화을 통해 축성된 제병 그 너머 우주 자체에까지 미친다.[...] 물질 전체가 서서히, 그러나 어김없이, 대축성 大祝聖 과정을 거친다." 떼이야르 신부는 이미 1917년에 [사제]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육화 肉化과정의 연장선상에서 빵 속으로 내려오심 으로써, 빵 대신 당신 자신의 거기 계시기로 하셨을 때, 그분의 이 행위는 당신의 현존으로 한순간 증발시켜 버릴 한 조각 물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변화聖變化 둘레에는, 비록 한 단계 약화된 형태라고는 하지만, 전체 우주의 실제적 신화神化가 에워싸고 있다. 말씀은 자신이 뚫고 들어간 우주적 알갱이을 거점으로 해서, 여타의 모든 것들을 자기에게 복속시키고 동화시킨다." 우리는 이 글들에서 성체의 신비가 그 정확한 본질 그대로 조금도 손상 없이 존중되었을 뿐아니라, 이 신비에서 흘러나오는 이차적 효과들과는 분명히 구분됨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성체성사의 깊고 풍부한 효력은 신비체의 성장이나 우주의 축성 등과 같은 이차적 효과들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또 이런 글에서 우리는 떼이야르의 사상이 사도 바울로의 사상과 얼마나 깊고 진정한 일치를 이루고 있는지를 잘 볼 수 있다. 떼이야르 신부가 "자신의 매일 미사에 우주적 기능과 전 지구적 차원을 부여하는 데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가 이 글에서 잘 나타난다. ... 이런 입장이 그의 사상 속에서 성체성사에 관한 가장 전통적인 신학 노선과 일치한다고 하는 것은 구태여 따로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를 쓰고 나서 1년 후 떼이야르 신부는 [나의 우주]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세계의 경륜 속에서 성체성사가 차지하는 근본적 위치를 합당하게 이해하려면[...] 그리스도교 사상과 기도를 더 중요시하고, 또 성체적 현존의 연장이 얼마나 실제적이며 물리적인지를 더 깊이 깨달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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