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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PBC]6월17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독서 복음묵상
작성자조한구 쪽지 캡슐 작성일1999-06-16 조회수2,878 추천수3 반대(0) 신고
기쁜 소식. 밝은 세상

 

[PBC기쁜소식 밝은세상]

6월 17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독서묵상

오늘 독서를 들으면서 우리는 바오로 사도가 많이 흥분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흥분했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먼저 바오로 사도와 유다 본토출신 사도들 간의 경쟁이나 대립을 생각해 볼 수 있겠고, 그리고 바오로 사도가 전하는 복음과 유다 본토 출신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이 달랐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유대본토 출신 사도들과 바오로 사도 사이에는 다소 경쟁과 대립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사도행전이나 바오로 사도의 서간을 통해서 알고 있는데요, 유다 본토 출신 사도들은 베드로나 요한과 같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이나 예수님의 형제 야고버를 뜻하거나 혹은 유다에서 온 다른 선교사를 뜻할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살아 생전의 예수님과 직접 관계가 있었던 제자들과 살아 생전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던 바오로 사이의 경쟁과 대립을 우리는 쉽게 상상 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바오로는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3, 4년 후에 계시로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었거든요. 아마 사람들은 쉽게 살아 계실 적 예수님과 연관이 있었던 사도들에게 더 많이 쏠렸을 테지요. 아마 이런 점이 바오로 사도를 고독하게 만들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아마 예수님 생전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들었던 제자들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계시로 만났던 바오로가 전하는 복음에는 다소 다른 뉘앙스를 띨 수밖에 없었을 텐데요, 아마 제자들의 가르침에는 예수님의 비유말씀과 가르침들이 많았을 것이고, 혹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한 그들은 다시 유대교의 율법으로 다시 돌아가 버릴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바오로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는 점을 줄기차게 선포했고, 바오로 자신이 그리스 다르소 출신 유다인이었기 때문에, 그는 유다와 다른 그리스 문화에 널리 유행하고 있던 죽고 부활한 신의 컬트를 예수님에게 적용하여,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신의 복음으로 선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해도 예수님 제자들과 바오로 사이에는 많은 간격이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은데요, 아마 이런 차이가 바오로 사도를 몹시 고독하고 외롭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복음묵상

예수님의 생활에서 기도는 중요한 특징을 이루고 있지요. 예수님은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보고 있었고,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매순간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의도를 기도를 통해서 듣고 있었고 하느님의 일을 드러내시기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도 자주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들도 자주 기도를 한다고 하지요.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드리는 기도와 예수님의 기도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혹시 우리들이 하는 기도와 예수님의 기도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우리들은 기도할 때 어쩔 수 없이 참 많은 것을 청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모든 문제, 심리적이고 영적인 모든 문제의 해결을 청하기도 하지요.

예수님도 그랬을까요? 놀랍게도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서 청하는 것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딱 한가지만을 청하셨지요. 하루 분의 양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서는 꼭 하루 분의 양식만을 청하셨고, 그 외에는 하느님을 찬양하고,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뜻을 구하셨지요. 그리고 죄의 용서와 세상의 유혹과 악으로부터 보호해주실 것을 청하셨습니다.

혹시 우리들은 예수님과 비교해서 하느님께 너무 많은 것들을 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지적하셨듯이, 우리들은 빈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 역시 우리를 자신을 위해서는 하루 먹을 양식만을 청하고, 그 외에는 모두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뜻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 너무 지나친 걸까요?

오늘도 함께 하소서

우리들은 하느님께 무엇을 청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 당신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 나라를 청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자신을 위해서는 하루 분의 양식만을 청하라고 하셨지요.

예수님, 당신은 정말로 그렇게 사셨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은 아무래도 그 정도로는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웬일일까요. 저희들이 하느님께 청하고 부탁해야 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일까요?

예수님, 아무래도 저희들은 저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해결되지 않은 문제나, 골치거리들의 해결사로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모양입니다.

우리의 삶을 하느님의 뜻에 맞추지 않고, 하느님을 우리의 뜻에 맞추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아마 이럴 때 기도는 빈말만 되풀이하고 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 먼저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 나라를 구하고, 그 다음 자신을 위해서 하루 먹을 양식을 청하는 당신의 기도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먼저 우리들의 삶에서 저희들이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뜻을 구하고,

저희 자신들을 위해서는 그날 그날을 먹고 살 양식만을 구하는 것으로 만족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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