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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어나 걸어라
작성자김형기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30 조회수3,294 추천수12 반대(0) 신고

                                 일어나 걸어라
 


                                                                   김형기 스테파노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 하나를 잃고 하나는 크게 다친지도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시간이 흐르니 휠췌어에 앉아서 지내는 생활에도 적응이 되어 가고 끔찍했던 기억도 희미해져 가는 걸 보니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곧 지나 간다."는 말이 맞는 것같다.
 지금도 두 다리로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꿈을 꾸고는 깨어 나서 허무해 하곤 한다. 가끔 다리 하나가 없다는 사실을 깜박 잊고는 벌떡 일어 서려고 한다거나 보행 보조기를 짚고 걷는 연습을 하면서 콧등이 가려워서 긁다가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하기도 한다. 60년 가까이 두 다리로 살았는데 그러는게 당연하겠지. 시간이 흐르면 다리 하나로 사는데 적응이 되리라.
 요즈음은 재활원에 다니면서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의족을 끼고, 보행 보조기를 짚고 연습을 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지만 걸어서 성당 2층에 있는 도서실까지 올라 갈 수 있는 날이 머쟎아 오리라 확신한다. 주님께서 "일어나 걸어라. 내가 네손 잡아 주리라."하고 말씀하시는데 뭘 걱정하겠는가?
 
 일년전에 일어난 그 교통사고는 정말 날벼락이었다.

 앞뒤로 주차한 차들 사이의 공간에 내 차를 주차시켜 놓고 나서, 트렁크에서 뭔가를 꺼내려고 하는 데 몸이 붕 떠서 한참 동안 날아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참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1~2초 동안의 짧은 시간이었으리라. 눈을 떠 보니 다리가 불이 붙는 것처럼 뜨거웠고, 몸을 움직여 보니 다리 두 개가 덜렁거렸다. 주위에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경을 하고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옆에 서서 들여다 보고 있던 사람의 도움을 받아 911과 집에 전화를 하고 얼마후에 앰브란스에 실렸다. 그리고는, "이제 다리 없이 어떻게 살아 갈까?" 하고 생각하며 서럽게 울다가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의식은 가물가물한데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가 망가진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아래쪽을 내려다 보니 하얀 시트로 덮여 있는 다리 하나가 보였다. "Thanks, God!"이라고 내뱉고 나니 안도감이 들었고 다리 하나라도 건진게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디에 와 있는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몸은 어떤 상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의식은 계속 가물가물하고....옆에 있던 아내가 사고후 두 달이 지났다고 한다.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해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나서 알고 보니 왼쪽 다리는 절단되어 있고, 오른쪽 다리는 여러 도막으로 부러진 걸 어렵게 연결해 놓은 상태이고, 성대가 망가져서 말을 할 수가 없고, 삼키는 근육이 상해서 음식을 입으로 삼키거나 마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종이 한 장 들 기운조차 없고....19 살 된 운전 경험이 별로 없는 아이가 부주의로 내 차뒤에 주차한 차를 들이 받으면서 내가 차 두 대 사이에 끼였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고....


 다리 하나라도 건졌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은 의외로 평온했다. 다른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 될 것 같았고. "기왕에 벌어진 일 모두 주님께 맡기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굳게 다짐하면서 두 가지를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님을 원망하지 말자."와 "많이 웃으며 살자."였다.
 많이 웃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병객들을 만날 때마다 미소를 지었더니 일요일마다 방문하시던 어느 미국 신부님은, "넌 정말 백만불짜리 미소를 가졌구나!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웃을 수 있니?",하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밤에는 그럴 수 없었다. 누워서 십자고상을 노려 보고 있노라면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온 몸이 붕 떠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막 뒤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여기 저기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꼭 죽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말을 할 수 없는 답답함과 먹고 마실 수 없기에 생기는 공복감과 갈증도 견디기 어려웠다. 억울하다는 감정도 억누르기 어려웠다. 나는 그 사고의 원인 제공자가 아닌데, 잘못이 있다면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있었다는 것 뿐인데, 나는 이 고통을 받아야 하고 나를 친 녀석은 멀쩡하다고 생각하니 억울한 생각은 더했다.
 죽으면 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 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매일 밤 십자고상을 노려보며 울면서 기도를 바치거나 투정을 부렸다. "주님, 절 빨리 데려 가 주세요." 라거나 "주님, 전 정말 억울합니다." 라고.

 그러던 어느날 오후였다. 아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내 앞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전부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고 있는데, 표정은 하나같이 침통해 보였다. 멀리 뚜껑 닫힌 상자같은 것이 보였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관이었다. 이 사람들이 뭘하고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며 둘러 보고는 그들이 내 연도를 바치기 위해 모여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얼마후 아내가 돌아 오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환시를 본 것이었다. 그 이후로 죽고싶다는 생각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주님께서는 환시를 통해서 나를 깨우쳐 주신 것이리라.
 그리고 며칠후, 그날 밤에도 십자고상을 노려보며 주님께 "나는 억울하다",고 눈물을 흘리며 푸념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님의 말씀이 들렸다. "너 정말 나보다 더 억울하냐?" 라고.
그 때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며칠동안 십자고상을 노려보며 곰곰히 그 말씀을 되씹어 보니, 주님이 십자가형을 당하신 것은 정말 억울하셨겠다는 생각이 들며, 내가 억울하다는 생각도 점차 사라지고 주님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주님께서 억울하다고 생각하시진 않았겠지만 내 수준에 맞게 알기 쉽게 그렇게 말씀하셨으리라.
 
