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28주] 말씀의 초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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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굿뉴스 | 작성일1998-10-10 | 조회수6,576 | 추천수1 | 반대(0) |
[매일미사에서]
"몸이 깨끗해진 사람은 열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다른 아홉은 어디 갔느냐?" 감사하기 위해 돌아온 한 사람의 나병 환자에게 하신 예수님의 질문에서 우리는 큰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지난 주일에 우리가 들었던 종의 겸손에 관한 비유에 이어서 즉시 나오는 오늘 나병 환자의 치유 이야기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내리시는 선물을 어떻게 올바로 받아야 하는지를 배운다. 예수님께서는 죽음과 부활로 향해 가시는 길에서 나병 환자를 만나신다. 나병 환자는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개인적으로도 다른 사람을 피해 가야만 했다. 가난한 이들이 계약의 하느님께 자비를 간절히 바라듯이 나병 환자들은 구세주라고 생각한 그분께 자신들의 불행한 처지를 외쳐 댄다.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들의 이 우연한 치유를 공식적으로 확인해 줄 사람들에게 그들을 보내신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신다. 사실 그 순간까지 그 열 명의 나병 환자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 말씀에 복종하여 길을 가다가 건강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치유되었을 때 매우 기뻐했을 뿐, 그들을 낫게 하신 분을 잊어버리고 그물에 걸렸다가 바다에 다시 던져진 물고기들처럼 흩어졌다.
단 한 사람만이 그렇지 않았다. 그는 이방인으로 여겨지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치유되었다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에 감사하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 다른 아홉 사람에게는 사제에게 가서 깨끗해진 자신들의 몸을 보이는 것만이 중요했다. 나아만은 시리아의 장군이다. 시리아와 이스라엘은 항상 긴장 관계에 있었다. 시리아의 의사와 기적쟁이들은 나병에 걸린 나아만을 고치지 못했다. 이스라엘에서 잡아 온 어린 하녀가 나아만에게 히브리의 예언자에게 그의 몸을 보이도록 제안했다. 그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적에게 몸을 맡긴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에게 단지 요르단 강 물에 몸을 씻기만 하라고 했다. 이것은 참으로 믿는 사람임을 확인하는 것으로는 가치 없는 일로 여겨졌다. 영웅적인 행동이나 커다란 제사를 요구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커다란 값을 치르는 희생을 요구하지는 않으신다(제1독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말씀은 바오로 사도를 감옥에 갇히게 했고 그 힘을 의심하게 했다. 그러나 반대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메시지는"좋은 말씀"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제나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는 말은 좋은 말일 수 없다. 말씀 때문에 감옥에 갇힌다고 해도 말씀이 감옥에 갇히는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에 생명을 바치셨기에 우리가 살고, 그분께서 진리를 위한 싸움에서 승리하셨기에 우리도 참으며, 그분의 꺾이지 않는 충실로 우리의 약함이 극복되었기에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제2독서).
예수님께 치유 받은 나병 환자 아홉 명은 그들의 치유를 확인 받기 위해 율법 규정을 따르는 데에만 골똘해 있었다. 감사하기보다는 율법에 복종하는 것에 더 신경을 썼다. 그들과 달리 한 사람은 율법을 따르지 않고 감사하는 자유를 찾았다. 믿음은 하느님 선물에 대한 감사에서 나오고 끊임없는 감사 안에서 표현된다(복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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