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열차가 도착합니다.
작성자정은정 쪽지 캡슐 작성일1998-10-02 조회수5,884 추천수5 반대(0) 신고

곧 열차가 도착합니다. 결단을 내리십시오.

 

 가장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교통수단의 으뜸은 지하철일 것입니다. 저는 땅속에 들어간다는 느낌이 너무 답답해서 웬만하면 버스를 타고 다니지만, 명동으로 출근을 하면서 자주 이용하게 됐습니다. 요즘의 전철역 풍광은 아무리 경제가 엉망이라고 해도 역시 명절 분위기가 곳곳에서 나더군요. 큰 선물 보따리는 아니지만 행인들의 손에는 정성스럽게 포장되어있는 선물꾸러미가 들려 있구요. 오늘 출근 지하철의 풍경은 그랬습니다.

 오늘 환승역에서 전철을 갈아 타려고 계단을 오르려는데 역구내 알림 방송 소리가 들렸습니다. 전철이 지척으로 다가왔는지 그 굉음과 더불어서 나긋나긋한 한 여성의 목소리. "전동차가 곧 도착합니다. 손님 여러분께서는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 주십시오." 이 안내 방송이 나오자 마자 많은 사람들은 헉헉거리며 계단을 뛰어 오르기 시작하고 몇몇은 포기 한 듯 (아니면 여유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요.) 천천히 계단을 오르더군요. 이런 경은 너무나 일상적이고 누구나 경험한 일이지만 오늘 저에게는 예사롭지 않은 풍경이었습니다.

 득달같이 뛰어서 저 전동차를 탈 것인가, 아니면 천천히 올라가서 다음 전동차를 탈 것인가라는 짧은 고민을 하면서, 문득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많은 일상적인 결단들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면서, 텔레비젼 채널을 옮기면서, 그리고 대학 입시때 학교와 학과를 고르면서, 이렇게 크고 작은 결단의 요구속에서 살아 가는 것이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일상적인 삶도 결단의 연속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우리들에게 하느님은 늘 결단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그 요구는 결코 무리한 요구도 아니며 사람에게 어려움을 주려는 요구는 아닙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세상의 일을 신앙과 복음의 눈으로 결단하기를 바라시며 그 결단 자체가 사람에게 평화와 자유를 주는 결단일 것입니다. 신앙인이라고 자처하는 저에게 주님은 오늘 어떤 결단을 요구하고 계시는지 조용히 묵상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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