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소통의 아름다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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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봉순 | 작성일2009-08-24 | 조회수1,009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보좌신부님이 처음 부임해오시던 날 놀라지 않은 교우는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훌쩍 큰 키에 마른체구, 어깨에 닿을 것 같은 긴 머리를 하고 제대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신부님 자신도 그 시선이 맘에 걸렸는지 철이 좀 들면 머리를 자를 것이라고, 부임 첫 인사에서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일 년이 훨씬 더 지났는데도 신부님은 아직도 그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미사를 집전하고 계십니다. 이제 연세든 어른들도 ‘저 신부님 아직 철이 덜 났나보다’ 하고 이해를 해주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청년 사목에, 주일학교에 열정을 쏟으며 동분서주하신 신부님을 대견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도 위트 넘치는 신부님의 앵벌이 역할 때문에 주일학교를 위한 2차 헌금이 무려 칠백만원에 육박한 거금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그 긴 머리가 어른들의 동정심을 끌어내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신부님은 적어도 주임신부님이 되기 전까지는 철이 안 나는 게 교회를 위해서는 훨씬 바람직한 일일 것 같습니다. 지난주일 마침 이 신부님이 집전하시는 미사에 참례를 했습니다. 언제나 미사 시작 전에 드리는 사제의 기도에 난데없이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의자위에 신부님을 앉혀놓고 댕기머리를 땋아주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는 내 상상으로 그려낸 한 장의 그림입니다. 그러나 이번 주는 댕기머리 동자가 되어 제대 위를 오르내리던 보좌 신부님이 자주 어른거려 많이 즐거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보좌 신부님의 긴 머리에서도 발견 한 것입니다. 나이를 잘 먹어 간다는 것은 예수님의 눈으로 젊은이들을 바라봐 주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성모 어머니의 눈으로 그냥 바라봐 주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면 우리 본당의 어르신들처럼 긴 머리의 보좌 신부님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어린이를 위한 특별헌금 바구니에 아껴두었던 쌈지 돈도 푸른 돈으로 미련 없이 넣게 됩니다. 소통은 상대방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고 이해하는데서 이렇게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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