 사고후 6개월 만에 퇴원을 전후해서, 성대 수술을 통해 목소리를 되찾았다. 망가진 성대를 인공 보형물로 일으켜 세워 놓았는데, 목소리가 쉰듯하고 전화로 내 목소리를 처음 듣는 사람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도 이런 사소한 문제를 말못하는 고통에 비할까? 오랫동안의 삼키는 훈련을 거쳐 음식도 다시 입으로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여러 조각으로 부러진 오른쪽 다리뼈들을 결합시키기 위해 아홉 달동안이나 부착해 놓았던 쇳덩어리도 제거하고, 82 파운드까지 떨어졌던 체중도 정상으로 되돌아 오고.....끔직했던 입원생활을 되돌아 보면서, 이제는 주님이 겪은 고통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의족을 맞추어서 신고 걷는 연습만 하면 되는 구나 하고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의족 전문가를 여러 사람 만나보고, 의족을 맞추고 재활훈련에 대해서 알아보고....바쁜 나날들이었다.
 드디어 의족을 찾아서 오던날, 의족 전문가가 절대 집에서 연습하지 말고 재활원에서만 연습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내 인생은 이제부터 장밋빛이구나!"하고 들떠 있던 사람에게 그 말이 귀에 잘 들어오겠는가? 급한 마음에 그날 저녁에 당장 의족을 끼고 걷는 연습을 하다가 그만 넘어 지고 말았다. 다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다리를 움직여 보니 부러진 것 같았다. 
 앰브란스를 불러 타고 병원으로 가면서 "설마 이번에는 다리를 자르지 않겠지."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은 억누를 수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느껴지는 통증을 참아 가며 병원 응급실에서 오랫동안 누워 있으면서, 주님이 겪은 고통을 알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오만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 인간이 어찌 그 고통을 알 수 있겠는가?
 엑스레이를 찍은 다음에, 의사가 다행히도 뼈 세군데 금이 갔을뿐, 부러지지는 않아서 허벅지에서 발가락까지 두 달 정도 깁스를 하고 지내면 뼈는 아물것이라 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두 달이 지나 깁스를 제거하고 바로 재활원에 등록을 하고, 요즈음은 매주 세 번씩 재활원에 가서 재활 훈련을 받고 있다. 걷는 연습을 위주로 해서 약해진 다리 근육 강화와 팔 운동 그리고 체력단련을 위한 훈련을 받는다. 재활원에서 짜준 프로그램에 따라 심리상담을 매 주 한 번씩 받기로 되어 있다.
 얼마전에 심리상담을 받기 위해 담당자인 심리학 박사를 만났더니 미주알고주알 많이도 물어본다.
   "사고 전에 비해 딸들과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많이 가까워 졌어요,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전화하던 놈들이 이제는 하루에도
     두 세 차례씩 전화해요."
   "하느님과의 관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아주 가까워 졌어요. 아니, 늘 저와 함께 하시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성당에 가면 어떤 느낌이 들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느껴서 행복해요."
   "요즘 기분은 어떠세요?"
   "행복합니다."
   "왜 행복하다고 느끼지요?"
   "살아 있다는 게 행복하고, 말을 할 수 있으니까 행복하고 또 입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까 너무 행복해요" 
 상담을 마치며 그녀는 "당신은 어려움을 잘 극복해 나가는 것 같으니까 정기적인 상담이 필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다리 하나를 잃고 나서야 일상적인,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비로서 알게 되었으니 난 정말 우둔한가 보다.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한 이후 얼마동안 어떤 남자(얼굴 형체만 어렴풋이 보이는)가 나를 내려다 보며 슬퍼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괜찮아요."하며 손을 휘저으면 사라지고...그 남자는 얼마 후에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으로, 서너 달 지나서는 기뻐하는 모습으로 여러번 다시 나타났다. 나는 그 남자가 주님이었음을 확신한다. 주님이 항상 옆에 계시며 나와 함께 슬퍼하시고, 아파하시고 내가 회복됨을 기뻐하셨다고.
 
 투병생활하는 동안 나는 우리 공동체 가족(신부님,수녀님 그리고 교우 여러분들)들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많이 받았고 그 사랑이 나를 다시 일으켜 준 힘이 되었다. 공동체 가족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행복하다. 감사한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다. 
 
 그리고 내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늘 나와 함께 해주신 예수님과 성모님께 감사드리며 이글을 마친다.

 

***미국 뉴져지 주에 살고 있는 동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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