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인과 우리들의 가장 큰 차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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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영미 | 작성일1999-06-01 | 조회수3,819 | 추천수16 | 반대(0) 신고 |
소화 데레사 성녀는 자신이 추위에 손을 비비는 것이나 땀 흘리는 것을 주님이 안타까워 하실까봐 들어내어서 딱지 않고 들어내어서 비비지 않고 몰래 몰래 손을 비볐다. 그것도 아주 잠깐 동안만... 그 때 그녀가 살핀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하느님 이였다.
대데레사 성녀는 가끔 고통과 시련을 만났을 떄 "이렇게 사랑하시니 옆에 있는 사람이 적지요!" 하고 말씀 드리곤 했단다. 그때 그녀가 한 말은 불만은 아니라 친근한 애정표현 이였다.
몽폴의 루도비꼬 성인과 성 요한 비안네 신부님은어린 시절 농사를 돕기 위해 밭에 나갈 때 조그만 성모상을 지니고 나갔다. 자신이 경작해야 할 거리 앞에 성모님 상을 갔다 놓고 입을 맞추고 난 후 부지런하게 경작을 해서 성모님을 다시 안아 입을 맞춘 후 다시 그런 식으로 경작을 하셨다고 한다.
성 요한 칸시오는 산적을 만나 돈을 다 털렸다. 가진 돈을 다 놓으라 했을 때 다 내놓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나 산적과 헤어진 후 외투 속에 비상금을 생각해 내고는 그는 산적을 쫓아가 그것까지 주려고 했다. 요한 칸시오가 산적에게 다시 간 것은 도둑질이 나쁜 것임을 몰라서는 아니다. 자신에게가 돈이 없다고 했는데 남겨 놓은 것은 자기 양심에 걸리기 때문이였다.
열거한 행동들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성인들의 행동이기에 비범하게 보이는 해도 그 행동들은 일상에서 만날 수 있고 만나지는 일들이다.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나 추위에 손을 비비벼 한다는 것이나 어려운 일을 만났을 떄 주님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다만 그 행위들을 그냥 할 것인가 지향을 갖고 할 것인가?
사람을 보고 할 것인가? 주님을 보고 할 것인가? 산적에게 거짓말 하는 것은 죄가 아닐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재산을 지켜려는 행위 였으니 더더구나 그러나 은전 20냥에 주님을 팔은 유다가 있는 것처럼 하느님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고 거짓말로 양심을 팔고 싶지 않았던 것일 뿐 .... 행위보다는 지향이 문제인 것이다.
소화 데레사 성녀가 좋아했던 일화 하나 옛날 어느 성주가 자신의 행적을 남길려고 성당을 지었다. 그러고는 그 누구의 도움도 아닌 자기의 헌납으로만 그것을 했다는 것을 표시하고 싶어서 아무에게도 봉헌하지 못하게 했다. 어느 노파가 동전 몇 푼을 봉헌할려고 했지만 그 성주는 그것 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노파는 너무나 돕고 싶은 마음에 그 돈으로 짚을 사서 공사 수레를 끄는 나귀에게 먹였다. 성당 축성식 날 헌판에는 그 성주의 이름이 아니라 노파의 이름이 기록되었다. 아무리 이름을 고쳐 놓아도 마찬 가지 였다.
성인들의 행위와 우리들의 행위의 차이는 여러 가지 있을 것이나 가장 큰 것은 두가지 어느 일을 하든 주님을 먼저 생각 하고 염두해 두는가와 염두 한 대로 하는가 안 하는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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