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인생의 종착역
작성자이봉순 쪽지 캡슐 작성일2011-02-07 조회수1,833 추천수7 반대(0) 신고

 

 자정이 훨씬 지났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새벽에 읽는 '굿 뉴스'의 '오늘의 복음'을 미리 읽고 묵상하고 나니 배가 출출하다. 이른 저녁식사를 한지라 배고픔을 더는 참을 수가 없다. 몇 번 참자 참자하며 결심을 하다 기어이 본능의 욕구에 지고 말았다.

  '그래 오늘은 밤을 낮이라 생각하자.' 하고 냉장고 문을 열고 양송이와 블로컬리를 꺼냈다. 치즈와 생크림으로 까르보나라를 만들어 먹을 참이다. 이럴 때 옆집에 친구가 살았더라면, 나는 그 시간에도 그녀를 깨웠을 것이다. 눈을 비비면서도 기꺼이 와줄 그런 친구다. 밤새 이야기꽃을 피워줄 친구다. 생크림의 감칠맛과 양송이의 향긋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순간, 형용키 어려운 서글픔이 울컥 치민다.

  “그래 신앙만이 살 길이다. 험한 세상 혼자 버틸 수 있는 힘은 신앙뿐이다.” 무심코 흘린 독백이 정적을 깨고 포말을 이룬다. 그리움이 산고를 치루며 신음하는 소리다. 그러나 기쁨도 내재되어 있는 고독의 울림이다.

  이 년 전 허리 수술 후, 회복이 늦은데다 복합적으로 발병한 몇 가지 병이 나를 무던히도 괴롭힌다. 약, 침, 물리치료, 운동요법도 별 효과가 없다, 치료할 그 때만 반짝하다 다시 제 자리 걸음이다. 투병 중에 잘 걸린다는 우울증을 막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가끔 불면증으로 밤을 새우는 이런 날이면 은근히 두려워지기도 한다. 이 때 때를 놓치지 않고 붙잡고 늘어지는 대상이 하느님인 것이다.

 육체의 한계를 받아드리고 나면, 인간의 생로병사, 희로애락도 모두가 스치는 바람 일뿐, 유일하게 우리에게 남은 건 내가 외면한 그 시간에도 심연에 자리 잡고 계신 주님뿐이시다. 불행이나 슬픔, 그 어떤 역경도 영원한 생명으로 승화 시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끄시는 주님 한 분뿐인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인생이라는 기차를 타고 다다를 종착역은 하느님인 것이다.

  그래도 때로 사람이 보고 싶고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는 없는 일, 강원도 산골 마을에 부임해 있던 신부님께서 성당에 골프 연습장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신부님이라 전화를 걸어 시골성당에 어울리지 않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몇 년 후 암으로, 오십대 초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돌아가시고 난 후 가끔 가슴 시리게 그분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런데 요즘은 왜 그 말씀이 뼈 속까지 자꾸 스며드는지, 이제야 그분의 심정을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기도 할 때는 내가 살아갈 힘을 오직 주님뿐이라고 고백해놓고, 돌아서면 왜 또 사람을 그리워하며 살아갈 힘을 사람에게서 찾는지, 그 이유는 임마뉴엘, 누구에게나 함께 계신 하느님을 움직이는 그들에게서 느끼고 싶어서일 것이다. 사람은 그렇게 나약한 존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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