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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PBC]6월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독서 복음묵상
작성자조한구 쪽지 캡슐 작성일1999-06-28 조회수3,209 추천수3 반대(0) 신고
기쁜 소식. 밝은 세상 6월 28일 월요일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PBC기쁜소식 밝은세상]

 

6월 29일 화요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독서묵상

오늘 독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운명이 예수님의 운명과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무교절 축제 때 붙잡히셨고 과월절에 처형되시었듯이 베드로도 같은 운명을 걷게 될 것을 상징적인 사건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듯이 제자들도 승리할 것을 암시하는데요. 베드로는 감옥에서 천사의 도움으로 헤로데와 유다인들의 박해를 벗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과 한 운명이었기에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고, 스승의 승리에도 함께 동참하게 될 운명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가장 출중한 두 제자의 축일을 함께 기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제일 먼저 대중들 앞에서 선포하였던 베드로 사도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시라는 교리를 제일 먼저 선포하셨던 바오로 사도입니다.

이 두 분의 노력과 헌신 때문에 교회가 창립되고 이방인 지역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었는데요. 너무나 다른 두 분이셨지만, 이 두 분을 빼놓고 그리스도교를 말하기란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공생활 때부터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에 함께 하셨던 분이셨고요.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3, 4년 만에 계시로서 예수님을 뵙고 사도가 되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를 제외하고 이방인 선교에 대해서 말할 수 없지요. 그리스도교가가 유대교의 율법과 할례로부터 자유로워져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으신 분이 바로 바오로 사도이니까요.

서로 다른 기질을 지니셨고 두 분의 역할도 달랐지만, 예수님과 교회에 대한 사랑만큼은 서로 조금도 뒤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두 분은 모두 예수님의 운명을 자신들의 운명으로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

 

복음묵상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였을까요?

오늘 복음은 예수님 시대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었던 세례자 요한이 살아났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엘리야 예언자라고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와 같은 대 예언자로 여긴다고 합니다.

이 말들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종말 직전에 불가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던 엘리야 예언자가 다시 나타날 것을 기대하고 있었지요.

엘리야 예언자가 다시 오면 종말론적인 심판이 있을 것이고, 그 다음 선과 악이 깨끗하게 가려진 다음 하느님 나라가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전통적인 믿음에 따라 사람들은 혹시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님을 종말에 오기로 되어 있던 대 예언자 엘리야로 여겼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이랬다는 것인데요.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초기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였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기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습니다.

따라서 예언의 말씀을 채우기 위해 세례자 요한이 종말에 오기로 되어 있는 예언자 역할을 맡아야 했지요.

예수님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예언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겼지만,

믿음의 눈을 뜬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기 교회의 신도들은 예수님은 그리스도님이시다는 신앙고백을 했고, 이 믿음이 오늘까지 우리들에게 전수되고 있는데요.

특히 마태오 복음을 이 이야기를 하면서 베드로 사도에게 특별한 권한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천국의 열쇠뿐 아니라,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대리할 수 있는 권한인데요.

오늘날 많은 성서학자들은 이 부분을 예수님이 직접하신 말씀이기보다는 초기 교회의 작품으로 이해를 합니다.

이방인 교회의 사도보다 예수님의 직제자이고 유다인인 한 지도자에게 특별한 권한을 주기 위해서였다고 말입니다.

교회사에서 2, 3세기는 교회의 지도자들끼리 경쟁 관계에 있었고, 다양한 가르침들이 혼돈스럽게 뒤섞여있었던 시기였음을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의 정신은 더욱 자유스럽고 풍요로워질 것 같습니다.

 

오늘도 함께 하소서

예수님, 사람들은 당신을 예언자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혹시 종말에 오시기로 되어 있던 엘리야예언자라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종말을 기대하고 있었던 거지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세기말을 지내면서 은근히 종말을 두려워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신에게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발견한 사람들은 당신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다시 이 고백이 우리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를 묵상하고 있지요.

'예수님은 어떻게 해서 우리 인생의 구원자가 되셨는가?' 하고 말입니다.

예수님, 우리가 배워서 외운대로가 아니라,

저희들이 당신의 가르침과 삶에서 우리의 구원을 발견하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의 하느님 나라의 가르침의 참 뜻을 깨달아, 저희들의 삶이 하느님 나라 적인 삶으로 바뀌게 하여 주십시오.

물질과 재화가 대접받는 세상에서 저희들이 예수님 당신의 삶에서 우리 인생의 참된 구원을 발견하게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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