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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60그램의 새 생명이 안겨 준 하느님의 선물
작성자강민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16 조회수1,156 추천수5 반대(0) 신고


나는 소아과 전공의 3년차이다. 전공의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수련 과정에 있으므로 완성된 '소아과 의사'라는 타이틀로 표현하기에는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공의 2년차 8월. 나는 인생에서의 첫 슬럼프를 경험하였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인턴부터 발디딤을 시작한 병원이라는 사회생활에서 처음으로 좌절, 실망, 방황, 사회의 냉정함 등을 직접 겪게 되었다. 그 때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한가지의 생각은 '도망가고 싶다'라는 거였다. 나에게 지금 주어진 현실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어 그냥 도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장 내가 빠지게 되면 생기는 공백을 다른 누군가, 나의 동기들 중 하나, 가 매꾸어야 하므로 다른 사람한테 몹쓸 짓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택한 나의 방법은 '마음은 현실에서 도피를 시키고 머리만 가지고 사는 것'이었다.

그렇게 약 보름간을 살았다. 그러나, 껍데기만 가지고 생활을 하니 즐거움이 사라지고 의욕이 없어졌으며 사회생활을 정말 '일'로만 생각 하게 되었다. 그냥 정형화된 일을 하듯이 해야 할 최소한의 일들만 반복적으로 하고, 일에서 벗어나게 되면 다시 내 안에 마음을 넣어 어떻게 하면 현실에서 도피할까 하는 궁리만 하며 살았다.

그러나 세상은 정말 넓었다. 처음으로 의과대학, 병원의 울타리를 벗어나 다른 무언가를 찾고 싶었으나 너무나도 광범위해서 찾는 과정 조차도 막막했다.

어찌 어찌하다가 8월이 지나가고 9월이 되어 신생아중환자실로 근무 장소가 바뀌게 되었다. 갑자기 1500그램도 되지 않는 아가들을 돌보는 주치의가 되면서 새로운 도전들을 대면하게 되었다. 정말 작은 그 몸으로 손짓을 하는 아픈 아가들을 보면서 일은 힘들었지만 조금씩 마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아가들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버티기 힘들었기에 본능적으로 마음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마음의 반 이상은 허공에 현실도피를 찾아 방황하고 있었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일을 시작한 지 약 5일정도가 지났을까.. 밤 10시경 500~600그램 정도 되는 태아의 상태가 좋지 않아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한다고 산부인과에서 연락을 받았다. 이런, 오늘도 잠을 자기는 틀렸군…하며 수술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수술장 입구에서 산모의 보호자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한번 쓰윽 보고 수술방 안으로 들어갔다. 마취가 되고 산모의 배에 수술용 칼이 대이기 시작했다. 어떤 상태로 나올 것인가에 대한 불안으로 긴장하면서 아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2006년 9월 5일 밤 10시 26분. 그 조그만 아가가 '엥' 하는 울음소리를 내려고 하는 듯한 표정으로 태어났다. 정말 조그만 했다. 내가 본 중 가장 작았던 아가다. 다행히 심장은 잘 뛰고 있어 인공호흡 튜브를 끼우고 산소를 공급하고 숨을 불어넣으면서 신생아중환자실로 데리고 왔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측정한 몸무게는 560그램이었다. 미숙아, 조산아가 겪어야 할 앞으로의 문제들에 대해 보호자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그 시점에서 당황하고 긴장해서 내가 설명하는 내용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며 여러 질문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그 아가의 외할머니라는 보호자 한 분이 뭔가를 다 알고 계시다는 표정으로 '잘 부탁한다, 최선을 다해달라'는 말씀만 남기셨다. 뭔가 찡한 느낌의 전율이 생기면서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으로 충만해지는 것 같았다. 그 동안 허공을 떠돌았던 내 마음이 조금씩 제 자리를 찾기 시작했고 나는 해야 할 기본적인 처치들을 한 후 다음날 새벽 새우잠이 들었다.

