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행복하여라, 죄가 사하여지고(시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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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지형 | 작성일1999-02-27 | 조회수4,689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행복하여라, 죄가 사하여지고 잘못이 덮여진 이! 시편 32,1
의인이란 어쩌면 결코 모든 규칙 또는 하느님의 모든 계명을 잘 지킨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그의 죄를 용서받은 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자. 이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즉 사실 의인이 흔히 생각하는 죄없는 사람을 의미한다면, 하늘 아래 의인은 없다,라는 말이 참으로 맞는 말이 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의롭게 살도록 하느님으로부터 초대받았다. 그렇다면 의인이란 말이 뭔가 다른 가능성을 열어 놓지 않는다면 하느님은 결국 불가능한 초대를 우리에게 하시는 우스운 분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편의 시사점대로 의인이란 결국 하느님 앞에서 용서받은 자, 그래서 죄가 사하여지고 잘못이 덮여진 자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가정하면 이는 모든 이에게 성취 가능한 일이 된다. 즉 모든 이가 의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다. 이는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의인이란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체험하고 이를 증언하는 자인 것이다. 물론 이 용서의 체험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의인이란 것은 어떤 한 번이 행위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되는 성취의 작업, 혹은 과정으로써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하느님을 찾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어쩔 수 없이 부딪히게 되는 죄라는 현실일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여정의 어느 모퉁이에선가 만나게 되는 죄라는 현실로 인하여, 그는 또한 어쩔 수 없이 하느님을 찾게 되는 지도 모르는 것이다. 만약 죄로 인하여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죄의 사함을 체험하며, 진실로 하느님이란 분을 알아보게 되는 운명과 맞닥뜨리게 된다면, 진실로 어찌 죄마져 은총이 아니리?
신약에 있어서 최대의 하느님 증거자인 사도 바오로가 이 시편을 로마서에 인용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사도 바오로의 은총에 의한 의화는 결코 사도 바오로 자신이 지어낸 것이 아니다. 그는 창세기의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그리고 이 시편과 같은 곳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눈을 떳고 그리고 그들을 자신의 체험과 연관시켰던 것이다. 하느님의 또 다른 증거자인 어거스틴 성인은 이 싯구절을 그의 침대 머리맡에 새겨 걸어 두어 그가 잠에서 눈을 떠면 제일 먼저 그 말을 읽을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 두번째로 나오는 참회시편인 시편 32와 시시껄렁한 생각들을 파일로 덧붙여 놓아 보았습니다.
첨부파일: Psalm32.hwp(153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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