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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큰 딸의 사춘기 때에 찾아오신 성령님
작성자김형기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25 조회수1,671 추천수7 반대(0) 신고

“마리아께서 잃으셨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심을 묵상합시다.
어지신 어머니 마리아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신 신비를 묵상하며 정성되이 이 기도를 바칩니다. 어린 예수님을 잃으신 어머니께서는 슬픔에 잠겨 사흘이나 찾아 헤메시다가 마침내 성전에서 학자들과 토론하고 계신 예수님을 찾으시고 기쁨에 넘치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원하시자 예수님께서는 순명하여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묵주의 9일기도에서 환희의 신비 5단의 묵상 말씀이다.

예수님의 탄생 이후 어린시절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여러 해를 건너 뛰어 열 두 살 되던 해에 부모님의 속을 태운 이야기가 나온다. 열 두 살이라는 나이는 아이가 자아를 깨닫고 어른이 되는 분기점인가 보다. 요즈음에는 아이들이 중학교(미국은 7학년)에 입학하고 사춘기에 들어서는 나이이다.

우리 큰 딸이 갑자기 달라진 것도 바로 열두 살 때, 7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그전에도 자기 의사를 비교적 정확하게 밝히는 편이었지만 부모의 말을 거역하지는 않고 잘 따르는 편이었다. 7학년이 되자 자기 주장이 강해지고, 눈에 거슬리는 말투를 쓰고,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이 확 달라지기 시작했다. 부모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해서 거부하기 보다는 무조건 반발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야단도 쳐보고 달래도 보았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나의 얼굴만 쳐다보아도 화가나는 것 같아 보였고, 강한 어조로 조목조목 따져가며 나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도 잦아졌다. 식탁에 앉으면 부녀간에 서로 언쟁을 벌이고 아내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할 지 당황스러워 하곤 했다. 집안 분위기는 날이 갈수록 싸늘해지고 가장의 권위도 떨어지는 것 같아서 언짢았다. 공부도 게을리하고 늘 소설책만 붙들고 있어서 야단을 쳐도 소용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어느 신부님과 상의를 했더니 아이는 미국식으로, 어른은 한국식으로 생각하는 데 문제가 있으니 미국식 한국식 다 잊고 하느님식으로 생각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아무리 그 말씀을 곱씨ㅂ어 보아도 무슨 귀신 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아리송하기만 했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 상의를 해도, 그 나이일 때는 다 그러니 기다려보라고 하시는데, 남의 일이라고 너무 무책임한 조언을 한다는 생각에 섭섭하기도 했다. 그렇게 2년 가까이 부모 자식간의 갈등이 깊어만 갔다.

8학년을 마치고 여름방학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성당에서 성령세미나가 열렸다. 한국에서 지도 신부님과 봉사자들을 여러분 모시고 왔는데 성당 교우들이 많이 참석했다. 우리 부부는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구역장님의 권유도 있었고 구역원들 대부분이 참석하는 분위기에 휩싸여서 별다른 기대없이 참여했다.세미나가 하루 이틀 지나자 마음의 평화가 오기 시작했다. 살아오면서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 그리고 나를 미워했던 사람들과 기도 중에 화해를 나누려고 했다. 아내는 딸들에게 매일 성령세미나를 통해서 받은 은혜를 설명하고 네 살에 어머니를 잃은 이후의 어려웠던 삶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러자 큰딸에서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오랫동안 거의 하지 않고 지내던 묵주 기도를 동생과 함께  시작한 것이다. 아침이나, 낮이나 밤이나 묵주를 들고있는 모습을 보고는, “며칠 저러다 말겠지.”했는데 여름 방학 내내 계속되었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간 캠핑장에서 어느날 밤늦게까지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가 텐트에 들어가보니 세상에나, 그때까지 동생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지 않은가. 프래쉬로 묵주를 비춰가면서 말이다. 정말 성령께서는 놀라운 방식으로 우리 가족에게 찾아오셨고 나는 거의 2년만에 딸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여름방학이 거의 끝날 무렵, 고등학교 진학 직전에 큰딸은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전체 1등을 하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해드리겠노라고 약속했다. 고등학교(미국은 9학년~12학년 과정)에 입학하자 마자 밤잠을 자지 않고 공부에 매달리더니 학년 전체에서 1등을 하였다. 그리고 몇년 후에는 명문 대학에 입학하여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해드리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큰딸이 대학교 합격통지서를 받던 날 미국 생활에서 겪은 어려웠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가며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렀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딸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초보 아빠가 잘못 대처했던 점이 있었던 같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그 신부님께서 “자식은 하느님 식으로 길러야 한다.” 고 하신 말씀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한 없이 사랑하시고,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것처럼 자식들에게도 그리 하라는 말씀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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