첫 날, 둘째 날... 아가는 점점 갈수록 예뻐졌고 건강해졌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났고 하루하루 아가를 키우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 조그맣고 예쁜 것이 꼼지락 움직이기도 하면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미숙아에게 오는 어김없는 시련이 다가왔다. 생후 3일째 밤부터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동맥관이 확 열리면서 폐가 안 좋아지고 숨 쉬는 게 힘들어졌으며 혈압이 떨어졌다. (동맥관은 정상적으로 출생 후 저절로 닫히는 데 미숙아에서는 종종 닫히지 않는 경우가 있어 동맥관개존증이라고 한다) 동맥관이 막히게 하는 약을 썼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동맥관 사이즈 자체가 아주 크지는 않은데 아가의 몸이 워낙 작아 그 아가한테는 거의 대동맥의 크기와 비슷했던 것이다. 심장초음파로 동맥관 닫히게 하는 약을 쓴 후에도 비슷하게 열려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수술을 하기로 결정되었다. 소아흉부외과 팀에 의뢰하여 동맥관을 묶는 수술을 하였다. 담당 교수님께서는 그 때까지 수술하신 케이스 중 가장 몸무게가 작다며 매우 정교하고 조심스러우며 꼼꼼하게 해주셨다.

생후 4일째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되었다. 그러나 미숙아들은 수술을 받고 나면 굉장히 힘들어한다. 마취하는 것, 수술 상처, 수술 후 바뀌는 혈액 순환 등 조그만 아가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것이다. 이 560그램 아가도 마찬가지였다. 수술 후 동맥관은 닫혔지만 다른 컨디션들이 악화되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지나가도 인큐베이터 앞에서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그냥 아가를 지켜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할머니의 간곡한 부탁, 예뻤던 몸짓들, 하나하나 안정이 되고 좋아지는 경과를 보면서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을 때의 그 즐거움, 나도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라는 자신감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던 것, 나도 모르게 나의 마음을 제자리로 끌어당겨 그 슬럼프에서 조금씩 올라올 수 있게 도와준 이 선물. 이 아가를 예쁘고 건강하게 꼭 살려야 나도 다시 도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기도했다. 살려달라고, 간곡히 기도했다. 살려만 주신다면 그 어떤 희생, 시련도 내가 달게 받겠다고... 약 반 년 동안 잊고 있었던 내 안의 하느님께 화살기도를 하며 무릅을 끓고 기도를 했다. 그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내가 방황할 때 어찌 하느님을 잊고 있었는지... 껍데기에 머리만 넣어 살았던 지난 보름간 나는 고통스럽다고 힘들다고 부르짓으면서 어떻게 기도를 하지 않았는지... 내가 지금 서있는 곳의 위치, 살아가는 목적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하느님 안에서 다시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슬럼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렇게 560그램의 아가를 통해 하느님은 아주 소중한 선물을 주셨다. 그리고 화살기도 제목대로 아가는 다시 살아났고 하루하루 회복을 하면서 아주 예쁘게 커갔다. 물론 그 후로도 아가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직면했지만 꿋꿋히 견디어 냈다. 1개월 후 나는 다른 근무지로 변경이 되어 다른 주치의들을 통해 간간히 소식만 듣다가, 생후 7개월경 출생 체중의 10배가 된 그 아가를 다시 보게 되었다. 보자마자 눈물이 났던 것을 참으려고 어찌나 노력을 했던지…

요즘의 나의 기도 제목 중 하나는 나와 병원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예쁘고 건강하고 착하게 잘 성장했으면 하는 것이다. 보호자들과 얘기를 할 때 힘들다고 나에게 울먹거리면 나는 꼭 하는 말이 있다. "앞으로 OO가 회복되어 건강하게 잘 크면 엄마 아빠한테 효도할 꺼예요."  그리고 종교가 있는 분들께는 "엄마 아빠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라고 감히 설교를 한다. 그러나 그건 겉도는 말이 아니다. 직접 내가 하느님을 체험했고 그가 나에게 주신 메시지를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꺼내어 위로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평생 동안 나는 하느님이 주신 선물을 간직하며 그렇게 따뜻하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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