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PBC]6월3일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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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한구 | 작성일1999-06-01 | 조회수3,252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PBC기쁜소식 밝은세상] 6월 3일 목요일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독서묵상 토비트와 사라를 도와주라고 파견된 라파엘 천사는 이들을 돕기 시작합니다. 토비트는 죽기 전에 친척 라구엘에게 맡겨놓은 은전 10달란트를 찾아오기 위해서 아들 토비아를 메대로 보내게 되는데요, 토비트는 어린 아들을 위해 우연히 찾아든 손님 라파엘에게 동행을 부탁하지요. 이들이 메대에 도착하였을 때 친척 라구엘은 이들을 후하게 대접하는데요, 토비아는 라파엘에게 부탁하여 라구엘의 딸 사라에게 청혼을 합니다. 사라는 바로 일곱 번이나 결혼하여 신랑이 첫날밤에 모두 죽고 말았던 그 비운의 여인입니다. 사랑에 눈이 멀었던 것일까요. 토비아는 라구엘이 사라의 불운한 운명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지만, 결혼허락을 받을 때까지 단식을 선언합니다. 결국 라구엘은 혼인 계약서를 써주게 되고, 사라의 어머니는 신방을 준비하는데요, 이들 모두의 마음이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사라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들의 운명을 하느님께 맡기고, 하느님께서 딸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데요, 글쎄요. 첫 날밤 잠자리에 든 토비아와 사라가 과연 무사히 첫날밤을 넘길 것인지, 하느님께서는 에집트의 귀신 아스모데오를 물리치시고 토비아와 사라를 보호해 주실 수 있을런지요. 토비아와 사라는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부부의 뜻을 새기고, 드디어 함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복음묵상 그리스도교인이라면 누구나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명기에 나오는 이 말씀을 알고 있었지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유다인들은 이 말씀을 너무나 좋아해서 이 글귀를 적어 작은 대롱에 넣어 문자 그래로 이마에 달고 다니고, 옷술에다가도 달고 다니고, 대문 문설주에 달아 놓고 집을 들어가고 나오고 할 때마다, 그 글귀가 든 대롱을 만지면서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우리의 골수에 박혀있지만, 우리들이 정작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아마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 글귀는 좋아했어도 이 말씀을 실천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느님 사랑을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제물이나 번제물를 많이 바치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했던가 봅니다. 사실 사람들은 그렇게도 하였고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희생제물과 번제물을 많이 바치면서도, 정작 주위 사람들에게는 나쁜 대우를 했을테니까요.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이러한 일반적인 생활 습관을 꼬집으시면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시지요. 이러한 예수님의 의도를 파악한 율법학자는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대답합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둘이 아니고 하나이라는 것,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느님 사랑이고, 하느님 사랑은 이웃사랑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들 역시, 우리들 실제 생활에서는 여전히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갈라놓고 구분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랑은 조용히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오늘도 함께 하소서 예수님, 저희들은 하느님께 바칠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무의식적으로 구별해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는 의무적으로 바치고, 복을 받기 위해서 바치고......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계산적이고 조건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앞에서는 착한 척 하면서도,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불의와 무자비한 행동을 얼마든지 하지요. 예수님 당신께서는 우리의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을 예리하게 꿰뚫어 보시고 꼬집어주십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말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우리들의 사랑은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실천함에 있기 때문이지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하느님의 사랑에 흡수되어 하느님의 사랑으로 모든 이웃을 선으로 대하고 자비를 베풀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하느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이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웃 사랑으로 흘러 넘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을 의식하지도 말고 물 흐르듯이, 바람 불듯이 자연스럽게 사랑으로 살게 하여 주십시요.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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