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작성자이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17 조회수3,727 추천수11 반대(0) 신고

병원 근무를 끝내기 며칠 전이었다.

심장 수술을 하게 된 환자가 있었다.

그는 선천적 심장기형을 가진 젊은 남자였다.

심각한 수술이었기에 긴장하는 의료진의 기색을 눈치라도 챈 듯

그는 불안에 떨며 어쩔 줄 몰라했다.

수술장 동료는 어떤 상태인지 묻는 나를 향해

이마에 갈매기를 그려보여주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어려울 거라는 표시였다.

회복실에서 수술 준비를 위해 주사며 관장 등을 하고 있는데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무언가 반짝했다.

팔찌 묵주였다.

"수술실에는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 거 알죠?"

그러자 그가 마지못해 내게 묵주를 맡기며 말했다.

"혹시 제가 살아나오거든 꼭 다시 돌려주세요."

나는 그의 묵주를 손에 걸고 성호를 그으며 말했다.

"저도 교우예요. 살아 나오실 때까지 묵주기도 드리고 있을게요." 

갑자기 그의 표정이 그럴 수 없을만큼 밝아졌다.

"다행이예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의 카트가 수술실로 들어가고 문이 닫힐 때,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를 향해 묵주를 들어보여 주었다. 그가 다시 환하게 웃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이어지는 수술환자 준비며, 수술 끝나고 나오는 환자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한

회복실에서 묵주기도를 드린다는 건, 정말 처절한 일이었다.

당시에는 관장부터 굵은 주사바늘 꽂는 일,수술부위 면도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고통의 신비 2단을 외우느라, 15분 만에 화장실에 보내야 할 환자를

챙기지 못해 고통중에 울게 만들었고,

영광의 신비에서는, 오른 쪽 다리를 면도해야 하는 환자의 중요부위를 면도하는 바람에 영광(?)의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기가 막힌 사실은, 심장수술 환자의 수술시간이

8시간이나 걸렸다는 사실이다!!

나는 퇴근도 미뤄야 했다.

마취가 덜 풀린 그가 회복실로 실려나왔을 때

나는 거의 미칠 지경이 되어 신경이 날카로워질대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러나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그때 내 눈에 고인 눈물이 안도의 눈물이었는지 분노의 눈물이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두 번 다시 심장수술 환자의 묵주는 받지 않기로 결심했던가..

마취에서 깨느라 기침을 해대는그의 손목에 묵주를 걸어줬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다.

 

며칠이 지나 병원 근무를 완전히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는데

누군가 찾아왔단다. 그 때 그 심장수술 환자였다.

수술 후유증으로 왼 쪽 팔을 제대로 못 쓰던 그가 공 두 개를 들고 간호사실의

나를 찾고 있었다. 마비 환자들이 들고 주물럭거리며 운동하는 공이었다.

나를 보자마자 그는 다짜고짜 공던지기를 하기 시작했다.

복도의 환자들이며 방문객들이 환자복을 입은 채 공 던지기를 하는 그를

웬 미친 사람인가 하는 눈빛으로 보며 지나쳤다.

마비가 덜 풀린 왼 팔 때문에 위태롭긴 했지만

그는 대여섯 번의 공던지기를 간신히, 그러나 무사히 마쳤다.

나는 또 바보처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축하한다며 악수를 하는 내게 그가 말했다.

"수술 중에 성모님을 봤어요. 정말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나 봐요.

고맙다는 인사를 뭐로 할까 하다가 많이 나은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악전고투하던 회복실의 그 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대변을 참느라 고생했던 그 사람과,

아직도 중요부위가 휑할 그 어떤 분께 감사드리라고 하고 싶은 걸 참으며 웃었다.

"제가 기도드린 게 아니라

성모님께서 기도드리셨나 봐요'"

그를 뒤로 하고 병원을 나오면서

아마도

앞으로 누군가 또 내게 묵주를 맡기며 기도를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하리란 걸 깨달았다.

성모님,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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