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6월24일 독서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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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한구 | 작성일1999-06-26 | 조회수3,300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6월 24일 목요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독서묵상 이사야서에 나오는 야훼 종에 관한 노래는 통상적으로 예수님께 적용합니다. 하지만 오늘 전례는 이사야서의 야훼 종의 둘째 노래를 세례자 요한에게 적용하는 것 같은데요, 이 적용에서는 예수님이 주님으로 높아지시고,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태중에서부터 주님의 종으로 선택받은 선지자가 됩니다. 하지만 이 적용에는 아무리해도 무리가 따르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주님의 종이 할 일이 다름 아닌 구세주의 역할이기 때문이지요. 세례자 요한이 아무리 훌륭하고 뛰어난 예언자일지라도 교회는 그에게 주님의 선구자로서 주님의 길을 닦는 역할을 주고 있으니까요. 그러면 실제적인 역사 속에서 세례자 요한은 어떤 인물이었으며,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은 어떤 관계였을까요? 우선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대대적인 세례운동을 펼쳤던 종말론적인 예언자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종말이 곧 닥칠 것을 선포하였고, 회개의 표시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지요. 사람들은 세례를 받고 그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광야로 몰려갔다고 합니다. 그를 따르는 무리가 많았기 때문에, 결국 그는 그에게 정치적인 위협을 느낀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서 참수 당하고 말았지요. 예수님도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광야로 세례자 요한을 찾아갔고, 그에게서 세례를 받았고, 그의 세례운동에 참여를 했었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곧 세례자 요한을 떠나 갈릴레아로 돌아와서 자신만의 독특한 가르침을 펼치셨는데요. 예수님의 가르침의 가장 큰 특징은 종말론적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시작되는 하느님 나라였지요. 그리고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례와 같은 외적이 표시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예수님의 초기 제자들이 처음에는 대부분 세례자 요한을 따르던 제자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은 깊은 연관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복음묵상 루가복음은 두 가지의 탄생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와 세례자 요한의 탄생 이야기이지요. 루가는 이 두 가지의 탄생 이야기를 서로 얽어 놓음으로서, 우리들은 오랫동안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을 여섯 달 차이로 태어난 친척관계로 생각하는 경향을 있었지요. 하지만 이 두 가지 탄생이야기의 의도는 특별한 생애를 살았던 영웅들의, 특별한 탄생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이해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알렉산더 대왕이 특별한 영웅으로서 제우스신을 아버지로 하는 특별한 탄생을 하였고,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아폴로 신의 아들로 탄생하였다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로 말입니다. 특별한 생애를 살았던 영웅들에게 항상 특별한 탄생 이야기를 만들었듯이 말입니다. 우선 세례자 요한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늙은 엘리사벳을 어머니로 하고 아버지를 즈카리야로 해서 태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 특별한 영웅의 탄생이야기에는 즈카리야가 벙어리가 되는, 요한이라고 이름을 정하고, 또 즈카리야의 혀가 풀리면서 말을 하게 되는 상징적인 사건을 통하여,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장차 이 아이가 자라서 어떤 인물이 될까.'하는 호기심을 가지게 하지요. 요한은 유다에서 예레미야와 비견되는 대예언자로 존경받은 인물입니다. 그가 민중들로부터 대 예언자로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의 삶이 대 예언자라고 불리기에 합당할 만큼 특별했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우리는 오늘 세례자 요한의 특별한 탄생 이야기에서, 역설적으로 특별했던 세례자 요한의 생애를 추측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의 삶은 사람들을 광야로 이끌어내고, 회개로 인도할 만큼 강열하고 호소력 있는 선지자적인 모습이었던 거지요. 오늘, 성서 역사 속에서 강열한 인상을 지닌 한 선지자가 우리의 삶으로 뚜벅뚜벅 걸어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함께 하소서 예수님, 세례자 요한의 탄생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들은 세례자 요한과 당신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그리고 같은 시대를 살았던 두 분의 가르침을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 새로운 천년기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일까요? 요즘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종말론이 유행을 하고 있답니다. 사람들은 구체적인 날짜를 대면서까지 두려움과 공포를 만들고 있지요. 예수님, 당신과 요한이 살았던 시대에도 종말론은 대중들 사이에 대단히 유행을 하였었다고 하지요. 세례자 요한은 종말을 예언했고 회개의 표시로 세례운동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신은 세례자 요한과 또 대부분 종말을 믿었던 일반 대중들과 달리, 종말을 믿지 않았지요. '그 때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당신의 신념이셨습니다. 그 대신 예수님 당신은 하느님 나라가 종말 뒤에 오는 나라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시작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 종말의 공포와 두려움에 떠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가르침에 다시 한번 눈뜨게 하여 주십시오. 저희들이 종말을 두려워하기 보다 지금의 삶을 경축하고 기쁘게 살수 있도록 가르쳐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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