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회수권 두 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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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은정 | 작성일1998-11-24 | 조회수6,718 | 추천수11 | 반대(0) 신고 |
회수권 두 장.
지금도 봉헌 시간이 되면 쭈볏쭈볏해지는 저를 발견합니다. 오 늘 과부의 헌금에 대한 비유로 예수님은 과부의 헌신적인 봉헌에 대한 칭찬을 하십니다. 물론 이 말씀은 너무나 상식적인 비유입 니다. 그러나 지금도 이 말씀이 가슴에 와 닿은 것은 아마도 우 리가 복음의 상식에 맞춰서 살지 못하기 때문일 테죠.
가격보다는 정성. 이런 말을 들을 때, 정말 그렇지라고 가슴속에서 말하는 시절인 지를 생각합니다. 아마 그렇다면 뇌물수수나 거액의 비자금등, 이 런 악(惡)은 없어지겠죠. 그리고 상품권만 던져주는 요즘의 선물 문화가 걱정될 때가 있습니다.
오늘 과부의 헌금이야기를 읽고 나니, 한 친구가 생각납니다. 예 전에 주일학교에서 말이 없던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 느 날 저녁미사를 가서 그 친구와 함께 앉게 되었는데 봉헌시간 이 다가 올 때, 제가 돈을 한 푼도 들고 오지 않았음을 깨달았습 니다. 지금처럼 철판(?)인 시절도 아니고 너무 당혹해 하는 저를 보고, 그 친구가 눈치를 챘는지 조용히 지갑들 열더군요. 그리고 제게 건넨 것은 '회수권 두 장' 이었습니다. 그걸 받아 든 저는 더 당황할 수 밖에 없었죠. 일단 어떻게 이걸 봉헌으로 낼까하는 민망함이었고, 그 친구의 스스럼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태어나서 첨으로 봉헌금을 회수권 두장으로 대신하 게 되었죠.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주일학교도 졸업파티를 할 때, 전 그 친구에게 물었죠. 왜 그때 내게 회수권을 주었느냐고요. 그러자 그 친구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 날 자기는 지갑에 자기가 낼 봉헌 금밖에 없었고, 있는 거라고는 집에 가는 회수권이 전부였다고, 그래서 그 날은 경기도 집까지 걸어 갔다고 하더군요. 그 사실을 3년이나 지나서 말한 그 친구의 묵직함에 놀랐고 그 마음이 하도 아름다워 눈물이 핑 돌더군요.
그 친구의 봉헌은 예수님 뿐만 아니라, 저의 가슴에도 다가오는 아름다운 봉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는 당황하는 그 누군가에게 토큰 두 개를 봉헌금으로 주고, 집으로 걸어 갈 자신이 있는지 걱정됩니다.
11월 23일 묵상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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