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영화와 오늘의 복음으로 한 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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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영미 | 작성일1999-03-14 | 조회수3,865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우리는 죄 지었을 때 흔히 말합니다. 이번 한번만 봐 주십시오 이번만 봐 주신다면 착하게 살 것이고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이 청한 대로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 왜 그정도도 해 주지 않으셨는가 하던가 자신안에 일어나는 잘 되지 않은 모든 일을 그 일에 벌로 생각하며 하느님이 복수 한다고 여깁니다. 율법학자들은 실로암에서 맹인이 치유 받아 빛을 보게 되었는데도 그를 여전히 죄인 취급하며 그의 말을 인정 안합니다. "죄 지은 자로 태어난 주제에 우리에게 설교하려고 하느냐?" 이게 사람들이 흔이 생각하는 죄 지은 자의 대한 견해입니다. 그가 진짜로 그렇든 그렇지 않든 우리 인간은 한번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되면 그런 식으로만 생각을 합니다. 오늘 본 영화 'very bad think'에 나온 다섯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번만 하느님이 눈 감아 주시면 착하게 살 것이고 좋은 일 할 것이고 이번뿐인 일이다. 살인은 그것을 방법이며 처음은 고의가 아닌 실수 였다. 무마할 수 있다. 창녀 하나와 자다가 죽은 것이 무슨 대수냐? 중요한 존재가 아니기에 아무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고 상관없는 일이다. 남아지는 그것을 합리화 시키고 정당화 시키고 유지 시키기 위한 일련의 일일 뿐입니다. 물론 영화니깐 그 결론이 그럴 수 있겠지만 그들은 경찰에게 알리면 끝장이므로 하느님이 눈감아 주고 자신들이 입 다물며 그만이라고 여깁니다 율법 학자가 그들이 그에게 빛을 주었다면 그들을 통해 하느님이 그 맹인을 눈뜨게 했다면...... 그들이 살인을 하는 것을 하느님에게 명령 받은 일이라고 여겼다면 그렇게 생각 했을까요? 아닙니다. 정당한 일이라고 여길 것이며 정당한 결과라 여길 것입니다. 자신이 한 일이 옳은 일이 아니기에 자신들을 통해 일어난 일이 아니기에 그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잘못한 것을 알기에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합니다. 하느님은 악한 일을 섭리 안에서 선한 일로 바뀌어 줄 수는 있지만 착한 일을 착한 과정안에서 악하게 결론 나게 하실 수는 없습니다. 악한 동기에서 시작해서 악한 결과가 나온 일에 대해서는 더더구나 교훈이라는 것이외는 하느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왜? 하느님은 빛이므로 선한 분이기에 악과 어울릴 수 없으므로 하느님이 손 댈 수 없는 일에 하느님을 같다 붙이고 하느님이 좋은 결과를 주시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어떻 결과가 보여지든 즉 맹인이 빛을 보게 된 일조차 악한 힘으로 된 일이고 악한 일 일 뿐입니다. 그들은 눈 뜬 장님이고 본다고 하나 보이지 않는 이입니다. 그들이 악을 보는 시선을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을 주님을 못 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들의 어둠안에 스스로 갇히 겠지요! 하느님이 당신의 청원을 들어 주시지 않는다면 왜 안 들어 주시는지 이유와 과정을 성찰 해 보십시오 그래도 모르겠거든 기도로 청한 것으로 궁국적으로 바라는 것이 뭔지 성찰해 보십시오 하느님은 이미 당신에게 답을 주셨는데 당신이 그것이 뭔지 깨달지 못할 수도 있고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나 자신의 영광을 원한 것임을 알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 안에서 묻고 하느님 안에서 구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거절하시는 분이 아니라 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다만 제대로 청하지 않고 묻지 않는다면 침묵하는 하느님으로 밖에 자신을 들어 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 우리는 그 침묵만을 볼 뿐 그 심연을 보지 못합니다. 주님이 거기 계시는데도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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