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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교육 강연후 받은 소감문-연인사이 진도에는 후진이란 없다.
작성자이광호 쪽지 캡슐 작성일2011-01-07 조회수1,222 추천수2 반대(0) 신고

 

    요즘 세대들의 첫 경험은 평균적으로 20살 전후라고 하는데, 사실 내 주위엔 경험이 있는 친구들은 나 포함해 거의 없었다. 하지만 20살 넘어서부터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면 생각해 볼 상황이란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동성친구들을 만났을 때, 직접적인 이야기는 없었지만 확실하게 고등학교 때보다 스킨십의 진도나 정도가 10대 때와 달라진 건 사실이었다.

   꼭 내가 겪은 일이 아니더라도 친구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 또래가 어떻게 남자를 만나고 연애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한 경험들이나 TV에서 보이는 20대 커플들의 모습은 성관계를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아마 나도 모르게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두고 사귄 것 같다. 여기에는 결혼이나 미래에 대한 생각보다 그냥 그 순간의 느낌이나 호기심, 나도 경험해 보고 싶다는 충동이 강해서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 1년 가까이 남자친구와 잠자리를 같이하면서 내가 특히 좋거나, 하고 싶다거나 그러한 만족을 느끼지는 않았다. TV에서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나 느낌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태를 유지했던 것은 아마, 처음과는 서로의 관계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은 나도 남자 친구와 좀 더 가까워지고 애정도 깊어진 것 같아서 좋았지만, 솔직하게 성관계 자체가 좋은 것도 아니고, 모텔에 들어가고 나오면서 눈치 보고 모텔 안에서도 혹시 몰래 카메라라도 있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보내는데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을 리가 없다. 분명히 중간에 이런 관계를 그만두고 싶단 생각을 했지만 말을 쉽게 꺼내기도 거부하기도 어려웠다.

 

   생각해보면 연인 사이에 진도는 후진이란 있을 수 없다. 키스한 사이라면 손만 잡는 사이로 갈 수 없고, 잠자리를 가졌다면 키스로 끝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성관계를 원하는 건 대게 남자 쪽이므로 더더욱 진도가 후퇴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더 거절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여자 입장에서 볼 때, 이 같은 고민을 이해해줄 남자는 극히 드물뿐더러 사실 그때까지도 나는 남자 친구가 좋았고, 오직 성관계만 싫었을 뿐이라서 ‘혹시 내가 싫다하면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실망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1년간 이 상태를 지속해 온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어느 날 모텔에 가자는 것을 마음 먹고 거절한 적이 있었는데, 역시나 왜 갑자기 그러냐며 싸우게 됐고 그 상황에서 아무리 내 입장을 설명하고 설득시켜봤자 소용 없었다. 이런 식의 싸움이 여러 번이었기 때문에 어리석어 보이는 일도 연인 사이라면 중요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나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이 있다면, 앞서 말했다시피 이미 관계를 돌리는 것은 어려우니 헤어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나 아직 성관계를 갖기 전이거나, 초기 상태인데 거절할 마음을 갖고 있다면 끝까지 밀어붙여서 싫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첫 경험은 상상과는 많이 달랐고, 좋았다기보다 뭔가 뒤죽박죽이었다. 내가 인식하고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조금 실망스럽고 불쾌한 그런 복잡한 기분이었다. 잠깐 그 친구 집에 볼일이 있어 갔지만 전혀 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집에 아무도 없고 방이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다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갔는데, 난 그 상황이 너무 당황스럽고 무서워서 몇 번이고 거부했지만 결국 그게 첫 경험이 됐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첫 경험은 생각해온 것과는 다르다. 우리가 갖고 있던 생각과 상상은 매체를 통해 만들어져 십 수 년간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던 것인데, 그만큼 로맨틱하지도, 아름답지도, 부드럽지도 않다. 당시 질외사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무섭고 불안해서 결국 사후 피임약을 먹게 됐는데, 약을 먹은 후 밤새 구토와 열로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이틀을 거의 쓰러지다시피 하고 그 약을 다신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너무 어리석게도 ‘관계를 가지지 않겠다’라는 생각과는 연관시키지 못했다.

 

   남자친구는 내가 아팠던 것을 의식해서 인지 3주 정도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나 그 후로 이런 일은 잊어버리고, 언제부턴가 성관계가 계속적이고 당연하게 되었다. 처음에도 말했다시피 진도에는 후진이 없다. 그 후로는 거의 주기적으로 성관계를 가졌고 만약 그렇지 않은 날엔 한 눈에 남자 친구가 아쉬워하는 것이 보였다.

 

   장소는 대부분 모텔이었다. 솔직히 20대 연인들이 놀 수 있는 곳은 굉장히 제한적이며 장소 자체도 폐쇄적이다. 잘 생각해보면 이러한 장소도 우리 세대의 문화와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만큼 소비층이 밀폐된 장소이나 개인적인 공간을 선호한다는 것인데, 이는 대중문화가 영화나 노랫말 속에서 남녀관계만을 집중 조명하고 연인과 같이 있는 모습을 많이 노출시킨 결과라 생각한다. 당연히 연인끼리는 둘만의 공간을 선호하는데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여 젊은 사람들을 이런 곳으로 더 몰아가는 형태가 되었다.

