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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PBC]5월17일 독서 복음묵상
작성자조한구 쪽지 캡슐 작성일1999-05-18 조회수3,752 추천수1 반대(0) 신고
기쁜 소식. 밝은 세상

[PBC기쁜소식 밝은세상]

5월 17일 부활 제7주간 월요일

독서묵상

바오로 사도는 3차 전도 여행 중에 에페소를 들렀는데요, 그는 에페소에서 아마 아폴로에게 세례를 받고 새로 신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 아폴로는 세례자 요한의 세례운동에도 참여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면서 사람들에게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베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대목은 초대 교회 시대 때까지 아직도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되고요, 그리고 초대 교회와 요한의 제자들 사이에 있을 수 있었던 갈등과 대립을 상상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어서 바오로는 세례자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그리스도교의 세례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하는데요, 세례자 요한의 세례는 단지 회개의 표시로 서 물로 주어지는 세례이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그리스도교의 세례는 하느님의 성령을 받아서 주님의 자녀가 되는 세례라고 합니다. 따라서 세례자 요한의 세례와 그리스도교의 세례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인데요. 그것은 물과 성령의 차이만큼 큰 차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례자 요한 자신이 예수님을 증언하러 오신 분이기 때문에, 세례자 요한의 세례운동과 그리스도교의 예수 운동은 서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스도교가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의 세례운동보다 절대 우위에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바오로가 새로 신도가 된 사람들에게 안수를 하자 성령이 그들 위에 내리고, 그들은 이상한 언어로 방언을 말하고 예언을 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초대 교회는 성령에 활짝 열려 있는 교회이었고, 성령의 은사로 충만한 교회였다는 점을 묵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오로는 에페소 교회에서 두 해가 넘도록 머물렀는데요, 역시 이곳에서도 여러 가지 소동이 일어났고, 또 그런 소동을 겪은 후 에페소 교회는 더 탄탄해지고, 그 지역에서 복음은 줄기차게 뻗어 나가게 됩니다.

복음묵상

농부들은 모가 어느 정도 자라게 되면 모판에 씌웠던 비닐 하우스를 걷어줍니다. 그러면 비닐 하우스 안에 있었던 어린 모들은 강한 햇볕과 강한 바람에 노출되어 시달리게 되는데요, 농부들은 연약하게 자란 어린 벼들이 시달림을 받아야 강하고 튼튼한 모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 벼들을 시달리게 하는 것이지요. 강하고 튼튼한 모라야 논으로 옮겨 심어도 튼튼하게 자라, 많은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세상에서 고난을 받게 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제자들은 뿔뿔히 흩어져 버렸는데요, 제자들에게 이 보다 더 큰 고난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제자들의 삶의 의미와 희망을 모조리 앗아갔던 비극적인 사건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제자들은 이런 고난의 시간을 통과한 후에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부활의 증인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었고, 그리스도교의 지도자들로 우뚝 솟아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예고 없이 고난이 찾아오곤 하는데요, 물론 그 당시는 반갑지 않고 절망적이었지만, 그 고난을 순간을 넘긴 후 우리는 우리 자신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하지요.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 때가 참 좋았어. 내 자신이 단련되고 자라나는 은총의 시간이었거든, 덕분에 나는 튼튼하고 성숙한 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가 있었어."

오늘도 함께 하소서

어려움이나 시련이 우리의 인생을 예고없이 방문할 때, 예수님 우리는 이렇게 하소연한답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잘못하였길래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제게 무엇이 못 마땅하시길래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저희들은 너무나 쉽게 고난과 시련을 피해가고 싶어하는데요, 아픔이 따르지 않는 성장이 어디 있으며, 고통이 따르지 않은 대가가 어디에 있을까요.

어쩜 우리는 너무 편하게 인생의 열매들을 따고 싶어하는 지도 모르지요.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들을 성장의 고통을 겪고 열매를 맺도록 마련하셨는데도 말입니다.

예수님, 당신께서도 단말마의 고통을 지나 죽음을 골짜기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부활이라고 하는 기쁨을 맞을 수 있지 않으셨습니까?

예고도 없이 뜻밖에 고난이 저희들을 찾아 올 때, 예수님 저희들이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바라보게 하십시오. 그리고 고난에게 우리 자신이 이렇게 말하게 하여 주십시오. "고난의 잔아 어서 오라. 기쁘게 너를 마셔주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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