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나의 운명 장애인 행정 도우미
작성자김민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25 조회수1,389 추천수11 반대(0) 신고

 

 

흰색으로 칠해진 육면체 삐걱거리는 철제 침대, 그 위에 흔들거리는 링거병 속에서 나오는 하얀 액체를 몸에 담으면서 누워 있는 남자. 저쪽 구석에는 운동화 한 켤레가 피범벅이 된 채로 남겨져 있었다. 그 남자는 바로 나였다. 그 당시에는 어떻게 해서 내가 거기에 있게 된 상황인지 몰랐다. 나중에 나의 고향 제주도로 2차 치료를 받으러 갔을 때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날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당시 계명대학교 학생이었고 총학생회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고가 난 때는 2001년 10월 19일이었습니다. 그 날 총학생회 부회장과 밤 늦게까지 일하다가 일을 끝냈습니다. 밤이 늦었기에 부회장은 내 자취방에서 자고 간다고 해서 우리는 내 자취방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내 자취방 도로 앞은 지하철 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어수선하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스쳐지나갈 때 쯤, 우리가 탄 차는 좌회전 신호를 무시하고 좌회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반대편에서 봉고 차량이 과속으로 돌진하더니만 우리가 타고 있던 차를 급습했습니다. 신호를 무시 한 결과입니다. 그 사고 후 우리는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응급치료를 끝내고 우리는 학교부속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 후 부회장은 일주일만에 퇴원했지만 난 40일째 의식이 없던 채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영화 속 필름처럼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제주에서 대구로 왔던 장면들이 하나 하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축구 스포츠기자라는 꿈을 향해 인문대 축구부에 입단하여 주장까지 올랐던 일, 밑바닥 경험을 많이 쌓기 위해서 했던 신문 배달, 총학생회 사회문화부장으로 일하며 헌혈 릴레이를 기획하여 총장님으로부터 받았던 공로패. 그 모든 것이 한 순간의 사고로 인해 꿈결 같은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 날의 교통사고로 뇌병변 2급 장애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황금같은 20대 중반을 시간이 가는대로 흘려보내고 말았습니다.

통원 치료까지 모두 마친 후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장애인 직업재활 시설 어울림터였습니다. 그곳에서 다른 장애인들을 경험하게 되었고, 나의 생각이 바뀌게 되는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은 비록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늘 웃음이 떠나지 않는 해맑은 얼굴이었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문득 제주대학교 부속병원에서 우울증을 치료하면서 의사 선생님께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달리 해 보았습니다. 사고 당시 2002년도에 대구에서 지하철 사건이 일어나 많은 인명 피해가 났었습니다. 교통사고가 아니었다면 나는 대구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고, 그 사고가 일어날 당시 죽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오히려 교통사고가 죽음을 피해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이때, 옆집 할머님의 권유로 성당에 가게 되었습니다. 아니, 주님께서 교통사고 전에는 주님의 고마움을 모르던 내게 교통사고를 통해 부르신 것입니다. 나는 이 부르심에 합당하게 응답하였습니다.

일년이 넘게 교리 교육을 받고  미카엘이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고, 일 년 뒤에 견진성사까지 받아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 때 주님을 더 잘 알고자 네이버에 있는 ‘천주교 신자 여러분’카페에 가입하고, ‘믿는이의 편지‘를 통해 천주교리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블로그(http://blog.naver.com/skykms)를 작은 성지화하여 매일 복음 말씀을 네이버 카페(천주교 신자 여러분)에 있는 신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두 번째 삶을 살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리곤 두 번째 인생에서는 다른 장애인들을 위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자고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좋은 생각’과 ‘매일미사’를 소리 내어 크게 읽으며 발음 연습을 하면서 긍정적인 마인드를 키워 나갔습니다. 저녁 식사 전에는 노래를 부르며 동네를 휘젓고 걸어 다녔습니다. 저녁을 먹곤 아버님과 함께 학교운동장에서 재활훈련을 하였다. 일단 걷는 것이 불안정했기에 수 없이 걸었습니다. 엉성한 폼이지만 운동장을 뛰어다녔고, 평균대에서 균형 잡는 연습도 하였습니다. 사고 전에는 자전거도 탈 수 있었고, 수영도 했었지만 지금은 균형을 못 잡아서 할 수 없습니다. 더 균형 잡는 연습을 통해 자전거도 타고 수영도 할 수 있게 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좋은 폼으로 뛰어 다닐 것입니다.