 

   처음엔 나도 남자친구와 둘만 있는 것이 좋아 잘 다녔지만, 어느 순간부터 회의를 느꼈다. 예전엔 청계천이나, 놀이동산, 대학로 등 사람 많고 구경하며 재밌게 놀 수 있는 곳을 많이 다니던 것에 비해, 모텔 아니면 밀폐된 카페나 전전하게 된 것이 싫었다. 남자 친구가 곧 잘 핑계 대던 ‘단지 움직이기 귀찮아서’나 ‘힘들어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잘 생각해보면 절대 내 남자친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에 대해 불만이 많아 주변의 친구들이나 경험담들을 들어보면 십중팔구 행동 변화가 비슷했다.

 

   자꾸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다 남자친구에게 솔직하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대답은 어디 갈 시간도 없고, 자긴 모텔 가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이었다. 이것도 대부분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편하다는게 말에 따라 다르겠지만 들어가고 나오는 그 순간만 눈치 보면, 안에서는 편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며, 좋지도 않은데 성관계를 갖는 것에 대해 지치기 시작했다. 분명 남자 친구는 사랑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그 사이 몇 번이고 거절과 설명을 반복하고, 그 문제로 많이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친구는 잘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교수님 강의를 듣고 많이 생각한 후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며 의식이 바뀐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교수님의 강의들 들은 후 느낀 점과 다짐, 경험 등을 적어 소감문을 제출했고 후에 교수님께서 ‘정결의 약속’이란 글을 보내주셨다. 처음 내 결심과는 달리 제목부터 글 읽는 내내 부담스럽고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써내는 친구들이 많다는 얘길 들었을 때 ‘내가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글에 서명을 한다고 해도 그 때 뿐이고 다시 어떤 상황이나 분위기가 되면 또 쉽게 휩쓸려 버릴 것 같아서,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 글이 마음에 걸려 불편할까봐 괜히 쓰기 싫어지는 것은 아닐까. 앞에 쓴 것처럼 이러한 관계가 좋지 않을뿐더러 너무나 위험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선 미래의 내 행동은 염두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러나 이젠 강의를 통해서가 아닌 내가 마음먹은 것이 있기 때문에 지금 이글을 통해 스스로 다짐할 수 있다.

 

   사실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기독교인이며 모태신앙이다. 배우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부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배웠으며, 가정 교육 또한 엄하게 받은 터라 나도 모르는 선한 가치들을 몸에 익히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의 내 행동이 보수적이었고 불안해했던 것, 결국 이러한 상태에 계속적으로 회의를 느끼고 그만 두겠다 결심하게 된 것도 다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뭐이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생각해보면, 오히려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 일 년 동안 기도도 제대로 못할 만큼 불안하고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험으로 볼 때,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한 가치는 요조숙녀를 바라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일종의 양심 같은 것이다. 교회에 다니면서 배워왔던 것, 부모님으로 인해 익혀왔던 그것이 내 행동을 힘들게 했고 계속해서 의식하고 후회하게 만들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이러한 상태를 그만 둘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선한 가치를 쌓으면 몸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 힘들어지고, 스스로 성찰할 기회를 만든다.

 

   그 결과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임신과 낙태의 지름길로 갈 위험성이 더 줄어든다. 난 이제라도 교수님 강의를 들을 수 있던 것이 행운이고 다행이며, 낭떠러지로 가는 길에 큰 브레이크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질외사정하면 임신이 안 된다고 알고 있고, 처음부터 콘돔을 사용하는 경우보다 사정할 때 임박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제대로 콘돔을 사용하고도 임신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100%피임이란 없다. 운이 나쁘면 임신이 아니라 운이 좋아서 피임되는 것이다. 다들 그 적은 확률에 몸을 맡기며 살아간다.

 

   그러다 조금이라고 생리주기가 달라지면 밤새 잠도 못자고 불안해하면서 다신 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가도, 생리하면 다 잊어버리고 다행이다 좋아하며 그 생활을 지속하는 것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나는 이런 바보 같은 짓을 그만두기로 작정했고 좀 더 내 몸을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것을 강의를 통해 느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누구든지 단 한번이라도 이 문제에 대해 더 생각해 봤으면 한다. 성에 대해 관대하고 무방비 상태의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지, 미래를 뒤엎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기로에 서있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아무리 익명이라도 매우 개인적인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강의는 내가 행동하고 결정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자극을 주었고, 이 글을 읽을 사람이 내 친구이고 아는 언니, 동생일 수 있기 때문에 써야했다.

 

   내가 느낀 것만큼 이 강의를 듣고, 이글을 읽는 사람들도 대중문화가 본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로인해 어떤 결과가 나타날 지를 인식했으면 한다. 또래 젊은 여성들과 10대 청소년에게 일어나는 임신이 생각만큼 드물지도 않고, 그리 개인적인일도 아니다. 또한 내가 문화에 얼마큼의 영향을 받는지도 모를 만큼 우리는 푹 빠져 살고 있다. 아무런 의심 없는 수용은 임신과 낙태라는 더 큰 위험을 낳을 수 있다. 옳고 그름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도박 같은 확률에 내 몸을 던지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강의를 통해 자신이 알게 된 점이나 그로인해 느낀 점, 변하겠단 결심을 직접 써보라고 권하고 싶다. 처음엔 강의에 감동 받아 쉽게 써질 수 있겠지만, 며칠 뒤 글을 쓰는 것이 생각을 정리하고 진정으로 마음을 다잡는데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머리로는 알아도 실천하는 것이 더 어렵다. 진심이 담긴 글을 쓰는 것을 실천의 밑거름으로 생각한다면 훨씬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고 다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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