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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고백 (4)
작성자이용섭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28 조회수1,124 추천수0 반대(0) 신고
방언의 은사를 이해하게 된 사연 1
나의 고백 (4)
 
입력 : 2007년 07월 19일 (목) 03:36:52 [조회수 : 402] 이용섭lys979111@naver.com
 
세례받은 후 여러 해 동안 나는 방언의 은사를 단지 심리적 현상으로만 이해했었으므로 방언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일부러 이상한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착각했었다. 특히 당시 천주교의 영성의 대가라고 일컬어진 예수회 네메셰기 신부가 그러한 주장을 했었으므로 방언이 성령님의 좋으신 '은사'라고 인정되지 않았다. 예컨대, 성령기도회 모임에서 방언을 하는 천주교 신자들과 손을 잡고 기도할 때마다 저들이 왜 저런 미친(?) 짓을 할까 하고 생각하곤 했었다. 이렇게 약 2년을 그들과 함께 보냈다.

나는 1979년 1월에 강박신경증에 걸렸었는데 당시에는 그것에 대한 정확한 병명도 몰랐었다. 그 병에 걸리니 우선 공부를 하기가 어려워졌다. 그 증세가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심해져서 나중에는 공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1978년도에 악령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므로 그것이 악령의 장난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곤 했었다. 나는 1978년 가을 한국 천주교 수원교구 조암리(당시 화성군) 성당에까지 직접 가서 exorcism(구마. 축사)이 현대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난생 처음 내 발로 신경정신과를 찾아갔다. 1978년 8월 서울 명동 성모병원(현 여의도 성모병원)에 가서 어떤 의사에게 악령 때문에 그런 것같다고 하니 그 의사가 악령같은 것은 없다고 해서 그와 타투고 나오고서는 다시 가지 않았다.

그후 1980년 초 내 병의 원인이 악령의 영향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했던 혜화동 가톨릭학생회관 김중호 지도신부(의사)와 함께 그를 잘 아는 서울대 신경정신과 홍강의 교수를 찾아갔다. 거기에서 정밀검사를 받으니 내 병명이 '약한 분열증', '강박증', '우울증'으로 나왔다. 그런데 천주교 신자인 홍강의 교수는 악령의 존재를 부정했었다. 하여간 그가 처방해 준 약을 얼마간 먹었다. 그러나 약을 먹고 너무 힘이 들어서 전화로 홍 교수에게 약을 먹지 못 하겠다고 하니 그러라고 해서 약을 끊었다. 약을 끊으니 당장 그 날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이러다가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커피를 더 타먹는 등 기도하면서 배짱으로 나갔더니 여러 날 후부터 잠이 오기 시작했다. 지금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당시 약 열흘을 고생했던 것같다.

당시 홍강의 교수는 나에게 그 병이 완치가 안되는 병이라 내가 평생 안고 가야만 하는 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 12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한 끝에 결국 하느님의 은총으로 치유된 1990년 12월에서 약 6개월이 지나 홍 교수에게 전화를 하였다. 왜냐하면 재발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통화 중 홍 교수는 그 병이 저절로 나을 수도 있다는 과거와는 모순된 말을 하였다.

당시 나는 나의 병이 현대의학을 통해서 완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기도에 의한 기적 치유를 하느님께 구하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아무리 기도해 보아도 응답은 없었다. 그래서 기도에 관한 책들도 사서 읽어보았다. 그 중 어느 책은 기도의 응답이 없는 이유들 중 하나가 가족의 올바르지 못한 회개라고 해서 나의 노모도 성령세미나를 받게끔 했다. 하지만 그것은 반강제적(半强制的)이었다. 1980년 가을부터 나의 노모는 서울 삼양동 성당에서 열리는 성령세미나에 처음으로 나가게 되었다. 약 50일 후 노모는 삼양동 성당에서 천주교 신자들로부터 안수 기도를 받고 나서 어이가 없게도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방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후 집에서 노모가 혼자 방언을 하는 것을 보게 될 때마다 노모에게 짜증도 많이 내었고 화도 많이 내었었다. 왜 쓸데없이 일부러 이상한 소리를 만들어 내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거의 노모의 이상한 소리는 더 커졌고 더 길어졌다.
(계속)
   
 
  ▲ 방언의 은사를 이해하게 된 사연/ 이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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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54년 부산 생, 프리랜서, 전 월간 <시사정경> 객원기자,
전 월간<월드 코리아> 객원기자(차장대우), 전 월간<선택> 객원기자(차장),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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