해병대를 제대한 나였기에 육체적으로 힘든 것 쯤은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비장애인이었을 때 해병대를 제대한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버님이 나를 많이 이끌어주셨습니다. 당신 아들이 하루 아침에 거의 불구가 되 버렸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하지 않고 언제나 넉넉한 웃음으로 나를 받아 주셨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나의 재활 운동에 조교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끝없는 발음 연습으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사고 초기에는 내 발음은 발음도 아니었습니다. 거의 괴성에 가까웠습니다. 언어 치료사 선생님 말에 의하면 말하는 것이 가장 늦게 돌아온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랬습니다. 두 번째 인생에서의 좀 더 나은 발음을 위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찬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학교 복학을 위해 대구로 갔고, 이런 생각들을 실천하기 위하여 전공과는 상관없는 평생 교육사 공부를 하였고, 졸업 후 공부를 더하여 사회 복지사 자격증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 것은 주님께서 절 이끌어서 취득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사회복지와 관련해서 일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회의 문은 좁고 높았습니다. 그래서 잠시 사회복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들-프리랜서 사진가, 웹 디자이너, 사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마더 데레사 수녀님을 알게 되었고 그 분이 한 말 “이해받기 보단 이해하고 사랑받기 보단 사랑하라”는 말은 내 생활신조가 되었습니다. 이때 처음에는 주님께서 왜 내게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게 하셨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기도드릴 적마다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님의 뜻을 알지 못했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제 뜻에 의해서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평화의 마을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개신교 신자들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느낌이 안 좋았지만 당시에는 거기 다닐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이왕 다니게 된 거 평화의 마을에서 열심히 해 보려고 소시지 판매용 전단지를 만들었었는데, 주님께서 거기는 제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간접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소시지를 판매키 위해서 전단지를 성당에다 돌리려고 생각했는데, 당일 날 전단지를 안 가지고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얼마 뒤 평화의 마을을 그만 두었습니다. 평화의 마을은 제가 있을 곳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새벽 5시면 일어나 묵주기도 드리고, 까떼나를 바치고(레지오 :천주의 어머니) 하느님께서 응답해 주시길 바라며 청하고 또 청하였습니다.

낮에는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어울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밤에는 성서필사를 하고, 가톨릭 관련 책자들(교부들의 신앙,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등)을 읽었습니다. 이러면서 늘 기도할 적마다 주님께 감사드리며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제게 응답하셨습니다.

몇일 전 장애인 행정 도우미가 된 것입니다. 주님께 찬미 드리며 다른 장애인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세상의 빛과 소금 같은 존재가 되고자 했던 내 계획이 아니 주님의 계획이 실현을 위하여 한 발 전진하게 된 것입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맡게 될런지는 미지수이지만 어떤 일이 주어지던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여 해 낼 것입니다.


서홍동사무실에 다니며 더욱 더 주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여기 근무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과 함께 스쳐지나간게 출퇴근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그것은 괜한 걱정이었고 주님께서는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출근시엔 옆집 삼촌과 같이 출근하게 되었고, 퇴근시엔 동사무소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다 주었습니다. 전에도 항상 내가 어려움이 있을 때면 다른 사람을 내게 보내 주셔서 문제를 다 해결할 수 가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알아서 다 해주실건데 잠시 잊어 버린 것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어떤 어려움이 내 앞에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지만 전부 주님께서 해결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주님의 오른손으로 저를 구하시나이다. 주님께서는 저를 위하여 이루어 주시나이다.

오늘도 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는 성경 말씀처럼,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할 것입니다.

 

 장애인 행정도우미 사업은 올해 처음으로 시행하는 사업입니다.

이 사업이 올해만하고 끝날지 앞으로 계속 이어질지는 지금 장애인 행정도우미 하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고 봅니다. 어찌보면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제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고 여기저기 다른 곳에서 일하는 것이 잘 안되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장애인 행정 도우미 일을 시키시려고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장애인 행정 도우미 일을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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