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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원주교구청에서 있었던 일-나의 고백 (3)
작성자이용섭 쪽지 캡슐 작성일2007-07-09 조회수3,910 추천수0 반대(0) 신고

나의 고백 (3)

한국 천주교 원주교구청에 있을 때 중앙정보부(전 안전기획부. 현 국가정보원)에서 오는 전화는 내가 거의 다 받았다. 이 일이 거기에서의 내 일들 중 하나였다. 중앙정보부에서는 매일 같은 시간에 지학순 주교의 동향을 물어 왔고 나는 무조건 모른다고 답했었다. 당시 다른 곳들도 물론 그러했었겠지만 원주교구청도 철저하게 전화가 도청되고 있었으므로 지 주교가 중요한 통화를 할 때에는 반드시 라틴어로 통화했었다. 왜냐하면 라틴어는 사어(死語)이고 천주교에서만 통용되는 언어이기 때문에 도청을 해 보았자 그 대화내용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천주교에서 세례받고 과거 수녀원에까지 들어가려고 했었던 박근혜 전 대표는 항상 한국 천주교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

내가 원주교구청에 오고 나서 저녁마다 거의 술에 취해서 사니 얼마 지나지 않아 용돈이 다 떨어져버렸다. 그래서 원주교구청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어느 날 밤 나는 후래쉬를 가지고 교구청 지하실에 몰래 내려갔다. 당시 거기에는 미사주로 사용될 마주앙(국산 고급 포도주)이 박스 채로 산더미처럼 쌓여져 있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도 있고, 돈도 없어서 나는 하느님께 속으로 "훔쳐서 팔아 먹는 것은 아니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간단히 기도한 후 4홉들이 마주앙 2병을 선 채로 몽땅 다 마셔버리고 말았다. 그후에도 교구청에 사람이 없을 때에는 지하실에 몰래 내려가서 마주앙 2병씩을 마시곤 했었으나 워낙 교묘하게 지능적으로 훔쳐 먹어서 나의 주벽(酒癖)으로 인해 쫓겨날 때까지 한번도 들통이 나지 않았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感)은 들지만 이 어리석었던 나의 행동에 대해서 원주교구청에게 사죄한다. 당시 원주교구청 사무처장 신부는 고교시절 원주에서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던 분으로 기억되지만 오래되어서 그 이름은 잊었다.

거기에 있을 때 거의 숙취상태(宿醉狀態)로 지 주교나 사무처장 신부가 집전하는 아침미사에 나갔을 뿐만 아니라 술에 취해 자고 있는 나를 지 주교가 깨운 것도 여러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술에 취해 자고 있는 나를 지 주교가 깨우더니, 너는 신부가 될 수 없으니 보따리 싸서 가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날로 짐을 꾸려 서울 집으로 왔었다. 그후 내가 지 주교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강박신경증으로 한창 고생할 때인 1980년대 초였다. 하루는 볼 일이 있어서 서울 우이동 산 속에 있는 피정(避靜) 센터 '명상의 집'으로 걸어 올라가는데 산 길 옆에 지 주교와 신부들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못 본 체 피해 가니 나를 알아 본 지 주교가 불러서 잠시 대화를 했다. 그때 내가 요사이 강박신경증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하니 지 주교의 표정에서 놀라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인사를 하고 거기를 떴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때, 그 일로 인해 지 주교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그리고 수년 전에 한 월간지를 통해 김지하 시인이 무당종교 비슷한 것을 믿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 시인은 전두환 정권이 수립된 후 길고 긴 수감생활에서 풀려났는데 이것도 역시 지 주교가 힘을 썼기 때문이었다. 내 경험에 의하면, 그리스도교(천주교+개신교)의 신앙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운동권에 뛰어들게 되면 대부분이 신앙을 버리게 된다. 예컨대, 천주교 신자였던 강철 김영환이 그러했었는데 그는 1990년대 초 밀입북하여 김일성을 두번씩이나 면담했다. 그리고 아마 운동권에 들어가서 신앙을 버리는 일들은 지금도 역시 계속 반복될 것이다.그런데 김대중 비판서 '동교동 24시'의 저자 함윤식은 김대중 정권 수립 이후에 그들의 정치보복으로 인해 1년간의 옥고를 치루고 나와 신앙을 가졌는데 수년 전 그는 개신교의 장로가 되었다. 그는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많은 옥살이와 고문을 당하면서 단 한번도 반성문을 쓰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함윤식을 구속 수감시켰던 김대중은 전두환에게 두번의 탄원서(반성문)를 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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