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7월9일 독서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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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한구 | 작성일1999-07-02 | 조회수2,774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7월 9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독서묵상 드디어 아스라엘의 모든 가족들이 에집트로 거처를 옮겨가게 됩니다. 잠시 안전하자고 약자들이 강대국에 의지하게 될 때, 대부분 이런 경우 역사는 후대에 약자들이 엄청난 재앙을 당하게 된다는 교훈을 전하고 있지요. 속국이 되든지, 노예로 전략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이런 저런 것들을 미리 다 따져 본 후에 강대국과 조약을 맺게 되는데요. 에집트로 와서 안전하게 살라고 초대받은 야곱도 이런 불안을 느꼈을까요. 밤에 하느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서 야곱에게 에집트로 가는 것을 꺼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거기서 이스라엘을 강대국으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이 말씀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된 히브리 민족의 구성에 대한 암시가 숨겨져 있는데요. 우리는 앞으로 창세기와 출애급기를 계속해서 읽어나가면서, 하느님의 이 말씀을 이해하게 될 것 같습니다. 떠남은 귀향을 위한 거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은 에집트로 내려가 요셉과 해후를 하게 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첫 번째 역사인 출애급을 위한 준비가 마무리됩니다. 앞으로 우리에게는 출애급의 대장정의 역사가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될 텐데요. 출애급은 구약과 신약, 그리고 지금의 삶의 여정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 '떠남과 귀향'이, 그 주제를 이루게 됩니다. 복음묵상 오늘 복음을 읽는 동안 우리는 초세기 후반의 교회 상황을 머리에 떠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르코 복음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 된 70년 직후에 쓰여졌고, 마태오와 루가는 마르코의 이야기를 기초로 해서 각각 80년대에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가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받게 된 것은 313년에 발표된 콘스탄티누스의 칙령에 의해서였고, 로마 국교로 인정받은 것은 318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서 였지요. 우리가 이점을 명심하고 그리스도교를 바라보게 된다면, 우리는 교회가 313년 이전까지는 박해를 받아왔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특히 초세기 60년대 초에는 로마에서 네로 황제 대박해가 있었는데요. 이때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가 순교하셨답니다. 그리고 67년에서부터 70년까지 치러진 예루살렘 전투 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당한 유대사회에는, 종말에 대한 기대가 다시 재기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81년에서부터 96년에 걸쳐 있었던 도미티안 대박해 때문에 종말에 대한 기대가 더욱더 커졌답니다. 오늘 복음은 이러한 역사적인 상황을 담고 있는데요. 이 때 그리스도교의 신도들은 오늘 복음처럼 행동하였다는 걸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박해상황과 종말적인 분위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세상과 하느님 나라를 양다리 걸치고 살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요. "너희는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양순해야 한다." 오늘도 함께 하소서 예수님, 초세기 로마 순교자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분들은 모든 것 위에 당신을 우선하셨지요. 부모형제, 재산, 직위.... 그 어떤 것 보다 당신을 우선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버렸고, 끝내 자신들의 생명까지도 버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 지금은 당신을 믿고 따르는데 예전과 같은 박해는 없지만, 우리가 참 인간으로 살아가는데는 여전히 고통과 어려움이 따른답니다. 우리의 일을 방해하는 사람도 나타나고, 미워하고 훼방놓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지요. 때로는 가장 믿었던 데로부터 배신도 당한답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현실이지요. 그래서 였을까요? 예수님, 당신은 우리들에게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저희들이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세상의 온갖 부조리에 놀라거나, 꺽이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저희들이 당신의 가르침으로 슬기로워지고, 당신의 삶을 본받아 순박하게 살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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