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PBC]6월1일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독서 복음묵상 | |||
---|---|---|---|---|
작성자조한구 | 작성일1999-06-01 | 조회수2,650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PBC기쁜소식 밝은세상] 6월 1일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독서묵상 토비트서는 하느님의 의로운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의 주변을 둘러보면 의로운 사람들이 간혹있지요. 그들은 고지식하고, 계산적이지 못하고, 자기 것을 챙길 줄도 모르고, 정직하고 바른 생활을 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보고 답답해하거나 세상살이를 잘 할 줄 모르는 바보로 취급하거나, 속으로 조롱을 하지요. "그렇게 올바르게 산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나?" 이에 비교해서 보통 사람들은 약삭빠르고, 계산적이고, 자신의 이익에 민감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의롭게 살기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 같지요. 하지만 이야기의 주인공 토비트는 다른 나라에 유배와 살면서도, 율법이 가르키는 대로 살았고, 죽은 자신의 동족을 묻어주는 일이 아주 위험천만한 일인지를 알면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동족을 묻어주곤 하였지요. 하지만 의로운 사람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상을 받아야 마땅한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한가 봅니다. 그날도 토비트는 살해된 동족을 몰래 묻어주고 뜰 안에 들어가 잠시 쉬다가 참새 똥이 눈에 들어가 장님이 되어버리고 말았답니다. 불행한 사고, 불의의 사고가 토비트를 찾아왔지만, 그것도 토비트의 마음에서 의를 꺽지는 못했지요. 장님이 되어 버린 토비트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생각은 토비트 아내의 입을 통해 표현됩니다. "당신이 베푼 선으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이 쌓은 덕행으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혼자 의로운 척하더니 눈먼 장님 신세가 된 당신을 누가 알아주기라도 한답디까?" 사실 사람들은 의롭게 사는 사람들을 속으로 조롱하고 비웃지요. 하지만 의롭게 사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래서가 아니라, 마음 속 깊이 하느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들도 누구나 이 두 가지 모습에서 제외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고지식하고 의롭게 살든지, 약삭빠르게 자신의 잇속만을 따지면서 손해보지 않고 살든지..........
복음묵상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예수님 시대에 이 질문보다 정치적인 질문이 또 있을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의 사회는 조그마한 자극에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반란과 폭동의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고, 군중들은 어쩜 누군가가 그 자극을 주기를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었을 테지요. 이런 분위기에서 세금을 바쳐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질문은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 넣기에 충분하였던 것 같습니다. 만약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한다면, 예수님은 여지없이 로마를 대항하여 반란을 선동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고, 만약 세금을 바치라고 한다면, 예수님은 로마제국을 동조하는 자로 인정되어 유다의 선생으로서 존경과 권위를 순식간에 잃어버리게 될테니까요. 여기에서 우리들이 유의해야 할 점은, 사람들은 제국이 만들어 놓은 일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세상일에만 정신을 쏟고 있듯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데나리온 한닢을 가져오게 하시고는 "이 초상과 글자는 누구의 것이냐?"고 물으십니다. 사람들이 "카이사르 것입니다."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고 말씀하시는 데요, 예수님의 이 말씀과 행동은 사람들의 시선을 세금문제에서 카이사르와 하느님의 대립으로 옮겨놓습니다. "카이사르의 일은 카이사르에게 맡기고, 너희들은 하느님의 일에나 정신을 쏟도록 하여라."는 뜻인데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어떤 힘을 가지고 전달되었을까요. 지금도 우리들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온갖 가지 세상일에 정신이 팔려 있는데요, 세상일은 그것을 만들고 이끌어 가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우리들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데 우리의 정열과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우리 자신과 세상을 좀 더 좋게 바꾸어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오늘도 함께 하소서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그 말씀에 담긴 깊은 뜻을 깨닫고 싶습니다. 사실 저희들은 아직도 사람이 만든 것과 하느님의 뜻을 혼동하고 있고, 사람이 만들어 놓은 제도나 신념, 혹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가짜 진리를 하느님의 것으로, 혹은 하느님의 진리로 잘못 알고 그것들을 의심 없이 따르고 있으니까요. 예수님 시대의 지중해 근동의 사람들에게 카이사르는 세계를 통치하는 제국의 힘이었고 영광이었지요. 사람들은 세상의 힘을 만드는 사람이나 나라에 쉽게 매료되는데요,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서 대개 반대가 아니면 지지로 그 반응을 나타내지요. 하지만 당신께서는 사람들의 이러한 관심을 보다 근원적인 곳으로 돌리도록 이끄십니다. 제국의 일은 카이사르에게 맡기고 너희들은 하느님의 뜻을 받들라는 말씀이신데요, 이 말씀은 우리들은 제국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것을 넘어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실현하는 사람이 되도록 잡아당기지요. 예수님, 저희들도 세상일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신경을 쓴답니다. 그런다고 세상을 한시도 좋게 바꾸어 놓지 못하면서 말입니다. 어쩌면 저희들은 세상을 욕하면서 세상을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예수님, 저희들이 세상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걱정하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받들고,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