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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월6일 독서 복음묵상
작성자조한구 쪽지 캡슐 작성일1999-07-02 조회수2,949 추천수1 반대(0) 신고
기쁜 소식. 밝은 세상

7월 6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독서묵상

아브라함의 고향이자 이사악의 부인 니브가의 고향 하란에 도착한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4년 동안 일을 해 주면서 머물었습니다.

7년은 라반의 큰딸 레아를 얻기 위해서였고, 7년은 사랑하는 여인 라헬을 얻기 위해서였는데요. 라헬은 라반의 둘째 딸이었고, 그 동안 라반의 집에 내린 모든 복이 야곱 때문에 내려졌다는 것을 안 라반이,

야곱을 오래 붙잡아 놓기 위해서 꾀를 썼기 때문이랍니다.

10년은 삯을 받고 일을 하였는데, 야곱의 재산이 많이 불어나 라반과 함께 지낼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느님은 야곱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지요.

야곱은 두 부인과 11아들과 종들과 모든 재산을 이끌고 고향을 향해 떠나가게 되었는데요.

고향을 떠나 올 때와 마찬가지로 야곱에게 귀향길이 위험하고 두렵기는 마찬가지 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가장 두려운 존재는 야곱을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는 형 에사오였지요.

우리는 두려움으로 일렁이는 야곱의 심리적인 갈등을 쉽게 상상해 볼 수 있겠는데요. 그래서 였을까요?

하느님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야곱과 밤새도록 씨름을 하십니다. 어미 호랑이가 새끼 호랑이를 단련시키듯이 말입니다.

밤새 하느님과 겨루고도 야곱은 하느님이 축복해줄 때까지 하느님을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았지요.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바뀌어 주시며 축복해 주시는데요.

이 말은 '하느님과 겨루어 냈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겨낸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지요.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부를 때 스스로 느끼는 자긍심과 격려를 느껴볼 수 있을까요?

하느님과 겨루어 내고 사람들을 이겨냈다는 자신들의 이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자긍심을 느끼고 자신의 삶을 격려 받았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겨룬 야곱의 끈기에서, 우리의 영적인 싸움이나 인생에서의 싸움이 끈질지고 치열해야 함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치 금강석 쪼개듯이 해야한다고 말입니다.

복음묵상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서로 상반되는 견해를 나타내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먼저 한 부류는 예수님이 마귀의 두목의 힘을 빌어 마귀를 쫓아낸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마귀 들렸다는 말이고, 유다사회에서 이 말은 바로 미쳤다는 표현과 같은 뜻이라고 하는데요.

예수님에 대해서 이런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은 대개 지도층에 있거나 스스로 구원을 받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율법과 정결법이 명시한 대로 생활하는 사람들이었는데요.

예수님께서 정결법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공공연하게 정결례적으로 부정한 죄인들과 어울리심으로서,

예수님 자신을 오염시키는 것을 보고,

그들 눈에는 예수님이 미친 사람으로 보였던 거지요.

그러나 다른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의 행적이 구약성서에서부터 기다림의 대상으로 자주 등장하는 착한 목자의 모습이었지요.

마을을 돌아다니시며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시고,

허약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사람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그들은 착한 목자의 모습을 발견했던 겁니다.

착한 목자상은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 안에 당신의 모상대로 심어주신 사람의 참된 모습이고,

이스라엘이 역사 안에서 끊임없이 기다려 왔던 참된 지도자의 모습이었지요.

아마 유다 사회에서 구원에 제외되었다고 느꼈던 대다수의 서민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구원의 샘물을 들이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회의 도처에 깔려 있는 구원의 소외를 보시고,

예수님은 당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의 일꾼으로 초대하셨는데요.

글쎄요, 우리들 자신은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 두 부류의 사람들 중에 어느 부류에 속할까요?

그리고 바로 우리 자신들이 하느님 나라의 일꾼으로서 초대받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와 함께 하소서

예수님, 병자를 고쳐주고, 아픈 사람을 어루만져주고, 마귀를 붸아내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견해를 보였는데요.

이 사실이 우리를 놀라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당신께서 오늘날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활동하셔도, 아마 사람들은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테니까요.

그러면 당신의 행적을 보고 부정적인 판단을 내렸던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요?

그리고 당신의 모습에서 착한 목자의 모습을 발견하고, 당신에게서 구원의 샘물을 발견했던 사람들은 왜 그랬던 걸까요?

예수님, 아마 이것들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구원의 인사이드 기호와 상관있었던 것 같습니다.

구원받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예수님 당신이 죄인들과 어울리고, 죄인들의 상처를 고쳐주는 과정에서 심각하게 오염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했던 같고,

죄인들을 고쳐주기 위해 스스로 죄인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모습에서 불쾌감과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유다사회 전통에서 구원에서 멀리 있다고 느꼈던 대다수의 서민들은, 오히려 당신에게서 구원을 발견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육체적이고 영적인 고통을 함께 짊어지심으로서 그것들을 없애버리시고,

자신들을 하느님 나라로 이끌어 주시는 당신의 모습에서,

그들은 삶에 대한 열정을 다시 느끼게 되고,

무겁게 내리 누리고 있었던 마음의 짐들을 벗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 지금 우리 사회 안에서 당신이 활동하시는 모습을 우리가 보게 된다면 우리들은 과연 당신에게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될까요.

예수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간청합니다.

저희들이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전통이나 관습에 우리 자신을 맡기기보다는,

미친 사람이라고 비난받더라도 당신을 따라 하느님 나라의 가치관을 따르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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