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분의 자애는 영원하시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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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지형 | 작성일1999-05-10 | 조회수4,079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주님께 감사드려라, 선하신 분이시니 그분의 자애는 영원하시니. 이렇게 이를지어다, 주님께 구원받은 이들 그분께서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신 이들 뭇 나라에서, 해뜨는 곳과 해지는 곳에서, 북녘과 남녘에서 모아들이신 이들은 이렇게 이를지어다. 시편 107,1-3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의 노래, 그분의 선하심과 그분의 자애하심을 찬미하고 기리는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참으로 아름답고 겸손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렇게 노래부르는 이가 세속적인 자리에서도 소위 성공했다거나 혹은 많이 가진 사람인 사람으로 불리워지는 경우, 그의 노래라는 것이 잘못하면 자기를 그 위치에 놓게 해준 하느님께 대한 감사가 되고, 그렇게 되면 하느님은 특별한 이를 선택하여 세속적인 풍요를 베푸시는 하느님인 듯이 비추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노래하는 이의 주변에 흩어져 있으며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는 찬미의 노래라는 것이 결코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라 하느님과 자신에 대한 또 하나의 쓴 물음을 불러 일으키는 노래가 됨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성은을 망극해하는 사또 옆에 주린 배를 가누어야 하는 백성이 있다면, 이것은 잘못된 정도가 아니라 위선이며 사기인 것이다. 진정 임금의 성은을 망극해하려는 신하가 있다면, 그는 그를 높은 자리에 올려 주심을 망극해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소임을 다함으로써 온 백성을 편하게 하여, 그 백성의 입으로부터 성은을 망극해하는 노래가 나오게 하여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 백성의 노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분이 선하신 분임을, 그분의 자애가 영원하심을 노래하는 경우, 그것이 하느님께 속한 백성을 드높여주시는 것을 노래하는 경우, 그 주변의 백성이 어떻게 함께 노래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느님 백성이 하야야만 되는 일이란 것은 그분께 받은 자애와 구원을 부지런히 나누어 줌으로써 끊임없이 육화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그것만이 진정으로 온 백성, 남녘과 북녘의 모든 백성이 함께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별난 의미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즉 하느님께서 선택한 백성의 역사가 실로 세속에서 힘있고 융성한 것이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 하느님께 바친 찬미의 노래는 아마도 오늘날 여러 사람이 나누어 부를 수 있는 것이 못되었을지 모른다. 그들이 고통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과 좌절과 실패 속에서 부른 신뢰와 사랑의 노래이기에 오늘날에도, 미래에도 바로 이 지상에 발을 디디고 사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다시 불리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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