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죽음을 내다 보는 지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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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은정 | 작성일1999-03-04 | 조회수4,397 | 추천수12 | 반대(0) 신고 |
죽음을 내다 볼 줄 아는 지혜.
주위 사람들의 축일이면, 가끔 작은 선물이나 카드를 쓰기도 합니다. 미리 달력에 표시를 해 놓았다가 잊지 않으려고 애를 쓰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참 이상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기의 영세명의 축일은 그 영세명에 해당하는 성인의 죽은 날이라는 것입니다. 태어난 날로 맞추어서 짓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 한 날로 이름을 정한다는 것. 단순한 의미는 아닌 듯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거지 라자로에게 무관심했던, 부자가 당하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라자로의 인생은 그야말로 밑바닥 인생이었습니다. 부자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먹는 비굴함과 개가 자기의 상처를 핥아 대는 모욕을 당하며 인생을 마감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죽어서 라자로와 그 부자의, 저승인생은 완전히 딴판이 되어 버리죠.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사람은 죽음을 바라 볼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살아가는 그 순간이 중요하다며,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문득 깨닫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고 선포한다며 미사 때마다 말하지만, 매 순간 영원한 삶(부활)에 반드시 따르게 되는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복음에서는 죽음까지도 생각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듯 합니다.
라자로에게 특별히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니지만, 그 부자는 자신의 현실만을 바라보았고 자신의 부를 나누려는 의지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의 삶은 죽음을 생각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풍족했지만, 그의 죽음은 새로운 생명을 기대하지 못 할 정도로 비참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영세를 받고, 그리스도교의 신앙인으로 살아 간다는 것, 그리고 축일이 있다는 것은 그들의 거룩한 죽음을 기억하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고민하라는 뜻일 지도 모르겠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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