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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작성자박선환 쪽지 캡슐 작성일1999-06-13 조회수3,102 추천수7 반대(0) 신고

                           연중 제11주일(거저 주어라)

                   출애 19,2-6ㄱ; 로마 5,6-11; 마태 9,36-10,8

 

  어제는 본당에서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백 열 명이라는 수의 영세자

가 나왔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리게는 중

학생으로부터 많게는 칠순이 넘으신 할머니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분

들이 그렇게도 간절하게 원하셨던 세례식에 참여하실 수 있었습니다. 본인들에게

도 기쁨이었지만 본당에서도 정말 경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세례식을 마무리하기 전에 주임 신부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릉

성당에서 얼마전에 예비자 입교식을 가졌는데 무려 500명이 입교를 했다는 것이

었습니다. 말씀하시는 신부님뿐만 아니라 듣고 있던 신자들도 모두 입이 쩍 벌어

지고 말았습니다. 교적상의 신자수가 사천 삼백 명에 이르고 있는 우리 본당이지

만 실제 주일 미사 참석자는 일천 삼, 사백 명을 밑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두가 부러운 마음으로 앉아 있자 신부님께서는 우리 본당에서도 얼마 남지 않

은 예비자 입교식까지 선교의 열을 불태우며 힘을 모아보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장면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들은 제각기 주님으로부터 고유한 사명을 가지고 활동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가르치는 사람으로,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은혜를 받아 전하는 사람으로서의 부

르심을 받게 되는 것이기에, 자신을 불러주신 하느님께 응답해서 그에 합당한 삶

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말씀의 요지였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하느님의 부르심

을 잘 이해하고 그 부르심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주님께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명의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추수할 일꾼이 적으니 주인에

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청하여라" 라고 일러주십니다. 주님 나라의 전파,

곧 복음 선포를 위해 일할 일꾼들을 청하는 기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

부의 말씀이셨습니다. 우리들이 하는 선교는 기도하며 선포하고, 선포하며 기도

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선교는 힘이 없

고, 반대로 기도만 한다고 저절로 선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써 준비하고

직접 발로 뛰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주님의 파견을 받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굉장한 능력을 심어 주십니다.

악령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심으로써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까

지도 모두 고칠 수 있는 힘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처음부터 그

런 능력을 감당할 만한 재간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기껏해야 무식했던 어부들과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세리, 유

다인들에게 푸대접을 받던 가나안 사람, 그리고 제 스승마저도 팔아 넘겨 버리는

품위도 충성심도 없는 열혈당원이 제자단의 구성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는 예수님처럼 세간의 주목을 받고, 여러 가지 재능을 통해서 능력을 인

정받고, 백성들이 자기들의 왕으로 세우려는 의도를 가질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

신 분의 제자라면 이것보다는 훨씬 나은 배경과 학식과 인품을 갖춰야할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가장 천대하고, 비난하고, 구

박하는 그들을 통해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구원하시는 분,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능력을 행사하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 당신이심을 세상에 선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날 모든 수험생들이 부러워하는 서울대를 졸업한 사람들이 자신의 법지식

이나 의술로써 세상 사람들을 우롱하고 사람들을 사기치는 파렴치한 행동에 비한

다면 차라리 이천 년 전 무식쟁이 어부가 훨씬 나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민주의 투사가 주막의 강아지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는 것보다는 달변은 아니었지

만 우직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랐던 세리 마태오가 훨씬 나은 건지도 모르겠습니

다. 세상을 구하겠다고, 민족을 구하겠다고, 정치경제, 사회문화, 각계 각층에서

자신의 위상을 뽐내는 사람들에게서조차 우리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현실은 참으로 암담한 생각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현실들은 아주 오랜 시간을 두고 우리들의 정서 속에서 잘못 뿌리를 내려가고 있

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도 이런 비난을 퍼붓기에는 너무나도 부끄러운 점들이 있다

고 생각됩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뿐인 신앙을 살아가면서, 오히려 행동으로

솔선하는 사람들에게 비난과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들이 먼저

개선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세상이 썩었다며 혀를 차지만, 정작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신앙인의 양심쯤은 한낱 코푼 휴지조각만도 못하게 생

각하는 정서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자신은 털끝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도 다

른 누가 봉사 활동의 장으로 등장하면 갖은 중상과 모략으로 단체를 흔들어 놓

고, 손톱 만한 잘못을 발견하면 그것을 크게 떠벌리며 없던 말까지 덧붙여 사람

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모습은 마음을 괴롭게 만듭니다.

 

  한마디로 이런 표현이 가능할 것입니다. "내가 배가 나온 것은 인격이고 다른

사람이 배가 나온 것은 똥배이다. 내가 시험을 잘못 본 것은 운이 없어서고, 네

가 시험을 잘못 본 것은 공부를 안 해서다. 내가 공부를 잘한 것은 머리가 좋아

서고, 네가 공부를 잘한 것은 부모 잘 만나서이다. 내가 약속시간에 늦은 것은

매력이고, 네가 약속 시간에 늦은 것은 매너 황이다."(천리안 가동, 조재형 강

론에서 인용)

 

  그러나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들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능력과 남들의 무능을

비교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복음 선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정을

돌보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하기 전에, 일부 능력 있는 사람들의 잘못된 행태

에 철퇴를 가하기 전에, 우리들 가운데는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잘났어도 그

모든 것들을 "거저 받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는 사실을 먼저 헤아릴 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그들은 예수님처럼 마귀를 쫓아내고, 불치의 병을

고치는 놀라운 능력을 갖게 되었지만, 그들 스스로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자

신의 초라하고 볼품없는 모습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모든 능력은 바로

예수님의 능력이시다] 라고 생각하며, [아, 우리들도 거저 받았으니, 거저 나눠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고백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똑똑하고, 잘나고, 능력 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그런 일을 맡기셨다

면 아마도 사도단은 저마다 자기가 잘나서 사도가 되었다고 떠벌리는 사람들로

인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을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일을 감추시고, 오

히려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는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

다.

 

  바로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에만 최

선을 다하려는 마음을 간직하던 사람들이었기에, [가서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여라. 앓는 사람은 고쳐 주고 죽은 사람은 살려 주어라. 나병 환자는 깨끗

이 낫게 해 주고 마귀는 쫓아내어라] 라고 일러주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따를 수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무도 주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거저 주신 그 사랑

을 거저 나누고], 주님을 통해서 거저 주어진 은총의 선물을 가지고 사람들과 화

목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거저 주신 주님의 말씀을 우리들 삶의 이정표

로 삼아서 하늘 나라를 향한 여정을 분명하게 꾸려나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로부터 받은 하늘 나라의 복된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아멘.

주님의 뜻을 따라 충실히 살아가며 청하는 저희의 이 기도를 즐겨 들어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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