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앗! 마술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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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은정 | 작성일1998-12-04 | 조회수6,289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앗! 마술이다.
여름 농활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제가 맡게 된 직책은 '생활반장'이었는데, 열 흘 동안 먹을 양식을 조절하는 담당이죠. 말이 좋아서 반장이지, 못된 시어머니처럼 식사 당번에게 쌀의 양을 정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쌀을 남겨서 마을잔치때 쓸 떡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쌀의 전체 양을 파악하고 조절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탓에 후배들이 쌀을 맘대로(?) 퍼서 밥을 하는 바람에 밥이 너무 부족해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30여명의 식구들이 먹어야 하는데, 그 날 밥의 양은 채 20명의 밥도 안될 것 같았습니다. 다시 밥을 하기에는 늦었고,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밥을 먹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밥을 퍼 담다보니 10개정도의 빈 그릇이 생겼는데, 자신의 밥그릇에서 모두들 조금씩 밥을 덜어 나머지 빈그릇을 채웠습니다. 물론 양껏 먹지는 못 했지만, 그 때의 한 후배의 말이 생각납니다. "앗! 이거 꼭 마술 같아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을 만들어 내십니다. 저는 그 기적이 예수님이 마법처럼 부린 기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사흘동안 굶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식사를 하자는 제안을 기꺼이 받아 들였을 것입니다. 개중에는 굶고 있는 이웃이 맘에 걸려 주머니에 숨겨 놓은 빵을 먹지 못하다가 꺼낸 사람도 있겠고, 또 누구는 물고기 한 마리를 내 놓았겠지요. 있으면 있는데로, 없으면 없는데로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내어 서로 나누어 먹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기적은 적은 빵과 몇마리의 물고기를 부풀려 놓은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눔'이라는 결단과 행동을 불러 일으키게 하신 것이 아닐런지요. 배부르게 먹고 안먹고의 문제를 떠나, 스스로 만들어 낸 그 기적행위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준 마술이었을 겁니다. 눈속임의 마술이 아니라, 서로가 기쁜, 진정한 마술이 바로 '나눔'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오늘 배고픈 기쁨을 만들어 내는 '나눔의 마술사' 가 되어 보려 합니다.
12월 2일, 게으른 묵상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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