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유혹은 달콤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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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영미 | 작성일1998-12-16 | 조회수5,118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아프면서 느꼈던 아프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유혹에 대한 총체적 묵상의 답입니다. 모든 유혹은 타당한 논리 구조와 내용과 색깔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 느꼈던 이것은 옳지 않은 일 이라는 감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 유혹은 설득력 있게 접근해 오고 내 안에 그것에 대한 호기심 혹은 의혹이 있었다면 상상까지 감미해서 유혹은 다가온다. 하와에게 다가왔던 뱀의 유혹은 그녀를 걱정해 주는 것처럼 시작 되었고 맘 써 주는 것처럼 보였고 하와는 자기 생각까지 덧붙여져 결국에 유혹에 넘어간다. 유혹은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느끼게 한다. 제비족에 참회록에 보면 그의 범행 대상 주부들은 외로움을 느끼고 있고 그 외로움을 들어주는 자세만 보이면은 쉅게 맘을 열어 놓는다고 털어 놓았다. 유혹은 아울러 신선한 긴장감을 선사해 준다. 유혹을 이겼을 때 그 뿌듯한 짜릿한 맛! 그리고 넘어가는 동안에 그 재미 있는 맛! 사탄은 자신이 유혹으로 낼 수 있는 효과를 충분히 알 수 있었기애 얼마나 기막힌 시간감각으로 예수님을 비롯해 사람들을 유혹하는지 모른다.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면서 찾아오는 유혹 겟세마니의 그 처절한 밤에 유혹 성탄의 밤에 예수님을 안기 전 까지 요셉이 느꼈을 도망가고 싶었을 유혹 마리아는 원죄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에 기초적인 일로 유혹을 받지 않았을 것이나 요셉에게는 하느님이 요구한 것이 평범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견디기 힘든 요구 였을 것이고 사탄은 얼마큼 대상자를 잘 분석해 유혹을 해 왔었을까? 하느님과 사탄은 기초조사를 철저히 한다 유혹을 당하지 않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조차 당하셨고 힘겹게 견디어 냈는데 하물며 피와 살로만 된 육적인 나 같은 사람들이야! 하느님은 견디지 못 할 유혹은 주시지 않는다는 바울 말씀도 있지만 유혹은 당하지 않았을 때보다는 당하면서 넘어간 뒤 행동이 더 중요하지 않는가 묵상해 본다. 사람은 약하다 그리고 사람이 피치 못해 한 행동들도 많다. 내가 선의 였던 만큼 상대방도 선의 였고 그 누구의 잘못으로 돌릴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벌어지고 있다. 단순히 흑백으로 나눌 수 없는 일들이 말이다. 그럴 때의 진짜 지금까지의 최선보다 더한 최선으로 할 것이 있다. 인정하는 것이다. 다윗이 우리야를 간통한 것을 숨기기 위해 죽였던 것을 나단이 지적 했을 떄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죄를 지었음을 인정하고 벌을 달게 받았듯이 자신이 유혹을 당했고 그 유혹에 진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죄를 짓은 것을 합리화 하지도 누구를 탓하는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인정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결과를 책임지겠다는 자세 우리 사회는 누구를 비판하고 회피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비평을 하거나 뭔가 해야지 건설적으로 말하는 이들은 많아도 자신이 한 일이든 벌어진 일이든 책임을 지거나 인정하는 이들을 보지 못하고 있다. 나 하나쯤 이야가 아니라 나 혼자라도 그것을 하면서 살며는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나도 잘못한 것이 없고 너도 없는데 결과가 이렇다면은 그것 자체도 인정하면 된다. 둘의 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된다. 쉽게 절망하고 쉽게 포기하고 나는 다 했는데 운이 안 좋았다는 식. 받아 드리기 힘들고 인정하기 싫은 고통만큼 벌어진 일은 현실이다. 아픔 마자도 받아 감싸며 살지 않는 한 여건은 변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벗어나 유혹을 받아 드리기 전에 시점으로 가고 싶다고 여기는 것조차 결과적으로 내가 거쳐 왔기에 알 수 있는 일이다. 유혹은 달콤한 것이다. 그러나 죄가 될 수 도 있다. 중요한 것은 죄라고 느껴지고 하느님께 용서 받을 수 없으리라 느껴지는 그 만큼의 신앙으로 회개하고 하느님을 따르려 하면 된다. 어느 신부님 왈 "에덴의 유혹은 언제든지 있을 것이다. 단 그때 하와나 아담이 변명하지 않고 그 유혹의 책임을 졌다면 다른 이를 감싸 주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식으로 세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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