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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화의 푸른지팡이:작가 최인호님
작성자서울대교구 쪽지 캡슐 작성일1999-04-07 조회수5,056 추천수0 반대(0)

 

[부활2주일:서울주보]

평화의 푸른지팡이

최인호 베드로/작가

 

톨스토이(Tolstoi, 1828-1910)는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문호이자 사상가입니다. 그는 50대까지는 [전쟁과 평화] 등으로 작가적 명성을 누리지만 후반에는 죽음의 공포로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며 고뇌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전생애를 지배했던 것은 어린 시절 형제들과의 놀이였습니다. 톨스토이는 70세가 넘었을 때 이 추억을 '푸른 지팡이'란 소품 속에서 회상합니다.

 

"내 큰형은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비밀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 비밀이 밝혀질 때는 모든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게 될 것이고 행복하게 살 텐데, 그 비밀은 '푸른 지팡이'에 적어 뽈랴나의 골짜기에 묻어놓았다고 말했다. 나는 어린 시절에도 믿었지만 지금도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는 푸른 지팡이의 존재를 믿는다."

 

톨스토이는 82세에 집을 나와 시골역에서 숨을 거두고, 마침내 고향인 뽈랴나에 묻힘으로써 자기 자신이 푸른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전인류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진리의 비밀은 바로 '나를 세상에 보내신 분, 예수의 뜻에 따라 이 세상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톨스토이즘이란 사상을 낳았습니다. 이는 화내지 말 것, 간음하지 말 것, 맹세하지 말 것, 악에 대해서 폭력으로 대항하지 않는 무저항주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형제애 등 다섯 가지로 요약됩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 앞에 세 번 나타나십니다. 그런데 그 첫마디가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이었습니다. 의심 많은 토마스 앞에 나타나실 때도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란 인사말로 시작하십니다. 살아생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마태 5,9).

 

주님은 자신의 말씀처럼 줄곧 평화를 위해 일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심으로서 유다인들은 "넘어지기도 하고 일어나기도 하는 대혼란"(루가 2,34 참조)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에게 있어 평화는 반대받는 표적이 되어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힘으로써 죽음의 공포와 폭력, 갈등과 의심을 물리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죽음의 두려움에서 기뻐서 어쩔줄 모르는 환희로, 의심의 미망(迷妄)에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란 찬양으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참평화 그 자체이신 주님의 실존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나타나실 때마다 항상 우리들의 '한가운데'에 서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주님이야말로 진리의 중심이시며 톨스토이가 평생을 통해 추구했던 참평화의 푸른 지팡이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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