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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아 계신 주님(전재천신부님-대구주보)
작성자최성우 세자요한 신부 쪽지 캡슐 작성일1999-06-05 조회수3,729 추천수6 반대(0) 신고

[대구주보]

살아 계신 주님

신평본당 전재천 신부

 

꼭 3년 전 바로 이 지면을 통해 성체성사는 일치의 성사이며 따라서 우리는 같은 빵을 나누는 한 가족임을 강조했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가끔 교우들로부터 성체성사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특히 신입 교우들로부터 영성체를 아무리 잘 해 보려고 해도 밀떡의 형상만이 보인다는 얘기를 듣는다. 무한한 신비의 성사 앞에서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겪는 문제이리라. 그들에게 교리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그 이상의 시원한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으니 나도 안타깝다. 다만 내 체험 하나를 들려주고 싶다.

 

10여 년 전의 일이다. 리비아에서도 가장 오지라고 하는 사하라 사막 한복판의 어느 건설 현장에서 미사를 봉헌할 때의 일이다. 좁은 공소를 꽉 메우긴 했으나 반주도 없는, 남자들만의 서툰 성가로 인해 미사 시작은 꽤나 어색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성가를 하면서도 모두들 스스로 멋쩍어 웃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미사가 진행되면서 그 어떤 열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살아 계신 주님께서 참으로 우리와 함께 이 자리에 계신다는 기쁨과 함께……. "보라, 천주의 어린양……."을 외치며 성체를 높이 들 때 눈앞에 보인 성체는 지금도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이런 외딴 사막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 그것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요 은혜였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느꼈던 뜨거운 감동(루가 24,32)이 이러했을까? 나만의 감동이 아니었다. 영성체를 하러 나오는 대부분 형제들의 눈이 온통 눈물로 젖어 있었다. 사방이 사막인 그곳에서 우리 형제들이 스스로 공소를 지어 공소예절을 올리다가 처음으로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으니 감격스러웠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후에 틈틈이 그 형제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어 보면 비록 표현은 달라도 한결같은 대답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뜨거운 감동 때문이었다고 했다.

 

나는 성체성사를 생각할 때마다 먼저 그날을 떠올린다. 어릴 때 교리반에서 배운 교리 지식보다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적인 이론보다 앞서 그날의 체험을 떠올린다. 그날의 체험이 나에겐 '보고 맛보고 만져 봐도 알 길 없고'(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 교리만으로 채울 수 없던 무한한 성체 신비의 '단맛'(성체 찬미가)을 조금이라도 맛본 귀한 지식(?)이 되어 있다, 오늘까지도.성체의 무한한 신비를 이성으로써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러나 신비는 삶에서 체험하면서 조금씩 헤아릴 수 있는 그 무엇이기에 우리 각자 주어진 다양한 삶 속에서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성체의 단맛을 체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주님을 찾는 꾸준한 노력과 함께 좋은 마음으로 살다 보면 성체 안에 살아 계신 주님을 반드시 알아뵐 수 있도록 우리 눈이 열릴 때가 올 것이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뵙게'(루가 24,31)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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