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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작성자김유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15 조회수2,742 추천수3 반대(0) 신고

지금부터 스물다섯 해 전 일입니다.


아내가 될 사람인 레지나 씨가 천주교 세례를 받아야 결혼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 바람에 저는 명동대성당에 난생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 혼자였습니다. 여자 친구가 머나먼 부산에 살고 있었으니 저 혼자 갈 수밖에 없었지요. 그 여자가 그렇게 완강하게 굽힐 수 없다니 천주교가 과연 어떤 종교인지 처음으로 호기심이 생겨났습니다.


천주교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종교인가. 서양 역사 공부시간에 배운 천주교는 상당히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면죄부 팔다가 마르틴 루터의 개혁을 피할 수 없었던 타락한 종교. 철저히 세속과 같은 정치조직을 갖춘 권력집단. 여러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지상의 종교국가. 마리아숭배 종교, 교황은 적그리스도 등등. 이런 것들이 내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천주교에 대한 관념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명동성당의 미사에 참석했을 때는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세례 받기전이라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특전미사였던 것 같은데, 긴 회랑 안쪽 끝에 제단이 있어서 미사를 집전하시는 신부님의 모습은 잘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미사순서를 자세히 알 수가 없어 그저 눈치껏 남들이 하는 대로 앉았다 일어섰다 하기도 했고, 성찬의 전례 때는 무릎을 꿇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생소했지만 다행히 성경(공동번역 성서)이 같았고, 성가 몇 곡이 개신교 다닐 때 부르던 것과 같아서 천주교도 별로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으로 미사에 참석하는 중 내 영혼에 각별한 울림을 주었던 것은 역시‘키리에’(주님 자비를 베푸소서)와 ‘아누스 데이’(하느님의 어린양) 이었습니다. 천천히 느릿느릿 간절하고 애처롭게 부르는 그 노래 소리는 늘 씩씩하게 큰 소리로 찬송가를 불러왔던 제게는 하나의 경이(驚異)요, 신기함 그 자체였습니다.


‘키리에’를 부르면서 고등학교 3학년 때 내게 세례를 주셨던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첫걸음은‘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것,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라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예배 순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설교도 아니요, 기도도 아니요, 바로 복음을 선포하는 순간이라고 하시던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우행시’로 더 잘 알려졌죠)이라는 공지영 자매가 쓴  소설을 읽었습니다. 사형수 면회실에 ‘돌아온 아들과 아버지’라는 그림이 걸려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물론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말씀을 그린 것이지만 하느님의 자비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은 공교롭게도‘하느님의 자비’주일이네요. 처음 성당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가장 절실하게 와 닿았던 미사곡이 바로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는 노래였다는 것은 종교적으로 의미심장한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가톨릭의 미사 전례가 회개와 죄의 고백, 하느님의 용서, 구원의 말씀을 통한 믿음과 성찬의 전례를 통한 사랑의 체험, 그리고 세상으로의 파견이라는 순서로 잘 짜인 예배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톨릭에 대한 선입견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그때였습니다. 물론 주일 낮 미사 때 때때로 김수환 추기경님이나 경갑룡 대주교님의 강론을 듣는 것은 늘 감동의 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오는 7월 11일이면 가톨릭 영세를 한지 꼭 25주년이 됩니다. 올해는 개신교에 몸담은 시간과 가톨릭에 몸담은 시간이 꼭 같아지는 해입니다. 저한테서 아직 개신교 물이 덜 빠졌다는 인상을 받는 분들도 있는 줄로 압니다. 하지만 복음에 기초하여 균형을 잃지 않는 건전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신앙인의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키 쾨더의 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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